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회장 떨어뜨리며 존재감 커진 포스코 후보추천위원회, 그룹 안팎 흔들기에 끝까지 버틸 수 있을까

입력
2024.01.30 04:3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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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추천위 구성 사외이사, 선임 과정부터 독립
②사내이사보다 다수, 이사회 의장도 맡아
③"시총, KT의 10배… 경영공백 위험성 훨씬 커"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의 22일 모습. 연합뉴스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의 22일 모습. 연합뉴스


4일 포스코홀딩스 최고경영자(CEO) 후보추천위원회(후추위)가 최정우 회장을 다음 회장 후보군에서 탈락시켰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재계는 깜짝 놀랐다는 반응이 많았다. 3연임 도전을 앞둔 현 회장을 첫 심사에서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후추위가 현 회장에게 유리하게 절차를 진행할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던 그룹 안팎의 인사들을 머쓱하게 만들었다는 평가도 나왔다. 아울러 포스코 후추위의 역할을 주목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CEO 후추위를 구성하는 사외이사(7인)의 독립성이 보장돼 있기 때문에 가능한 상황이라는 게 그룹 안팎의 설명이다. 포스코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전직 경제관료는 "포스코 사외이사는 현직 회장이나 정부에서 뽑는 게 아니다"라며 "이 때문에 사외이사로 선임되고 현직 회장을 만나면 '나는 한 일이 없다'고 말할 정도"라고 말했다. "사외이사들이 사내 경영진이나 정치권의 영향력 밖에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심지어 사외이사에 빈자리가 생길 때도 마찬가지다. 사외이사 3인으로 꾸려진 '이사 후보추천위원회'가 심의를 거쳐 최종 후보를 뽑아 주주총회에 추천한다. 현직 회장을 포함한 사내이사가 사외이사 선임에 개입할 여지를 최소화하기 위해 이사회를 거치지 않은 것. 이때 이사 후추위는 각계 원로 5인으로 구성된 '사외이사 후보추천자문단'으로부터 5배 수의 후보를 추천받는다. 이 자문단도 사외이사진이 선정한다.

CEO 후추위 멤버를 뽑는 과정부터 여러 단계를 거치는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있다. "포스코 사외이사는 회장이 자신을 뽑아줬다고 생각하지 않는 대신 자신이 회장을 뽑았다고 생각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재계 관계자도 "사외이사 선정은 물론 이사 후보추천위 자문단 구성도 사외이사진이 하기 때문에 이들로 구성된 후추위의 결정에 사내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구조"라며 "최 회장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포스코가 이런 사외이사 선임 절차를 마련한 건 노무현 정부 시절이던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상부 전 회장이 포스코홀딩스 주주총회 전날 사퇴 의사를 표명하면서 바통을 넘겨받은 이구택 당시 회장이 구축했다. 그는 2004년 그룹의 안정적 지배구조 체제, CEO 승계 절차 마련을 위한 연구를 외부 전문가에게 의뢰했다. 이에 따라 2006년 지금과 비슷한 사외이사 선임 절차와 지배구조 체제가 갖춰졌다. 현재 포스코홀딩스 이사회는 사외이사가 7명으로 사내이사(5명)보다 많고 이사회 의장도 사외이사다.


입건에도 전원 퇴진 않고, CEO 선임 절차 진행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 전경. 포스코홀딩스 제공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 전경. 포스코홀딩스 제공


이 때문에 후보추천위원들이 모두 입건된 뒤에도 CEO 추천 절차를 미루거나 물러날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 나온다. 12일 서울 수서경찰서가 최 회장은 물론, 사외이사를 포함한 포스코홀딩스 이사 12명과 직원 4명을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입건해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후추위는 "겸허한 자세로 지적을 받아들인다"며 유감의 뜻을 나타냈지만 이후 한 명도 물러나지 않고 다음 CEO 선임 절차를 일정대로 진행하고 있다.


앞서 후보추천위는 24일 그룹 내외부 인사 12명을 차기 회장 후보군 '쇼트 리스트'로 압축했다고 밝혔다. 이어 31일 예정된 회의에서 후보를 다섯 명 안팎으로 추려 파이널 리스트 후보 명단을 알릴 예정이다. 이후 면접을 거쳐 2월 중 최종 후보를 뽑을 계획이다. 포스코그룹 다음 회장은 3월 21일 주주총회에서 확정된다.


"현직 회장, 정부 영향권 밖... 끝까지 갈 것"

경북 포항시 포스코 포항제철소 전경. 한국일보 자료사진

경북 포항시 포스코 포항제철소 전경. 한국일보 자료사진


일부에서는 최근 포스코를 둘러싼 각종 논란이 KT의 전례를 되풀이하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2022년 구현모 전 KT 대표가 연임에 도전하는 시점에 검찰이 'KT 일감 몰아주기 의혹'을 본격 수사했다. 이어 구 전 대표의 사퇴와 여권의 압박이 이어지면서 KT 사외이사들이 줄줄이 사퇴하고 새 이사진을 꾸려 후임 CEO를 뽑았다. 그럼에도 포스코 관계자는 "현재 후추위 위원 구성이나 면면을 보면 차기 회장 추천 절차를 미룰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따져봐도 포스코에 KT와 같은 경영 공백이 생기면 우리 경제에 끼치는 영향은 매우 클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KT는 상장사 10개를 거느렸지만 사업 분야가 다수가 정보기술(IT)로 시가총액 10조 원 규모다. 반면 포스코는 상장사 6개의 사업 분야가 철강, 이차전지, 소재 등으로 여럿인 데다 시가총액 100조 원을 돌파했던 기업 집단이기도 하다. 이런 포스코는 지난해 대기업 집단 자산 순위에서 롯데그룹을 제치고 5위에 올랐다.

KT와 같이 경영 공백이 커질 경우 파급 효과는 걷잡을 수 없고 국민 경제에 끼칠 해도 훨씬 크다는 얘기다. 포스코 지배구조, CEO 승계 절차 개선안을 연구했던 박경서 고려대 경영대 교수는 "과점 성격이 강하고 사업 영역이 주로 국내인 KT와 달리 포스코그룹은 철강, 이차전지, 수소에너지 등 사업 분야가 다이내믹한 변화를 보이며 해외까지 널리 퍼져 있다"며 KT 전례와 같은 장기 경영 공백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다만 국민연금공단이 후추위의 CEO 선임 절차에서 공정성 문제를 제기했던 적이 있어 앞으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현 후추위원들이 물러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는 뜻이다. 앞서 김태현 국민연금 이사장은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포스코홀딩스 대표 선임은 내외부인 차별 없는 공평한 기회가 부여돼야 하며 공정하고 투명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공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은 포스코홀딩스의 주요 주주(6.71%, 지난해 11월 기준)로 사실상 대주주 역할을 하고 있다.

김청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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