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법원, '에피스' 지배구조부터 삼성 논리 수용... 검찰 논거는 기초부터 무너졌다

입력
2024.02.07 04:30
10면
구독

[삼성바이오 분식 혐의 무죄 나온 배경]
검찰 "바이오젠 영향력 감안하면 공동지배"
법원 "삼바의 단독지배... 공시 의무는 없어"
승계+분식회계 연결한 검찰 논리도 도마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회계부정·부당합병 관련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정다빈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회계부정·부당합병 관련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정다빈 기자

법원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전부 무죄를 선고한 혐의 중 '불법 경영권 승계'보다 더 논란이 있는 부분은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이다. 이 의혹은 이미 2018년 금융당국이 전문가 평가를 거쳐 "혐의가 인정된다"고 결론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원은 판단의 기본 전제조건인 '지배구조 문제'에서부터 삼성 측 주장을 적극 수용하며 검찰의 논리를 무너뜨렸다. 일각에선 불법승계와 분식회계를 하나의 흐름으로 엮어보려던 검찰의 논리가 '자충수'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분식회계는 금융당국의 결론

검찰이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해 적용한 혐의는 크게 2가지다. 삼성바이오가 ①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에피스)에 대한 회계처리 방식을 2015 회계연도에서 갑자기 변경(종속기업→관계기업)해 기업 자산가치를 4조5,000억 원가량 부풀렸다는 것과 ②에피스 합작 상대사인 바이오젠(미국 업체)의 콜옵션 세부 사항을 2014년 회계연도에 은폐했다는 것이다. 콜옵션은 특정 자산을 만기일이나 만기일 이전에 미리 정한 가격으로 살 수 있는 권리다.

근거는 삼성바이오와 바이오젠의 합작투자계약서였다. 검찰은 바이오젠에 △에피스 주식 '50%-1주'를 매수할 수 있는 콜옵션 △생산활동에 대한 동의권이 있는 점 등을 들어 에피스가 2012년 설립 당시부터 양사 '공동지배'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즉, 삼성바이오는 처음부터 에피스를 '실질적 지배력'이 있는 종속기업이 아니라 '제한적 영향력'을 가진 관계기업으로 공표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금융당국의 결론이었다. 앞서 금융감독원은 검찰 기소 2년 전인 2018년 '삼성바이오가 분식회계로 상장에 성공했다'는 의혹에서 "혐의가 인정된다"는 감리 결과를 발표했다. 증권선물위원회 역시 같은 해 삼성바이오의 2015년 회계 변경을 '고의 분식'으로 판단하고 검찰에 고발했다. '콜옵션을 장부에 반영하면 자본잠식이 우려된다'는 삼성바이오 내부 문건이 결정적 단서였다.

'무죄' 손들어준 1심 재판부

김용범 당시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겸 증권선물위원회 위원장이 2018년 11월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심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용범 당시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겸 증권선물위원회 위원장이 2018년 11월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심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원은 그러나 삼성 손을 들어줬다. 판단의 기초인 지배구조에서부터 금융당국·검찰의 시각과 달랐다. 검찰 측은 에피스가 삼성바이오와 바이오젠의 공동지배 형태로 유지된다고 봤지만, 법원은 2015년 판매승인을 받은 이후에야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에 그전엔 삼성바이오가 에피스를 단독 지배한 것으로 봤다. 그러니 2014 회계연도 공시에 단독 지배하는 회사의 어려운 콜옵션까지 자세히 적을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회계기준(IFRS)에 공시 관련 구체적 규정이 없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재판부가 선고 당일 구체적 이유까지 밝히진 않았지만, 결론만 놓고 보면 재판부는 6년 전 금융당국의 판단을 180도 뒤집은 것이다. 당시 금감원 심의 과정을 세밀히 알고 있는 한 회계학 전공 A 교수는 "지배구조를 어떻게 볼 것이냐의 기본 전제부터 삼성 주장을 다 받아들인 결과"라면서 "당시 전문위원들이 여러 증거를 바탕으로 면밀히 검토했던 논리는 인정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일각에선 삼성바이오∙에피스 압수수색 과정에서 발견된 자료 상당수가 증거능력을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한계라는 추측이 나온다. 또 다른 회계학 전공 교수는 "주요 내부 문건들이 법정에서 채택되지 않으면서 삼성 주장이 유리하게 작용했을 수 있다"면서 "IFRS는 기업에 자율성을 주되 성실성을 요구하는 게 핵심인데 '규정이 없으니 안 해도 괜찮다'는 법원 판단은 아쉽다"고 짚었다.

삼성바이오 사건을 '불법 경영권 승계' 혐의와 엮어서 기소한 검찰의 실책이라는 지적도 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여파로 분식회계를 저질렀다는 게 검찰의 논리라서, 법원이 불법승계와 별개로 분식회계에서만 유죄로 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A 교수는 "삼성바이오가 증선위를 상대로 낸 행정소송의 결과를 예측하기 더욱 어렵게 됐다"고 밝혔다.

최다원 기자
박준규 기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