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범죄 규제

입력
2024.01.30 17:5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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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이 25일 오후 5시쯤 서울 강남구 청담동 한 건물 안에서 괴한에게 머리를 가격당하고 있다. 괴한은 15세 중학생으로 밝혀졌다. 사진은 배현진 의원 피습 관련 CCTV 화면. 배현진 의원실 제공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이 25일 오후 5시쯤 서울 강남구 청담동 한 건물 안에서 괴한에게 머리를 가격당하고 있다. 괴한은 15세 중학생으로 밝혀졌다. 사진은 배현진 의원 피습 관련 CCTV 화면. 배현진 의원실 제공

미국은 1968년 4월 11일 민권법에 인종차별 등에 대한 증오범죄 규제를 담았다. 린든 B 존슨 대통령 시절이다. 1861년 남북전쟁과 노예제 폐지 이후에도 흑인에 대한 차별과 폭력이 끊이지 않았던 다인종 국가의 내부 모순을 감안할 때 늦어도 한참 늦은 법 제정이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로 유명한 인종차별 폐지 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가 인종 분리주의 대선 후보에게 경도된 백인우월주의자의 흉탄에 목숨을 잃은 지 열흘 뒤다. 인종차별 문제가 가히 내란 지경에 이르자 미국 정치권도 그제야 위기감에 반응을 한 것이다.

□ 당시 증오범죄 규제는 인종과 피부색, 종교, 출신국가를 이유로 한 의도적인 가해나 무력사용, 위협에 대한 연방정부의 기소 권한을 담았다. 그 후 성정체성과 성적 지향, 장애 등을 이유로 한 위협과 폭력에 대해서도 증오범죄로 규정했다. 특정집단에 따른 편견이 동기로 작용하는 터라 편견범죄로 불리기도 한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신장과 맞물려 서구에서 증오범죄 범위 확대는 필연적이라 할 수 있다.

□ 공적인 노출이 잦을 수밖에 없는 정치인에 대한 폭력과 위협 행위는 증오범죄로 보는 게 타당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목을 찌른 흉기 습격이나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에 대한 돌 폭행은 정치 양극화와 선동에 휘둘린 청맹과니 편견이 폭력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17차례나 돌을 내리쳤다는 15세 어린 중학생의 폭력성은 정신적 불안정이나 분별없는 치기라는 말로는 설명이 어렵다. 이해하기 어려운 증오심의 발현이다.

□ 이념적 대립에 테러와 암살이 난무했던 해방 정국도 아닌 민주주의가 확립된 지금 정치테러가 자행되는 건 사회적 위기 신호다. 오랜 역사를 통해 이념적, 정치적 편견과 이에 수반된 증오는 인종과 종교 대립 이상으로 극단적이고 집단적인 폭력성을 잠재하고 있다. 다문화와 젠더 등 편견과 대립이 다층적인 사회 현실에서 폭력이 수반되는 데 대한 용납 불가의 메시지가 절실해 보인다. 물론 서구의 예를 보더라도 증오범죄가 근절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 역시 사회적 경각심을 일깨울 필요가 있겠다. 증오범죄에 대한 법 제정을 서두르는 게 어떨까 싶다.

정진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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