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사’를 없앤 윤 대통령

입력
2024.02.02 17:0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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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외압에 굴하지 않던 검사의 모습
이젠 ‘윤석열 검사’가 나오지 않도록 통제
도이치모터스 사건 등 순리대로 풀어내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2013년 10월 국정감사에 참석한 당시 윤석열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 특별수사팀장의 모습(왼쪽 사진)과 지난해 4월 미국 백악관 국빈만찬에 참석한 윤 대통령의 모습(오른쪽 사진). 연합뉴스 자료사진, AP 연합뉴스

2013년 10월 국정감사에 참석한 당시 윤석열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 특별수사팀장의 모습(왼쪽 사진)과 지난해 4월 미국 백악관 국빈만찬에 참석한 윤 대통령의 모습(오른쪽 사진). 연합뉴스 자료사진, AP 연합뉴스

인생에서 꽃 같은 순간, 즉 ‘화양연화(花樣年華)’의 시기가 언제인지 판단하는 덴 ‘가치관’이 개입하기 마련이다. 다른 사람의 ‘화양연화’를 재단할 자격이 내게 있는지 모르겠으나, 윤석열 대통령의 화양연화 시기는 대통령 재임 기간이 아니라 박근혜 정권에서의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특별수사팀장’ 시절이 아닐까 생각한다.

권력의 압력에 굽히지 않았던 ‘윤석열 팀장’의 강렬한 모습은 지금 그를 국가 최고지도자에 오르게 한 기반이 됐다. 당시 나는 법조기자였는데, 윤 팀장이 징계를 각오하고 ‘트위터를 통한 국정원의 선거 개입’ 혐의를 추가 기소한 날, 기자실에서도 환호가 터졌었다. 담당하는 출입처가 권력에 눌려 비겁해지고 직업윤리를 저버리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출입기자에게도 괴로운 일이다. 그런 답답한 상황에서 윤 팀장은 국민에게도 기자에게도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10년의 세월이 흘러, 정권은 바뀌고 ‘역린’도 바뀌었다. 그가 대통령이 된 후 무엇보다 놀라웠던 점은, 윤 대통령이 과거 ‘윤석열 검사’가 중시했던 정체성들을 철저히 부정한다는 점이다. 그는 지금의 검찰에서 ‘윤석열 검사’가 나오지 않도록 통제하고 있다.

정권의 ‘역린’이라 할 수 있는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을 보자. 대통령실은 “계좌가 활용됐다고 해서 주가조작에 가담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혐의를 부인해 왔다. 그러나 의아한 정황들이 많다. 김 여사는 서울대 인문대학 최고지도자 인문학과정 원우수첩에 자신을 도이치모터스 이사로 소개했다. 검찰이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 등의 주가조작 사건 재판에 제출한 김 여사와 시세조종 ‘선수’인 증권사 직원의 통화 녹취록에는 “도이치모터스 주가가 2,550원으로 빠졌으니 2,650원이 될 때까지 매수하겠다”는 보고가 있었다. 김 여사 모녀가 도이치모터스 주식 거래로 22억9,000만 원의 이익을 얻었다는 검찰 의견서(2022년 12월)도 공개됐다. 그런데도 검찰은 김 여사에 대한 제대로 된 수사를 하지 않고, 한 번도 소환조사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관련 특검 법안에도 거부권을 행사했다.

‘윤석열 선배’가 대통령이 되면서, 검찰은 ‘이태원 참사’ 연루 혐의를 받는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을 기소하는 데 1년이 걸렸다. 그것도 외부인으로 구성된 검찰수사심의위원회의 권고를 받은 뒤에야 결정했다. 윤 대통령은 또한 ‘윤석열 검사’와 비슷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을 철저히 응징하고, 방송통신위원회·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견제 역할을 하는 야권 추천 위원들은 법을 무시하고 아예 임명조차 하지 않는 초유의 국가 운영을 보여주고 있다.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과거 ‘윤석열 검사’가 보여줬던 직업윤리와 외압에 굴하지 않는 정신에, 윤 대통령 본인이 이렇게까지 애정이 없을 수 있나. 개인적으로 이해할 수가 없다 보니, 윤 대통령이 박근혜 정권과 맞설 때 검사로서의 직업윤리 때문이 아니라 그저 어느 ‘도사님’의 조언에 따랐던 것인가 하는 의심마저 든다.

권력을 가진 사람은 상대의 에너지를 힘으로 뺏을 수 있다고 착각하곤 한다. 하지만 억압된 에너지는 없어지는 게 아니라 쌓이고 응축되면서, 어느 시점에 폭발하게 되어 있다. 지금이라도 윤 대통령이 마음을 달리 먹으면 순리대로 풀 수 있는 부분이 많다. 방통위와 방심위에 야권 추천 인사들을 임명해 진정한 합의제의 취지를 살리고, 검경의 자율을 독려해서 독립된 수사를 보장하면 된다. 윤 대통령에게 과거 자신이었던 ‘윤석열 팀장’의 정체성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기를 바라본다.

이진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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