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사과·배 가격 안정됐다"는데... 왜 체감이 안 될까?

입력
2024.02.08 14:10
수정
2024.02.08 17:53
12면
구독

고물가에 자연스레 차례상 쪼그라들어
소비자들 "너무 비싸 낱개, 못난이 구매"
'역대급 할인 예산'에도 가격 천차만별
대통령 "사과 등 과일 물가 관리 어렵다"
행사 참여 여부, 할인상품 규격 확인必

설 명절을 앞둔 이달 4일 제주시 소재 한 마트에 5,000원 초반 가격의 배와 6,000원 후반 가격의 사과가 진열돼 있다. 독자 제공

설 명절을 앞둔 이달 4일 제주시 소재 한 마트에 5,000원 초반 가격의 배와 6,000원 후반 가격의 사과가 진열돼 있다. 독자 제공

'국내산 사과 1개 6,980원, 배 1개 5,380원.'

설 명절을 앞둔 주말, 강모(62·제주 거주)씨는 제수용품 준비차 동네 마트를 찾았다가 당황을 금치 못했다. 과일이 그야말로 '금값'이었기 때문. 정부 할인 지원 소식은 들었지만 와닿지 않았다. 강씨는 "전엔 알이 굵은 사과, 배를 박스째 구매해 차례상에도 올리고 가족끼리 나눠 먹었는데 물가가 너무 올라 이번엔 제사에 꼭 필요한 만큼만 구매했다"며 "낙과 등 못난이 과일은 가격이 그나마 낫지만 조상을 기리는데 올리기엔 마음이 편치 않다"고 말했다.

'역대급 할인 지원'이라면서?

설 명절을 앞둔 이달 4일 정부 할인 행사에 참여하는 세종시 소재 한 마트에서 사과, 배 선물세트를 판매하고 있다. 각기 낱개로 약 4,300원, 6,100원 수준으로 정부 계산과 차이가 크다. 세종=이유지 기자

설 명절을 앞둔 이달 4일 정부 할인 행사에 참여하는 세종시 소재 한 마트에서 사과, 배 선물세트를 판매하고 있다. 각기 낱개로 약 4,300원, 6,100원 수준으로 정부 계산과 차이가 크다. 세종=이유지 기자

차례상에 빠질 수 없는 사과와 배 몸값이 크게 뛰면서 설을 맞이하는 주부들의 한숨이 크다. 지난해 냉해 피해, 탄저병 등으로 생산이 급감한 탓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7일 KBS와의 대담에서 "사과를 비롯한 과일의 물가 관리가 좀 어렵다"고 했을 정도다.

8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을 기준으로 1년 전에 비해 사과 가격은 56.8%, 배 가격은 41.2% 각각 올랐다. 정부는 비축 물량을 1.6배 확대 공급, 평소 출하하지 않는 비정형과나 소형과도 시장에 내고, 역대 최대 규모 할인지원 예산 총 690억 원을 투입해 지난해 대비 사과, 배 가격이 각각 10.7%, 19.2% 오른 선에서 물가가 안정됐단 입장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설 직전 3주간 평균을 내 이날 밝힌 소비자가격은 사과 2,650원·배 3,280원 수준이나 체감 물가와는 거리가 있다. 정부 할인 행사에 참여하는 대형마트를 4일 찾아 살펴본 결과, 개당 사과는 2,000원 중반~4,000원 중반, 배는 5,000원 초반~6,000원 초반으로 가격 차이가 컸다. 마트에서 만난 김모(67·세종 거주)씨는 "비싸서 명절선물로도 요새 과일이 잘 안 들어온다"며 "차례상엔 홀수로 올려야 하니 세 개 정도만 사려 한다"고 전했다.

왜 시장, 마트에서 본 가격과 다를까?

설 명절을 앞둔 이달 4일 정부 할인 행사에 참여하는 세종시 소재 한 마트의 특정 사과 상품 가격표에 '농식품부 할인지원 30%' 적용 표시가 되어있다. 세종=이유지 기자

설 명절을 앞둔 이달 4일 정부 할인 행사에 참여하는 세종시 소재 한 마트의 특정 사과 상품 가격표에 '농식품부 할인지원 30%' 적용 표시가 되어있다. 세종=이유지 기자

각종 설 성수품 지원에도 왜 가격 인식에 괴리가 생길까.행사 참여 업체 여부에 따라 가격 편차가 있고, ②같은 품목 중에서도 가장 많이 팔리는 특정 품종·분위의 상품이 정부 할인 적용 대상이 된다. 또 ③정부 지원 할인율(30%)에 더하는 자체 할인율과 적용 상품 기준이 업체 재량에 따라 제각각 결정되고, ④전통시장의 경우 포스(POS) 단말기에 할인가를 입력할 수 있는 마트 등과는 다르므로 온누리상품권 환급으로 할인을 지원해 매대 가격은 정상가로 두기 때문이다.

이번 할인 대상은 300~370g 사과(후지)와 550~650g 배(신고)다. 즉, 이 규격 외 상품엔 할인이 적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단 뜻이다. 게다가 정부는 소비자 66%가 이용하는 대형마트 등에 "최소한 20% 이상 자체 할인을 해달라"고 당부했지만, 업체가 할인 폭을 결정하는 데 개입하긴 어렵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같은 사과·배라도 대상 품종·분위를 벗어난, 선물용 또는 고급 상품은 할인에서 제외하는 등 판단도 업체 자율"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싸게 사려면?

박순연 농림축산식품부 유통소비정책관이 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설 성수품 수급대책 추진상황과 가격 동향 등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박순연 농림축산식품부 유통소비정책관이 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설 성수품 수급대책 추진상황과 가격 동향 등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때문에 차례상 차림비용 추산도 기관마다 천차만별이다. 농식품부 산하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7일 발표에선 평균 30만9,641원으로 전년 대비 0.7% 상승한 수준인 반면, 중소벤처기업부·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은 앞서 전통시장(29만8,392원)·대형마트(35만4,966원) 평균 비용이 1년 전에 비해 각기 10.2%, 7.7% 증가했다고 밝혔다. 조사 시기와 대상 선정도 물론 영향을 주지만, aT는 품목 내에서도 가장 많이 소비되는 분위의 단일 상품 가격을 기준으로 집계한다.

몇 가지를 유의한다면 고물가 시기 현명하게 설 명절을 날 수 있다. 우선 '농축산물 할인지원(http://sale.foodnuri.go.kr)' 홈페이지 등을 활용해 정부 행사 참여 업체·시장인지 확인한다. 참여 업체 내 같은 품목이라도 규격 등을 살펴 정부 할인이 적용된 상품을 구매하는 것이 유리하다. 아울러 전통시장을 방문할 경우 영수증과 신분증을 챙겨 온누리상품권(농축산물, 수산물 인당 각 최대 2만 원)으로 환급을 받는다.

세종= 이유지 기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