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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후 쓰레기통 직행하던 의상, 다시 무대에 오를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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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루에 약 1㎏에 달하는 쓰레기를 버립니다. 분리배출을 잘해야 한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지만, 쓰레기통에 넣는다고 쓰레기가 영원히 사라지는 건 아니죠.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고 버리는 폐기물은 어떤 경로로 처리되고, 또 어떻게 재활용될까요. 쓰레기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연극배우 유혜성(27·가명)씨의 집 한편에는 정체 모를 물건이 가득 쌓여있습니다. 조선 시대 사또 모자, 타자기, 뾰족한 보석이 여럿 달린 왕관 그리고 유럽 중세 귀족이 입었을 만한 망토도 옷걸이에 걸려 있습니다. 모두 그가 공연할 때 썼던 소품과 의상입니다.
평소에 쓸데가 있어서 모아둔 건 아닙니다. 그저 언젠가 다른 공연에서 쓸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 공들여 구하거나 수선한 의상이라 애착이 가서 하나둘 모아둔 게 방 하나를 가득 채우게 됐다네요. 또 다른 이유는 '죄책감'입니다. “공연이 끝나자마자 바로 버려지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는 겁니다.
연극배우나 무용수처럼 공연을 하는 예술인에게 무대와 의상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합니다. 관객들이 극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돕고 배우의 연기를 돋보이게 하니까요. 소품 위치도 의자 하나, 액자 하나까지 어느 하나 쉽게 결정된 것이 없습니다. 촘촘하게 설계된 무대에는 공연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수개월, 수년간의 고민이 녹아 있지요.
하지만 무대를 채웠던 거의 모든 것은 공연이 끝난 뒤 갈 곳을 잃게 됩니다. 배우들의 화려한 조력자였던 소품과 의상은 쓰레기통으로 직행해야 할 처지가 되죠. 보관할 장소도, 다시 쓰일 거란 보장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공연 중 다소 훼손됐다면 버려도 덜 아깝겠죠. 하지만 멀쩡한 소품과 의상도 대부분 폐기된다고 합니다.
공연 무대에서 나오는 폐기물 규모에 대해 정확한 통계는 없습니다. 다만 추정해 볼 수는 있습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지난해 발표한 '2021년 문화예술활동현황조사'에 따르면, 2021년 한 해 공연예술 분야에서 창작 초연된 작품은 1,437건으로 총 8,675회 무대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예술계에 따르면 초연작 가운데 다음 공연을 기약할 수 있는 작품은 거의 없다고 해요. 무대에 투입된 모든 자원이 ‘일회용’이나 다름없는 처지가 되죠. 더구나 그해는 코로나19 유행 탓에 공연 규모가 2019년의 64.2%에 그쳤다고 하니 평소 얼마나 많은 쓰레기가 발생했을지 짐작이 갑니다.
2021년에는 재공연 작품이 1만7,123건, 공연 횟수는 총 9만4,334회로 초연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재공연을 하면 기존 소품이나 의상을 재사용할 수 있으니 환경에 좋은 일이라고 언뜻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리 녹록지 않습니다. 규모가 크지 않은 극단은 소품을 보관하는 일조차 부담스럽기 때문입니다. 전용 연습실이 있다면 잠시나마 그곳에 보관할 수 있겠지만, 연습실이 없는 극단이라면 월 15만~20만 원을 들여 컨테이너 창고를 대여해야 합니다. 하지만 연습실 대여료조차 아까운 형편에 창고까지 빌리는 건 언감생심이라네요. 유씨가 속한 극단도 마찬가지. 유씨는 “공연이 잡힐 때마다 그때그때 필요한 걸 구해 쓰는 게 가장 효율적이지만, 쓰레기가 많이 나와서 죄책감이 들 때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나마 대규모 극단은 자체 창고를 마련해 공연 물품 재사용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국립극단은 공연이 끝나면 소품 가운데 파손품, 종이 재질 등 20~30%만 버리고 전량 보관한다고 합니다. 의상 또한 전부 창고에 보관했다가 적절히 수선해 재활용하는데, 의상 제작비가 만만치 않다는 현실적 이유도 있습니다. 세종문화회관 역시 공연 소품과 의상을 보관하는데요. 재공연이라면 보관 물품 대부분을 재사용할 수 있지만 새로운 작품이라면 재사용률이 10% 정도에 불과합니다. 작품에 맞춰 소품 대부분을 새로 제작하기 때문입니다.
공연 폐기물은 환경은 물론 비용 면에서도 골칫거리입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2020년 7건의 콘텐츠 창제작·전시 사업을 했는데, 소요된 예산 23억2,300만 원 중 21.3%에 달하는 4억9,400만 원이 공간 구축 및 철거, 폐기물 처리 비용이었습니다. 특수 제작한 목재 가벽이나 전시 가구 등이 다른 전시에 쓰기 어려워 고스란히 버려졌다고 합니다.
공연 쓰레기가 무섭긴 하지만 그렇다고 일회성 공연을 줄일 순 없습니다. 창작 경험이 쌓여야 더 좋은 작품이 탄생하니까요. 서울시와 서울문화재단이 지난달 공연물품 공유 플랫폼 ‘리스테이지서울’을 개설한 이유입니다.
리스테이지서울은 공연 소품을 보관하고 예술인들이 서로 빌려 쓸 수 있도록 돕는 플랫폼입니다. 서울문화재단은 현재 서울 성수동에 있는 창고에 의류·소품 3,000여 점을 모아두고 원가의 5% 미만 수수료를 받고 대여하고 있습니다. 웹사이트를 통해 대여도 가능하죠. 수수료는 보관 및 수선 비용으로 씁니다. 물품 중에는 재단에서 수집한 것도 있지만, 예술인 개인이나 극단이 보관을 위탁한 것도 있습니다. 지난해 5월 시범운영 이후 461점이 대여·위탁됐다고 해요. 극단은 물론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예비 배우들도 이곳을 이용했습니다.
임지은 서울문화재단 무대기자재공유센터 매니저는 “리스테이지서울은 물품을 보관할 공간이 없고 소품·의상 비용을 절감해야 하는 예술인들을 위해 개설한 것”이라며 “기후위기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진 예술인도 많지만 여건상 실천이 어려운 만큼 이들의 친환경 실천을 돕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머지않은 미래에 재사용 소품과 의상으로만 꾸며진 친환경 연극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우리가 몰랐던 쓰레기(記)'는 이번 회차로 연재를 마무리합니다. 새로운 기후·환경 연재 기획으로 앞으로도 2주에 한 번씩 독자 여러분을 찾아뵙겠습니다. 변함 없는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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