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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무죄 논란, ‘사법농단’이 없었다는 뜻 아니다

입력
2024.01.30 04:30
N면

'사법농단' 재판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 공동취재

'사법농단' 재판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 공동취재

지난 26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심에서 ‘사법농단’과 관련한 47개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받자, “사법농단은 없었다”는 식의 주장과 보도들이 줄을 잇고 있다. 실체가 없는 사건을 당시 문재인 정부, 윤석열 검찰이 무리하게 수사해 결과적으로 법원 내부 권력 교체로 이어졌다는 비난도 나온다.

그러나 이번 판결에서, ‘사법농단’의 핵심적인 사실관계가 부정된 건 아니다. 양 전 대법원장이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 주심 대법관에게 원고 청구기각 의견을 전달한 사실, 법원행정처가 외교부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재판 시나리오와 각종 대응 방안 등을 검토한 문건도 인정됐다. 또 국제인권법연구회 및 ‘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을 탄압한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도 사실관계가 인정됐다.

양 전 대법원장의 무죄 이유는 불법행위를 이행한 실무자에게 ‘지시’가 증명되지 않은 점, 개입이 증명된 사안이라도 “직무 권한이 없다”는 직권남용의 좁은 법리해석 때문이었다. 현행법상 판사는 다른 재판부에 개입할 직무상 권한이 없어, 권한을 남용할 수도 없다는 논리이다. 이는 직권남용죄의 허점이지, 양 전 대법원장이 특정 재판부 선고에 개입하려 한 행위 자체가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런데도 마치 없었던 사건을 조작한 것처럼 ‘사법농단’의 사실관계를 부정하는 것은 사법부의 독립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무죄이니, 향후 대법원장이 일선 재판부에 개별 사건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 판사들의 성향을 분석해서 문건을 작성하고, 특정 연구활동을 탄압하는 것이 또 되풀이돼도 된단 말인가.

이번 사건은 무리한 수사보다 오히려 부실한 수사로 검찰이 비난받아야 한다. 양 전 대법원장의 지시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수사가 부족했다. 야당은 문재인 정부 시절 수사여서, 여당은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맡은 수사여서 어떤 논평도 내지 않는 것도 유감이다. ‘무죄’라는 결과로 ‘사법농단’의 실체를 부정하며 사법부 비위에 대한 반성까지 막아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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