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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리 직원 감싸고, PF 대출 날림 심사… ‘20년 새마을금고 맨’도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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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금고 계좌가 있으신가요? 국민 절반이 이용하는 대표 상호금융기관인 새마을금고가 창립 60여 년 만에 전례 없는 위기 앞에 섰습니다. 몸집은 커졌는데 내부 구조는 시대에 뒤처진 탓입니다. 내가 맡긴 돈은 괜찮은지 걱정도 커져갑니다. 한국일보 엑설런스랩은 새마을금고의 문제를 뿌리부터 추적해 위기의 원인과 해법을 찾아봤습니다.
“극심한 도덕적 해이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9월 22일 서울동부지법 한 법정. 김병철 부장판사가 피고인 석에 앉아 있는 새마을금고 전·현직 직원을 꾸짖었다. 중앙회에서 일했던 박모(39)씨와 지역 금고 여신팀장인 노모(43)씨와 오모(44)씨는 2021년 12월~2022년 9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과정에서 수수료 30억 원을 챙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은 차주를 상대로 “(가족 명의 업체에서) 컨설팅을 받지 않으면 대출이 어렵다”며 계약을 강제했다. 이날 박씨와 노씨, 오씨에게는 각각 징역 7년, 5년, 2년이 선고됐다.
범행의 주무대는 경기 안산의 PF 대출 '주간금고'인 A금고였다. 지역 새마을금고의 최대 대출액은 50억 원이다. 수백억 원대 PF 대출을 일으키려면 지역 금고 여러 곳이 대주단을 결성해 공동대출을 하는데, 주간금고는 대주단을 대표해 차주가 제시한 조건(금리·수수료)과 사업 타당성을 검토한다. 주간금고의 PF 책임자인 노씨가 대출 전권을 쥔 채 다른 금고 모르게 수수료를 빼돌릴 수 있었던 배경이다. 노씨가 1년간 비리를 저지르는 동안 금고 감시망은 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까.
당시 A금고의 ‘워치도그(watchdog)’ 역할을 맡았던 박영철(65) 전 상근감사가 내놓은 답은 간단했다. 노씨를 둘러싼 각종 수상한 정황을 포착해 금고에 알렸지만 묵살됐고, 상급기관인 새마을금고 중앙회는 ‘늑장 징계'로 노씨 전횡을 방치했다는 것이다. PF 대출을 관리·감독할 시스템도 엉성했다. 금고 내부 심사와 중앙회 사전 심사 모두 요식행위나 마찬가지였다는 게 그의 얘기다.
박 전 감사는 2000년 A금고 이사장에 취임해 20년간 금고를 이끌다가 2020년 3년 감사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중앙회 이사 및 감사위원장까지 역임한 정통 ‘새마을금고맨’이다. 박 전 감사는 “지역 금고는 정말 엉망진창이라 부실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그가 경험한 얘기를 들려줬다.
2022년 초, 박 전 감사 눈에 수상한 거래내역이 포착됐다. 종신보험 상품 가입자가 거액의 보험료를 내다 몇 달 후 해지하고 재가입했다. 해당 상품은 중도 해지하면 보험료를 돌려받을 수 없었기에, 가입자는 4,000만 원 넘게 날렸다. 반면 상품을 판 금고 직원은 가입과 해지가 반복될 때마다 인센티브를 받았다. 모집인은 노씨였다.
박 전 감사는 ‘꺾기’를 직감했다. 2020년 10월 경기 고양에 오피스텔을 짓던 S사는 A금고를 비롯한 금고 9곳에서 305억 원의 PF 대출을 받았다. 주간금고 PF 책임자로서 대출 가부(可否)를 결정할 수 있는 노씨가 대출 대가로 보험 가입을 요구한 것으로 의심됐다. 박 전 감사는 즉각 문제를 제기했지만, 금고는 관행이라며 노씨를 감쌌다. 박 전 감사는 이에 2022년 3월 중앙회에 정식 검사를 청구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A금고를 비롯한 지역 금고 35곳은 서울 송파구 오피스텔 개발 사업에 PF 대출로 1,000억 원을 내주기로 했다. 이것도 노씨 작품이었다. 지역 금고들이 공동대출에 나설 경우 중앙회 심사를 거쳐야 하는데, A금고가 심사를 요청한 지 하루 만에 승인이 떨어졌다. 박 전 감사는 중앙회 본부장에게 “1,000억 원짜리가 어떻게 하루 만에 통과되느냐”고 따졌지만, 규정대로 처리했다는 얘기만 돌아왔다.
박 전 감사는 공사 현장을 직접 찾아갔다. 대출 검토 당시 해당 부지의 3.3㎡(1평)당 감정가(담보가치)는 1억5,700만 원. 하지만 인근 부지가 실거래된 가격은 8,700만 원이었다. 게다가 공사 진행률이 1%도 안 되는데, 중앙회 승인 직후 380억 원이 이체됐다. 통상 PF 대출은 공사 진척도에 따라 순차적으로 자금이 집행된다.
노씨를 둘러싼 의혹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상황은 반대로 흘러갔다. 박 전 감사가 중앙회에 ‘꺾기’ 검사를 요청하자, 두 달 뒤 A금고 직원 전원이 '분란을 일으킨다'며 이사회에 박 전 감사 징계를 요청했다. 박 전 감사가 노씨가 취급한 PF 대출을 전수 조사하려고 자료 제출을 요구하자, 금고 측은 “줄 수 없다”고 버텼다. 현장 검사를 끝낸 중앙회도 감감무소식이었다.
8개월 뒤 나온 검사 결과는 박 전 감사의 예상대로였다. 노씨가 판매한 보험 상품에 가입한 이들은 고양 오피스텔 PF 대출을 받아간 S사 회장의 친인척이었다. 이들은 가입과 해지를 반복하며 보험료 4,379만 원을 날린 반면, 노씨와 부하 직원은 973만 원의 수당을 챙겼다. 중앙회는 노씨에게 정직 1개월 처분을 내렸지만 뒤늦은 조치였다. 노씨는 이미 수수료를 빼돌린 상태였다.
송파 오피스텔 PF 대출 과정에서도 노씨는 금고가 챙겨야 할 수수료 5억5,000만 원을 ‘공범’ 박씨가 설립한 컨설팅 업체로 빼돌렸다. 노씨는 정직 처분이 내려지기 두 달 전 경북 포항의 공원특례 사업에 675억 원을 대출해주며 수수료 7억여 원을 가로챘다. '꺾기' 의혹이 제기됐을 때 금고나 중앙회가 빠르게 대처했다면 피해 규모를 줄일 수 있었지만, 감시망은 너무 허술했다.
노씨 주도로 2020~2022년 A금고가 주간금고를 맡아 실행한 PF 대출은 71건에 4조2,000억 원(A금고 대출액 2,600억 원)에 달했지만, '날림 심사'가 판을 쳤다. A금고에서 대출심의위원을 지낸 한 직원은 “대출 실행 직전에 회의가 열려 자료를 볼 시간도 없고, 위원들이 PF를 취급한 적도 없어 도장만 찍는다”며 “공동대출에 참여하는 지역 금고들도 ‘주간금고가 검토했으면 문제없겠지’ 하고 통과시키기 때문에 노씨 혼자 대출을 좌우할 수 있는 구조”라고 했다. A금고의 현직 이사도 “PF 대출 현황을 알려달라고 금고에 요청해도 이사회에 보고한 적이 없다”며 “외부에서 견제할 수 없는 구조”라고 토로했다.
박 전 감사는 새마을금고가 건전한 기관으로 거듭나려면 감사 시스템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노씨가 취급한 PF 대출을 전수 조사해 특혜성 대출은 없었는지, 중앙회 ‘윗선’이 대출 과정에 개입한 흔적은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보받습니다> 지역 새마을금고와 중앙회에서 발생한 각종 부조리(부정·부실 대출 및 투자, 채용·인사 과정의 문제, 갑질, 횡령, 금고 자산의 사적 사용, 뒷돈 요구, 부정 선거 등)를 찾아 집중 보도할 예정입니다. 직접 경험했거나 사례를 직·간접적으로 알고 있다면 제보(dynamic@hankookilbo.com) 부탁드립니다. 제보한 내용은 철저히 익명과 비밀에 부쳐집니다. 끝까지 취재해 보도하겠습니다.
<1>회장님의 이중생활
<2> 믿지 못할 골목 금융왕
<3>시한폭탄 된 PF 대출
<4> 60년 전 약속은 어디로
<5> 끝나지 않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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