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피해자 지원금은 전과자 복귀 지원 예산의 '절반'

입력
2024.02.05 10:10
수정
2024.02.05 11:21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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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피해자: ②여전히 부족한 국가 지원]
법무부, 가해자 갱생 지원에 매년 400억원
피해자 지원에는 200억원... 올해 100억원↑
"원상 회복 가능한 수준까지 적극 지원을"

편집자주

범죄피해자가 겪는 고통은 가해자가 붙잡힌 다음에도 계속됩니다. 범죄는 가족, 건강, 일자리를 앗아간 데 이어 주변의 삶까지 무너뜨리지만, 유일한 버팀목인 국가의 구조망은 너무 얇고 헐겁습니다. 피해자 보호는 헌법이 정한 국가의 책무지만, 국가는 예산과 인력을 이유로 많은 부분을 민간에 맡긴 채 조금 멀리 비켜서 있습니다. 범죄를 오로지 '피해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심층기획을 시작한 한국일보는 가해자 지원 예산에도 미치지 못하는 얄팍한 범죄피해자 지원 제도를 지적하려 합니다.


대구 달성군 신축 대구교도소 입구 모습. 연합뉴스

대구 달성군 신축 대구교도소 입구 모습. 연합뉴스

※범죄피해자와 가족들이 처한 고통을 다룬 첫번째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범죄피해자 직접 지원금 연간 283억 원.

출소자들의 자활·갱생 지원 예산 연간 445억 원.

2006년 3월 범죄피해자들의 '일상회복' 권리를 명시한 범죄피해자보호법이 도입된 지 18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피해자 지원에 직접 투입되는 재원은 형기를 마치고 사회에 복귀하는 범죄자 지원금의 절반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4일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6개년(2018~2023년) 범죄피해자 지원 사업 세부계획안에 따르면, 지난해 범죄피해자 지원 주요 사업비 826억7,300만 원 중 피해자에게 직접 혜택이 주어지는 치료비, 생계비, 구조금, 신변보호사업에 283억6,900만 원(34.3%)이 책정됐다. 2018~2022년에도 직접 지원비는 200억 원대 수준(전체 기금의 26.8~34.9%)을 유지했다.

범죄피해자들을 돕는 돈은 범죄피해자보호기금에서 나온다. 기금은 특정한 목적을 위해 운용되는 자금인데, 일반 재정활동을 위해 책정되는 예산과 차이가 있다. 범죄피해자보호기금은 가해자들이 낸 벌금에서 8%를 떼어내 대부분 기금액을 충당한다. 올해 기금 총액은 1,370억5,400만 원이다.

하지만 기금 규모에 비해 피해자들에게 돌아가는 돈은 많지 않다. 범죄피해자 치료비와 생계비에 직접 쓰이는 건 35억300만 원이 전부다.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지급하는 구조금(救助金)은 총 100억1,500만 원이다. 범죄피해 현장 정리(4억900만 원), 간병비(5억800만 원), 법률 구조(4억1,200만 원) 등을 다 합치더라도, 피해자들이 체감하는 금전적 지원은 충분하지 않다. 기금액의 약 60%는 전국 60곳의 범죄피해자지원센터 혹은 심리상담을 맡는 스마일센터 운영, 성폭력피해자 지원 시설 운영 등 간접 지원에 쓰인다.

범죄 가해자 관련 예산과 피해자 지원 기금 비교. 그래픽=강준구 기자

범죄 가해자 관련 예산과 피해자 지원 기금 비교. 그래픽=강준구 기자

범죄피해자들을 위한 인색한 지원은 가해자들을 위해 국가가 베푸는 '선의'에 견주어볼 때 더욱 도드라진다. 법무부는 지난해 교정활동 예산(치료감호 및 소년원 운영비 제외) 4,961억6,500만 원 중 갱생보호활동(출소자의 사회복귀와 재범방지 활동)에만 445억1,900만 원을 배정했다.

올해는 4,473억800만 원 중 갱생보호에 473억7,000만 원을 배정했다.이 돈은 출소자 중 갱생보호대상자들의 사회복귀 지원기관인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과 8개 민간 갱생보호법인에 전액 지원된다. 갱생보호대상자란, 형사처분 또는 보호처분을 받은 사람 중 자립을 지원할 필요성이 인정되는 사람을 뜻한다. 정부는 이들의 취업 지원뿐 아니라 심리상담, 가족관계 회복까지 돕는다.

전체 사업비 중 국고보조금 비율은 90%. 국가가 부담하는 비율이 다른 나라에 비해 많은 수준이다. 싱가포르는 갱생지원기관이 국고 보조 없이 전자제품조립, 식품생산, 의류생산 등 업무를 민간의 하도급 형태로 운영하며 자체 조달한다. 일본도 보조금은 70% 수준만 지원하고, 나머지는 기부금으로 채운다.

물론 전과자의 건전한 사회복귀를 도와 재범을 막는 것도 국가의 책임이고, 여기에 쓰는 예산도 안전한 사회를 위한 투자다. 하지만 범죄 피해를 당한 뒤 생계가 끊기고 신체·정신적 치료 비용을 장기간 부담하는 피해자들이 처한 상황을 고려할 때, 피해자 예산이 가해자 예산의 절반에 그친 것은 균형추가 잘못 맞춰진 게 아니냐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강력범죄 피해자인 A씨는 "범죄 재발을 막아야 하는 정부 입장은 이해한다"면서도 "형사사법 체계부터 사후지원 체계까지가 모두 가해자 위주로 기울어져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범죄피해자와 가족들이 조속히 원상회복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공격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한국피해자학회 부회장인 김지선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범죄피해자보호기금이 적진 않지만, 그중 피해자에게 오롯이 쓰이는 구조금은 기금의 10분의 1 수준"이라며 "피해자들을 위한 구조금의 파이부터 넓혀야 한다"고 짚었다.

강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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