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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생과 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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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정치에 관한 명언은 책 한 권으로 담기엔 한참 모자란다. 정치는 인류 역사와 함께 해왔으니 그럴 만하다. 더욱이 선거의 복잡다단함에 대한 촌철살인은 시대를 관통한다. 플라톤은 '국가 일에 무관심하면 악인이 지배할 수 있다'고 했다. '선거만 끝나면 노예제가 시작된다'고 개탄했던 미국 대통령(존 애덤스)도 있다. "대중은 작은 거짓말보다 큰 거짓말에 더 쉽게 속는 법"이라는 아돌프 히틀러의 말은 선전선동의 전범이 됐다.
□우리의 정치 어록 역시 차고 넘친다. 자주 인용되는 정치인의 말로는 '양 김'만 한 이가 없을 듯하다. 유신 치하에서 의원 제명이 된 1979년 10월 김영삼 전 대통령은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했다. 그 후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사건으로 서울의 봄은 왔지만 신군부 체제가 들어섰다. 1990년 3당 합당 땐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굴에 들어간다'는 말로 신군부세력과 손잡는 걸 합리화했다. 문민정부 출범 후 신군부 산실인 하나회를 쾌도난마로 잘라냈으니 말은 지킨 셈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행동하는 양심'은 호남을 비롯한 전국에 수천 개 액자로 살아 있다.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은 의회 정치와 실사구시 정치를 잘 보여주는 표현이라 두루 인용된다. DJ는 1960년대 이 말을 처음 썼다고 하며, 대통령 퇴임 후인 2005년 신년회, 2006년 전남대 강연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했다. 하지만 원칙과 현실 사이에서 양수겸장이 어려운 이 말의 인용은 아전인수 논란을 부르기 십상이다.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오랜 좌고우면 끝에 최근 준연동제 비례대표제를 결정하면서 위성정당 설립 정당화의 한 명분으로 이 구절을 거론했다. 하지만 입법권력을 가진 다수당의 지위, 자신의 대선공약에 비춰, 종속 변수인 여당 핑계를 들기엔 옹색하다. 머지않아 보게 될 '의원 꿔주기' 등 후진국 선거 수준으로 되돌리는 갖가지 부작용에다 양당정치 공고화 등 준연동제 입법취지에도 어울리지 않아 ‘꼼수’ 수식어가 붙을 수밖에 없다. '정치가는 다음 선거가 아니라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는데 DJ는 뭐라 평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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