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알아두면 쓸모 있을 유전자 이야기. 바이오산업의 새로운 혁신과 도약으로 머지않아 펼쳐질 미래 유전자 기반 헬스케어 전성시대를 앞서가기 위한 다양한 기술 개발 동향에 대한 소개와 관련 지식을 해설한다.
크기 같아도 정보 다른 염색체
DNA 훼손 막는 단백질에 주목
유전자 기반 '암 예방'도 가능
사람 세포 속 염색체 17번과 18번은 크기가 매우 비슷하다. 그래서 현미경에서 보이는 길이 순서대로 번호를 붙였을 때 17번과 18번으로 인접한 번호를 받게 됐다. 생물의 염색체 길이는 그 속에 담긴 DNA 염기 서열 길이로 결정되는데, 사람 염색체 17번은 약 84Mb 즉 8,400만 개의 글자로 표시되는 염기 서열을 가지며, 염색체 18번은 약 80Mb 즉 8,000만 개 글자로 표시되는 염기 서열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두 염색체에 저장된 유전정보는 크게 차이 난다. 염색체 17번은 1,000개가 넘는 단백질의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반면, 18번에는 300개가 안 되는 단백질 정보만이 담겨있다. 크기는 비슷한데 정보의 양은 3배 이상 차이가 나는 것이다. 사람 세포 속 22종 상(常)염색체 가운데 단백질 유전정보가 300개 이하로 적은 염색체들은 13번과 18번 그리고 21번, 3종뿐이다. 단백질 유전정보 개수가 적은 이 3종 염색체는 종종 하나의 세포 안에 정상적인 한 쌍, 즉 2개가 아니라 3개가 존재하는 상황이 발생할 때가 있다. 그 경우 각각 파타우 증후군(13번), 에드워드 증후군(18번), 다운 증후군(21번) 같은 삼(三)염색체 증후군이라는 선천성 질환의 원인이 된다.
한편 사람의 염색체 17번에는 크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수의 단백질 유전정보가 담겨있는데 특히 세포분열 조절과 DNA 손상 복구에 필요한 중요 단백질들의 유전정보가 포함되어 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집이나 자동차를 수리하고, 옷이나 가방을 수선하고, 메모리 카드에 있던 손상된 데이터를 복구도 하듯이 세포 안에도 손상된 유전정보 데이터를 복구하는 일이 계속 일어난다.
우리의 유전정보는 DNA라고 하는 나노 수준의 아주 가늘고 기다란 실 같은 물질에 담겨있는데, 이런 실 같은 구조는 세포 내부 혹은 외부에서 유래한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절단되거나 변성되는 등 손상을 겪는다. 햇빛 속 자외선에 의해 피부 세포 DNA들의 이중 나선이 절단되기도 하며 공기나 음식에 포함된 화학물질에 의해 DNA 염기 서열에 이상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렇게 절단된 DNA를 수선하거나 변성된 염기를 수리해서 유전정보를 복구하는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우리 몸의 모든 세포에 돌연변이들이 계속해서 축적될 것이다.
사람의 염색체 17번에는 HIC1, TP53, RDM1, BRCA1처럼 DNA 손상 복구에 중요한 유전자들이 담겨있다. 이 유전자들이 정상 기능을 하지 못하면 DNA 손상을 복구하지 못하게 되는데 손상된 범위가 너무 광범위하거나 혹은 손상된 부위가 세포분열 조절에 치명적 영향을 주게 되면 세포가 비정상적으로 죽거나 혹은 계속 분열하는 암세포가 된다.
TP53 유전자의 손상은 모든 암세포의 50%가량에서 발견될 정도로 중요한 유전자이며, BRCA1 유전자의 손상은 영화배우 앤젤리나 졸리 때문에 유명해진 유전자이다. 이런 종양억제 유전자들에 선천적 혹은 후천적 돌연변이가 생겨서 정상 기능을 하지 못하면 암에 걸릴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 어떤 돌연변이들은 암세포에만 존재하는 한편 어떤 돌연변이들은 정상 세포에도 존재하기도 해서 졸리처럼 암이 생기기 전에 미리 확인이 가능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자외선 차단 크림을 활용하고, 발암 성분 섭취를 줄이는 노력에 덧붙여 관련 유전자에 대한 사전검사를 통해 자신의 암 발생 취약성에 대한 변이정보를 통합적으로 활용해서 암 예방 전략을 수립할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이미 살고 있다. 새해에는 더욱 완벽한 유전자 기반 통합 솔루션이 만들어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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