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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유는 곡명 수정, 세븐틴은 영상 삭제... K팝 '가난한 다양성'의 부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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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의 주축인 K팝이 잇따른 문화다양성 훼손으로 안팎에서 지탄을 받고 있다. 가수 아이유는 성소수자 인권 구호의 의미를 퇴색시킨다는 비판을 받고 신곡 제목을 바꿨고, 그룹 세븐틴은 중국의 상징적 유산인 만리장성을 새 앨범 홍보에 함부로 사용했다는 지적에 문제가 된 영상을 삭제했다. 영미권 주류 문화에 대항해 대안 문화로 세계에서 세를 키운 K팝이 사회적 약자의 정체성과 다른 나라의 문화를 존중하지 않아 역풍을 맞고 있는 것이다.
최근 4개월 새 K팝 기획사들이 문화적 남용 논란을 빚어 콘텐츠를 수정하거나 전량 폐기 처분한 사례는 3건 이상이다. K팝 업계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국내외 소비자들의 문화다양성 요구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이런 양상이 지속되면 K팝에 대한 반감을 키워 고속질주하던 시장에 빨간불이 켜지는 걸 넘어 '반한 감정'으로까지 번질 수 있다. K팝의 사회적 파급력을 고려해 기획사들이 콘텐츠가 문화다양성을 해치지 않도록 검증 절차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가난한 상상력'이 검색어로 뜬 이유
'가난한 상상력'. 아이유가 신곡 '러브 윈스 올' 뮤직비디오를 공개한 이달 24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X(옛 트위터)엔 이 문구가 검색량이 급증하는 트렌드 검색어로 등장했다. 가난한 상상력은 아이유가 쓴 이 노래 가사 일부로, 이 문구를 빗대 그의 뮤직비디오를 불편해하는 글들이 줄줄이 올라왔다. 아이유 뮤직비디오를 향한 비판의 요지는 ①세상의 비극을 등장인물의 신체 장애로 표현하고 ②남녀가 결혼하는 이성애적 구도인데도 곡 제목에 성소수자의 인권 운동 슬로건('러브 윈스·Love Wins, 사랑이 이긴다')을 연상케 하는 문구를 썼다는 것, 크게 두 가지였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만든 엄태화 감독이 연출한 뮤직비디오에선 폐허가 된 세상에서 억압과 차별을 피해 도망치다 사라지는 연인의 모습이 그려진다. 영상에서 아이유는 말을 하지 못하고 방탄소년단(BTS) 멤버 뷔는 오른쪽 눈이 안 보인다. 둘의 대화 수단은 수어.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를 차려입고 결혼식을 올린 둘은 함께 찍은 캠코더 영상에선 현실과 달리 장애가 없이 행복하게 그려진다. 엄 감독에 따르면 캠코더 영상은 폐허가 되기 전 멀쩡했던 세상의 은유다. 멜로드라마적 비극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회적 약자의 정체성과 의제를 부적절하게 썼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모든 역경? 아닙니다" 아이유 뮤비 본 장애인 가족
이지행 동아대학교 젠더·어펙트연구소 전임연구원은 "두 인물을 통해 장애와 비장애가 대비되고 캠코더, 즉 상상 속에서 장애에서 '회복'된 이들이 행복하게 표현되는 것은 '장애가 없는 게 행복한 상태이고 비장애는 정상이고 장애는 비정상'이란 비장애인의 관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장애인에 대한 왜곡된 재현이란 주장이다.
'망설이는 사랑: K팝 아이돌 논란과 매혹의 공론장'을 쓴 안희제 작가도 "성소수자 인권 운동에 쓰인 '러브 윈스'란 캐치프레이즈를 다른 영역에서 사용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진 않는다"며 "다만 한 쌍의 남녀가 결혼한 모습을 ‘행복’으로 상정하는 뮤직비디오가 '러브 윈스'의 맥락을 존중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 때문에 논란이 불거진 뒤 '올'(All)을 추가해 제목을 '러브 윈스 올'로 수정한 것도 유의미한 대처라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아이유 소속사 이담엔터테인먼트가 19일 "제목 때문에 중요한 메시지가 흐려질 것이라는 의견을 수용"한다며 곡 제목을 바꾼 뒤에도 뮤직비디오 속 사회적 약자 재현 방식을 두고 갑론을박이 끊이지 않는 배경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29일 입장문을 내 "우리가 만들고 싶은 (아이유 뮤직비디오 속) '캠코더 세상'은 장애인이 비장애인으로 극복되는 세상이 아니라 함께 사는 세상"이라며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의 존재들을 예술 콘텐츠에서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자폐스펙트럼 진단을 받은 아이를 기르는 A씨는 아이유의 '러브 윈스 올' 뮤직비디오를 보고 한국일보에 이런 의견을 전해왔다.
"한국엔 장애인이 장애를 지니고 있는 것이 세상사 모든 역경을 다 덮어쓰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제겐 얼굴을 다치는 경험을 하기 전, 흉터가 발생하기 이전의 저로 돌아가고 싶은 욕구가 없습니다. 우리 아들에게 있다는 자폐스펙트럼이 없어지는 일 같은 것도 원하지도 않습니다. 저는 저로서 더없이 기쁘고 슬프면서 벅찬 인생을 살아가는 중이고 우리 아들은 우리 아들 그 자체로서 생의 모든 순간이 반짝반짝 빛이 납니다."
다양성 스피커라 좋아했는데... K팝의 배신
K팝은 문화다양성이란 시대적 바람을 타고 아시아를 넘어 북미와 유럽에서 영향력을 키워왔다. 그룹 방탄소년단은 2022년 미국 백악관에 초청받아 아시아계 혐오 반대 목소리를 냈다. 많은 K팝 아이돌그룹은 남성과 여성으로 나뉘는 이분적 성의 경계를 허무는 젠더리스 스타일을 통해 획일화된 남성성과 여성성에 균열을 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K팝 팬덤엔 이민자를 비롯해 성소수자,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과 관련한 운동 세력이 꾸준히 유입됐다. 그 확장을 통해 K팝은 세계 문화다양성의 스피커 역할을 할 것이란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K팝은 사회적 약자와 동남아시아와 이슬람 국가 등 제3세계에 문화에 대한 이해와 배려 수준이 낮고 일방적이어서 논란을 빚는 일이 잦았다. 그룹 킹덤은 이슬람 경전인 코란 모양으로 앨범을 제작했다가 아랍권 네티즌의 반발을 사 초판 7만 장을 지난해 모두 폐기했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지난해 발간한 '2023 해외한류실태조사'를 보면, 아시아·태평양과 중동 지역에서 K팝 호감 저해 요인으로 '한국 가수 및 음악 관계자의 부적절한 언행'과 '국가에 반하는 도덕·사회적 가치'가 2, 3번째로 많이 언급됐다. 보고서는 "문화다양성 관점에서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부정적인 인식들이 쌓이면 K팝 수출 전선에 먹구름이 낄 수밖에 없다. 태국의 K팝 음반 수입액은 지난해 98만 달러(약 13억340만 원)로 2022년 대비(430만 달러) 4분의 1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태국에선 "이제 K팝 팬이 아니다"라며 'K팝 불매' 움직임이 지난해 일었다. 태국인들이 지나치게 엄격한 한국 입국 심사 인터뷰 탓에 발길을 돌린 사례가 속출한 여파였다.
덩치 키운 K팝 간판 기획사들의 실책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은 결국 K팝 산업의 문제다. 아이유는 카카오엔터테인먼트 계열사 소속이고, 세븐틴은 하이브 산하 레이블 소속이다. '하우 유 라이크 댓'(2020) 뮤직비디오에서 힌두교 신 중 하나인 가네샤 이미지를 함부로 사용했다가 인도에서 비판이 일자 뮤직비디오를 수정한 블랙핑크는 YG엔터테인먼트가 관리한다. K팝 간판 기획사들이 콘텐츠의 문화다양성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다. 서정민갑 대중음악평론가는 "좋은 음악과 안무를 기획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K팝의 사회적 파급력을 고려해 그 음악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가수와 제작자뿐 아니라 시스템적으로 더 폭넓고 깊게 이뤄져야 한다"며 "외부 전문가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는 의견을 냈다. 안 작가는 "K팝 시장에 문화다양성이 중요한 의제로 등장한 것은 세계화에 따라 다양한 문화권과 국적의 팬들이 생겼기 때문"이라며 "문화다양성 확보는 단지 팬덤을 유지하고 존중하는 것을 넘어 확장하는 데에도 핵심적인 과제인 만큼 내부적으로 창작자를 대상으로 관련 교육을 진행할 필요도 있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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