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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S 판매 은행원 "고객도 은행도 '윈윈'하는 줄 알았다"

입력
2024.02.06 04:30
수정
2024.02.19 12:31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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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재테크의 배신, ELS]
"은행원도 ELS 가입 많이 해
좋은 상품 생각하고 추천했다
ELS에 대한 과신이 독이 됐다"

"초고위험 상품이지만 은행 직원 교육 때 위험도에 대한 내용을 중시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은행원과 고객 둘 다 '원금손실위험'을 자필로 기재하면서도 단순 가입절차로 치부하고 간과했다."

서울 시내 은행 창구에서 고객이 업무를 보고 있다. 기사 내용과 관계없는 사진. 뉴스1

서울 시내 은행 창구에서 고객이 업무를 보고 있다. 기사 내용과 관계없는 사진. 뉴스1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H지수) 관련 주가연계증권(ELS) 대규모 손실 사태의 근본 원인을 묻자 시중은행원 A씨는 이렇게 답했다. 그는 3년 전 이맘때 고객에게 H지수 연계 ELS를 판매했다. 당시 그는 "손실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1일 기준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이 판매한 H지수 ELS는 올해 총 3,744억 원의 손실을 냈다. 이들 은행의 상반기 만기 도래액(약 8조4,258억 원)의 4.4%다.

"손실 가능성 희박하다 생각했다"

5대 시중은행 H지수 ELS 상반기 만기 도래 규모 및 확정 손실액. 그래픽=신동준 기자

5대 시중은행 H지수 ELS 상반기 만기 도래 규모 및 확정 손실액. 그래픽=신동준 기자

5일까지 한국일보가 만난 은행원들은 'ELS에 대한 과신'을 이번 사태의 원인으로 꼽았다. 공모형 ELS가 국내 처음 발행된 것은 2003년 4월, 세계 경제가 장기금리 2%대 저금리 시대로 접어들었던 때다. 이른바 '초저금리 시대'를 맞았던 2021년, 6개월 만기 은행 정기예금 금리는 평균 연 0.84%1인 데 비해, ELS를 6개월 만에 조기상환하면 연 4%대 이자까지 받을 수 있었다. 지수가 반토막만 나지 않으면, 반토막 나더라도 만기 3년 내에 복구되면 대체로 원금 손실은 없었다. 20년이 넘는 기간 ELS가 '국민 재테크'로 자리매김한 이유다.

ELS는 은행원이 애용하는 재테크 수단이기도 하다. 적지 않은 은행원이 가족, 가까운 지인에게 가입을 권했다. 좋은 상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A씨는 "(다른 판매원들도) 과거 10년 이상 경제 상황이 불안했어도 상환이 됐던 점 때문에 손실이 날 거라고 생각을 못 하고, 고객과 은행 모두 '윈윈'일 거라 생각하고 판매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본사가 H지수 연계 상품 주의 줬더라면..."

홍콩 H지수 추이. 그래픽=송정근 기자

홍콩 H지수 추이. 그래픽=송정근 기자

ELS가 아니라 'H지수에 대한 판단 오류가 아쉽다'는 의견도 있다. 당시 H지수가 역사적 고점에 있었던 만큼 하락 가능성에 주목해 본사가 H지수 연계 상품에 대해 특별한 주의를 당부해야 했다는 얘기다. 시중은행원 B씨는 "올해 만기 도래 규모가 가장 작은 우리은행2은 2019년부터 H지수 ELS 판매 규모를 줄여왔다. 다른 은행도 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3

은행원들은 고객에 대한 미안함, 손실이 나니 자신에게 등 돌리고 삿대질하는 고객에 대한 서운함 등 복합적인 감정으로 심리적 부담을 느낀다고 했다. 파생상품은 자격증이 있는 은행원만 판매할 수 있고, 이들 중 적지 않은 수가 고객에게 개인 연락처를 공개할 정도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로 정신과 진료를 받는 직원도 많아, 금융노조는 심리상담지원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알려진 사실 중 바로잡고 싶은 부분은 없냐고 묻자 A씨는 "'고객 손실금이 은행의 수익이 되고 그것으로 은행원이 성과급을 받는 것 아니냐'며 '고의적으로 꼬드겨 가입하게 했다'는 글을 봤는데 오해"라고 했다. 그는 또 "내 고객들은 원금보장만을 추구하지는 않았다"며 "상황이 안타까워 고객 말에 공감하며 쓴 표현들을 불완전판매 증거로 활용하려고 한다는 말이 돌아서 무섭다"고 덧붙였다. B씨도 "상품이 정말 좋다고 생각해 적극적으로 권유한 것인데 불완전판매라고 하니 억울해하는 것 같다"고 동료들의 말을 전했다.

금융노조는 H지수 ELS 상품 판매를 결정한 은행, 이를 허용한 당국이 이번 사태를 키웠다고 주장한다. 금융노조 관계자는 "판매직원도 피해자"라며 "ELS 같은 고난도 금융상품은 은행에서 못 팔게 하거나, 은행원이 압박을 느끼지 않도록 판매 실적을 핵심성과지표(KPI)에 못 넣게 막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편집자 주

한때 '중위험, 중수익' 투자처로 각광받던 국민 재테크 주가연계증권(ELS)이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H지수) 급락으로 대규모 손실 사태의 중심에 섰다. 상반기 만기가 돌아오는 H지수 ELS 판매 잔액은 10조2,000억 원. 문제는 H지수 손실액이 원금의 절반인 5조~6조 원에 달할 수 있다는 점이다. 1일까지 한 달간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확정손실액은 3,700억 원을 웃돈다.
불완전판매 논란 속 '은행이 ELS를 원금 손실 없는 안전한 투자처로 포장했다'는 고객 주장과 '설명 의무를 충실히 이행했다'는 은행 입장이 맞선다. 실제 판매 과정은 어땠을까. H지수 ELS를 직접 판매한 은행원과 투자자의 얘기를 통해 2019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4년 만에 대규모 손실 사태가 재발한 원인과 대안을 살펴본다.

①ELS 판매 은행원 "고객도 은행도 '윈윈'하는 줄 알았다"
②"'원금 손실' 빨간 글자에 손사래 쳤더니... '형식적인 것'이라고 했다"
③"판매규제 형식적 작동... 직원 교육, 적합성 원칙 확인 강화해야"

1 평균 연 0.84%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ECOS) 참고
2 우리은행
2019년 파생결합펀드(DLF) 손실 사태의 중심에 있었던 우리은행은 2020년 금융당국이 '고위험 파생상품 총량규제'를 도입하면서 허용된 ELS 판매 한도도 적었다.
3 주장했다.
현재 주요 은행이 일본 닛케이225 편입 비중을 줄이고 있는 것도 '현 수준이 고점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윤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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