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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에 휘둘리는 백년대계… 교육교부금 세수 연동에 "방만 지출" "교육 질 저하" 논란 반복

입력
2024.02.14 04:3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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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수 따라 출렁이는 교육재정]
재작년 81조로 급증, 지난해는 10조 급감
올해도 전년 본예산 대비 9.1% 감소 전망
"변동폭 커 투자 적기 놓치거나 재정 곤란"
학생 수 감소·미래교육 투자처 증가 상반된 환경
"대학으로 교부금 돌려야" "줄이면 안 돼" 논쟁

지난해 4월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실에서 교사가 학생이 AI 수학 학습 프로그램으로 문제를 푸는 것을 돕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 사진

지난해 4월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실에서 교사가 학생이 AI 수학 학습 프로그램으로 문제를 푸는 것을 돕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 사진

초중고 교육 예산의 주 재원인 지방교육재정교부금(교부금)의 안정성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국세의 일정 비율을 교부금으로 책정하는 현행 제도하에서 최근 수년간 세수가 큰 폭으로 오르내리면서 교부금 액수가 해마다 급변했기 때문이다. 교육계는 교부금액의 변동폭이 큰 탓에 집행기관인 시도교육청이 투자 적기를 놓치거나 갑작스레 재정 위기를 맞는다고 지적한다. 반면 학생 수가 급감하고 있는데 교부금은 경제성장에 따라 불어나는 구조라며 재정 수요가 많은 대학교육 등에 더 많은 예산이 배정되도록 교부금 지급 방식을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이 재정당국과 경제계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교부금을 돌려 국가장학금 수혜 대학생을 대폭 늘리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교육재정 안정적 확보' 연동제 취지 무색

정부는 교육교부금법에 따라 내국세 20.79%(교육세 일부 포함)를 시도교육청에 교부한다. 교부금은 전체 시도교육청 세입의 70%가량을 차지한다. 1972년 교육교부금법 제정 당시 내국세 총액의 12.98%였던 교부율은 주로 국세·지방세 개편에 따른 내국세 감소분 보전을 위해 2010년 20.27%, 2018년 20.46%로 조정됐고 2019년 말 지금 비율이 됐다. 교부금 제도를 내국세와 연동해 설계한 것은 교육재정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려는 취지였다.

하지만 교부금은 세수 여건과 재정당국의 세수 추계에 따라 증감폭이 컸다. 본보가 13일 지방교육재정알리미 등에서 연도별 교부금(최종액) 현황을 살펴본 결과, 교부금은 2018년 52조4,000억 원에서 2019년 60조5,000억 원으로 증가했다가 2020년에는 코로나19 유행 등의 영향으로 7조 원(11.5%)이 줄어 53조5,000억 원이었다. 하지만 이듬해 도로 6조 8,000억 원이 늘어 60조3,000억 원이 됐고, 2022년에는 세수 호조 속에 21조 원(34%)이 급증한 81조3,000억 원을 기록했다.

본예산 25% 깜짝 뭉칫돈, 이듬해는 10조 펑크

당초 2022년 본예산에 편성된 교부금은 65조 원이었지만, 그해 9월 본예산의 4분의 1에 달하는 16조 원이 추가됐다. 전년에 더 걷힌 세수 등이 이월된 세계잉여금에서 5조2,000억 원, 추가경정예산(추경)에서 11조 원이 각각 교부금으로 배정된 것이다.

'2023 지방교육재정 분석 보고서(2022 회계연도)'에 따르면, 각 시도교육청은 통합재정안정화기금과 교육시설환경개선기금에 총 16조1,702억 원을 적립했다. 추가 배정액을 거의 고스란히 기금에 넣은 것이다. 안정화기금은 과세권과 자체 수입이 거의 없는 교육청이 세수 감소에 대응하고자 이월·불용이 예상되는 재원을 적립할 목적으로 2019년 만들어졌다. 환경개선 기금은 2021년부터 조성됐다.

교육청이 "돈이 남아돈다"는 공세에 본격 직면한 것도 2022년이었다. 당시 정치권과 재정당국 등에선 비대해진 교부금을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빗발쳤다.

지난해 8월 감사원은 '교부금 운용실태 감사보고서'에서 2021년과 2022년 경기·서울교육청의 현금·복지성 지원 사업(교육회복지원금 합계 2,624억 원)과 경북교육청의 교육공무직 노트북 지급(46억 원 상당)을 방만한 예산 운영 사례로 지적했다. 아울러 2022년 세계잉여금과 추경예산 같은 '연도 중 교부금'이 본예산의 24.9%에 달한다고 지적하며 "추경 일정상 사업계획 수립이 촉박할 수밖에 없어 높은 이월·불용률과 불요불급한 사업 추진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상황은 이후 역전됐다. 교육계에 따르면, 지난해 재정당국의 세수 추계 오류로 그해 하반기 교부금 10조3,000억 원이 급감했다. 올해 교부금 역시 지난해 본예산(75조7,600억 원)보다 9.1% 줄어 6조9,000억 원이 감액될 것이라고 교육부는 밝혔다. 이에 교육청들은 안정화기금 등에 묻어둔 비상금을 5조8,000억 원 꺼내 올해 예산으로 쓰게 됐다. 경기 부진과 정부의 감세 기조, 세수 추계 실패에 교부금이 급감하며 다시금 불안정성을 드러낸 것이다.

앞서 누리과정(3~5세 공통 교육과정) 사태로 교육청이 빚에 허덕이던 2014년과 2015년에도 교부금은 각각 전년 대비 2,000억 원과 5,000억 원이 감소했다. 교육청들은 2011년 누리과정 도입 추진 과정에서 교부금이 매년 3조 원씩 증가할 거란 정부 전망에 따라 사업 비용을 떠안았지만 교부금이 그만큼 늘지 않아 2013년부터 지방교육채를 발행해 살림을 했다. 그렇게 낸 빚이 2016년까지 15조 원을 넘었다.

"재정 경직성 풀어야" "교육 전환기 투자할 때"

장기적으로 경제가 성장하며 교부금도 증액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극심한 변동성과 함께 '교부금-세수 연동제'의 핵심 시빗거리다.

재정당국과 감사원은 학생 수 급감에 따라 교부금 증가 기울기도 완만해져야 하는데, 연동제가 '칸막이'로 작용해 효율적 세수 배분에 걸림돌이 된다고 지적한다. 1인당 교육비가 초중등교육보다 적은 고등교육이나 고령화에 따른 노인복지 등 재정 수요가 많은 정책에 더 많은 세금이 투입돼야 한다는 논리다. 하연섭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한국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완전히 바뀐 수십 년간 초중등교육만 내국세에 연동돼 재정 경직성을 키웠다"며 "연동제 폐지가 어렵다면 차선책으로 교부금 상당액을 고등교육(대학)으로 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정부는 대학 국가장학금에 연간 1조5,000억~3조 원을 추가 투입해 소득 최상위 20%를 제외한 학생 전반에 장학금 혜택을 주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교부금을 장학금 재원으로 전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계는 교육재정 지출에 실질적 영향을 미치는 건 학생 수가 아니라 학급 수라고 반박한다. 오범호 서울교대 교수는 "교육의 기본 단위는 학급이며, 학생이 줄어도 학급은 그렇지 않다"며 "신도시 등의 택지 개발로 인한 학교 신설 수요도 여전히 많다"고 지적했다. 교육통계연보를 보면, 최근 5년간(2018~2023년) 초중고 학생 수는 37만5,220명 감소했으나 학급 수는 2018년 23만2,277교에서 2020년 23만2,865교, 지난해 23만5,535교로 증가했다. 교원 수도 2018년 43만817명에서 2020년 43만3,284명, 지난해 44만497명으로 늘었다. 교부금에서 교원 인건비, 학교회계 전출금 등 고정경비 비중은 70~80%다.

인구 감소에 대응해 오히려 학생 개개인의 잠재력을 키우는 교육 투자를 줄여선 안 된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게다가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통합하는 '유보통합', 모든 초등학교에서 방과후·돌봄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늘봄학교', AI 디지털 교과서 등 막대한 예산이 들어갈 국책사업이 수두룩한 교육 전환기인 만큼 교부금 축소 논의는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선호 한국교육개발원(KEDI) 교육재정연구실장은 "교수 학습 시스템을 바꾸는 AI 수업과 학교 기능 자체가 달라지는 늘봄학교 등 기존 체계를 완전히 바꾸는 정책이 효과를 내도록 확실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재정 전문가들은 다만 선출직 교육감들이 교부금을 집행할 때 학력격차 완화 등 교육 본연의 정책에 보다 신경 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홍주 춘천교대 교수는 "학생들의 긍정적 변화를 볼 수 있을 거라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교육 투자에 교부금을 잘 쓸 수 있도록 교육감들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교육부의 내실 있는 시도교육청 평가가 필요하다고도 제언했다.

손현성 기자
홍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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