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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러들어 온 운명 공동체'? 고양이와 집사의 천식 극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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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식은 맞는데, 요새는 거의 기침을 안 해요. 엑스레이 사진을 봐도 처음 병원에 왔을 때와 지금 폐 모양이 확연하게 차이가 나네요. 엄청나게 개선된 거예요.
서울 성산동 우리동생동물병원 김희진 원장은 4년 넘게 천식 치료를 받은 반려묘 ‘맹지’(9)의 의료기록을 직접 되짚어가며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개선되기 전’인 4년 전의 맹지는 어땠을까? 2019년 7월, 맹지는 심한 기침 증상을 보였습니다. 사람이나 강아지였다면 조금 더 지켜볼 수도 있는 증상이지만, 고양이에게는 달랐습니다. 김 원장은 “보통 허피스 감염이라면 기침이 아니라 코를 푸는 증상을 보인다”면서 “고양이가 기침을 한다는 것은 심각하게 볼 만한 증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김 원장이 확신을 갖게 된 것은 보호자 김정은 씨가 보내준 영상 때문이었습니다. 영상 속 맹지는 호흡이 다소 어려운 듯 캑캑대며 기침을 하고 있었습니다. 김 원장은 즉시 정은 씨에게 동물병원 내원을 권했습니다. 그는 “기침의 양상이 폐 깊은 곳에서부터 끌어올리는 듯한 모습이었다”며 “이 경우 폐와 같은 하부 호흡기 질환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고 당시 영상의 의미를 설명했습니다.
정은 씨는 즉시 병원으로 오라는 김 원장의 말에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고 합니다. 맹지를 데려가며 ‘혹시나..’했던 마음은 현실로 바뀌었습니다. 맹지가 천식 진단을 받자마자 마음 한쪽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내가 뭘 잘못했나, 같이 산 게 잘못인가.. 하는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어요.
맹지와 정은 씨의 첫 만남은 가정이 아니었습니다. 2017년 2월경, 정은 씨는 길에서 생활하던 맹지를 처음 만났습니다. 여느 길고양이처럼 작고 말라 보였던 맹지가 추위를 견디기 어려울 듯해 먹을 것을 조금 챙겨주면서 묘연이 시작됐습니다.
그로부터 4개월 뒤, 갑자기 맹지는 정은 씨의 반려묘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정은씨가 오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창문을 열고는 정은 씨의 집으로 무작정 들어온 겁니다. 그것도 새끼 고양이 세 마리를 차례로 물고 들어온 거였죠. 재밌는 건, 새끼를 물고 들어온 직후 맹지의 태도였습니다.
새끼 한 마리를 처음 물고 들어온 맹지가 절 보더니 바로 ‘하악’거렸어요. ‘내 새끼 건들면 죽는다’는 느낌이었죠.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오더라고요. 그렇게 차례차례 자기 새끼들을 데려오더니 집의 한구석에 새끼들을 넣고 품더라고요.
졸지에 고양이 네 마리를 떠안은 정은 씨는 황당했지만, 동시에 감탄했다고 합니다. 그는 “몸 구석구석 배변을 묻히고 다니는 새끼들을 핥아주다가 배탈이 나기도 했다”며 “2.4㎏밖에 안 되는 작은 녀석이 그래도 어미라고 새끼를 챙기는 모습을 보면서 돌봐주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고 당시를 돌아봤습니다.
새끼들이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 정은 씨는 맹지의 곁에서 양육을 도왔습니다. 동물병원 접종까지 마치고, 새끼들을 돌봐줄 새 가족들을 찾아 입양 보내는 일까지 마무리되고, 어느새 집에는 맹지와 정은 씨만 남게 됐습니다. 또다시 밖에서 새끼를 배는 건 맹지의 건강에 좋지 못할 것 같다는 판단에 중성화 수술을 하고 집안에 맹지를 눌러앉혔습니다. 그렇게 반려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고된 육아의 시간이 지났으니, 맹지에게는 평온함만 찾아올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2년 만에 호흡이 가빠지면서 천식 진단을 받게 된 겁니다. 동물병원에서 처방받은 알약을 맹지에게 먹이며 정은 씨는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하는 생각만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문득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당시 거주지에서 진행한 외벽 발포제 작업이었습니다. 방수 작업을 위한 불가피한 시공이었지만, 그날 이후 코를 찌르는 화학약품 냄새에 고생을 한 겁니다.
저도 천식을 앓고 있거든요. 평소에는 괜찮았는데, 그 발포제를 설치한 뒤로 숨쉬기가 힘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맹지가 호흡을 이상하게 하는 걸 보고 본능적으로 이상함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김 원장은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라고 말합니다. 어떤 알레르겐인지는 명확하게 확인할 수 없지만, 비슷한 시기에 발병했다면 충분히 의심을 해볼 만한 부분이라는 뜻입니다. 흔히 반려인과 반려동물의 건강을 함께 생각해야 한다는 ‘원헬스’(One Health)의 중요성이 재확인된 겁니다. 김 원장은 “보통 반려동물이 사람보다 환경 변화에 더 민감하다”며 “주변에 공사를 하거나 가스가 누출됐을 때 반려동물이 먼저 반응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반려생활을 할 때 환경에 대해 종합적으로 사고해야 동물뿐 아니라 보호자의 건강도 챙길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환경을 개선하려면 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했지만, 당장 맹지의 숨통을 틔워줄 방법은 약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알약 형태의 스테로이드제를 처방받았지만, 단기적인 대책이었습니다. 김 원장은 “스테로이드는 즉각적인 효과는 있지만, 간이나 신장에 무리를 준다"고 설명했습니다.
물론 알약을 끊으면 다시 기침이 시작됩니다. 그렇기에 보통은 알약을 대신해 흡입하는 약물을 사용합니다. 호흡기에 약물 흡수율이 높아져 즉각적으로 약물이 작용하니, 효과는 높이는 동시에 부작용을 낮출 수 있는 겁니다.
그러나 여기서 또 고양이의 예민한 성격이 발목을 잡는 사례가 종종 있다고 합니다. 많은 경우 호흡기 치료를 한번 경험한 고양이는 숨쉬기 편해지는 걸 스스로 느껴서 다음 치료는 잘 받게 된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 첫걸음을 떼는 게 쉽지 않다는 겁니다. 예민한 고양이의 성격상 눈과 코를 가리는 흡입기를 본능적으로 거부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하네요.
맹지 역시 길생활을 많이 했던 만큼 기본적으로 예민한 성격이라고 합니다. 그래도 정은 씨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겁이 없는 탓에 알약을 잘 거부하지도 않았고, 병원을 크게 거부하지도 않았다고 하네요. 그래서 크게 긴장하지 않고 첫 흡입기 치료를 시작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 덕에 지금은 아주 능숙하게 흡입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물론 약을 잘 받아들이는 겁 없는 맹지 덕분이기도 하지만, 보호자가 적절한 ‘보상’도 챙겨줬다고 합니다. 바로 맹지가 좋아하는 ‘머리 만져주기’였죠. 흡입기를 사용하면서 머리를 만져주면 맹지도 안정감을 느끼는 듯 얌전하게 기다려준다고 하네요. 덕분에 흡입기를 할 때면 ‘좋아하지는 않지만, 싫어하지도 않는’ 단계에 이르기까지는 했다고 합니다.
천식과 싸우며 훌쩍 지나간 4년이 지나자, 정은 씨는 맹지가 나이가 들었음을 실감할 때가 많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집안에 있는 것들을 모두 부수는 맹랑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요즘에는 보호자 곁에 자주 다가와 배를 만져달라고 하는 평화로운 시간이 더 늘었죠.
'여기에 있으니 몸도 편안해지고, 괜찮아진 것 같다'는 것일 수도 있고, 나이가 들어서 기력이 조금은 떨어졌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그런지 여전히 하루하루 더 친해지는 느낌을 받고 있죠. 앞으로도 이렇게 친구처럼, 엄마처럼 더 나은 삶을 줄 수 있는 보호자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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