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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찬의 베토벤은 젊고 아름다운 청년이었다 [서울시향 협연 리뷰]

입력
2024.01.28 17:00
20면

25, 26일 서울시향 츠베덴 취임연주 협연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연주

편집자주

20여 년간 공연 기획과 음악에 대한 글쓰기를 해 온 이지영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이 클래식 음악 무대 옆에서의 경험과 무대 밑에서 느꼈던 감정을 독자 여러분에게 친구처럼 편안하게 전합니다.

25일 예술의전당에서 피아니스트 임윤찬과 서울시향이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를 연주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25일 예술의전당에서 피아니스트 임윤찬과 서울시향이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를 연주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서울시립교향악단(서울시향)의 새 음악감독 얍 판 츠베덴의 취임 연주회가 지난 25, 26일 이틀간 열렸다. 5년 임기로 2022년 9월 서울시향에 선임된 네덜란드 출신 지휘자 츠베덴은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십으로 오케스트라 전체에 탄력과 근력을 키워낸다는 평을 받는다. 그의 취임 연주회 첫 테이프를 끊은 건 피아니스트 임윤찬이었다. 덕분에 이틀간의 무대는 더욱 화제를 모았다.

임윤찬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를 협연했다. 일본 도쿄필, 원 코리아, 광주시향과도 같은 작품을 연주한 적이 있는 그는 이번 무대에선 좀 더 여유 있는 모습을 보였다. 다이내믹(셈여림)이나 루바토(박자를 유연하게 조절)를 표현하는 부분마다 목소리가 또렷했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분명하게 들려 준 피아니스트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프레이징(선율의 자연스러운 구분)으로 합을 맞춘 서울시향이 훌륭한 앙상블을 이뤘다.

자신만의 이야기 분명히 들려준 임윤찬

25일 예술의전당에서 피아니스트 임윤찬과 서울시향이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를 연주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25일 예술의전당에서 피아니스트 임윤찬과 서울시향이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를 연주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서울시향의 연주는 색깔이 꽤 강했다. 현악 파트에서의 프레이징 표현이 유려하고 섬세했고, 긴 호흡의 느낌보다는 짧고 강직한 느낌이 도드라졌다. 임윤찬의 베토벤 해석은 이와 잘 어우러졌다. 그는 소나타와 변주곡 등의 프로그램에서 베토벤 작품을 다소 충격적이다 싶게 해석하곤 했다. 이번 무대에선 그런 임윤찬도, 서울시향도 자신들의 색깔을 충분히 표현하면서도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베토벤은 고전 중의 고전이고, 연주자마다 부담을 안고 임할 수밖에 없는 작곡가이다. 연주회에 갔다가 베토벤의 위상에 치인 연주자의 부담감만 듣고 오는 경우가 있다. 임윤찬은 달랐다. 그의 연주에서 그와 비슷한 또래인 '청년 베토벤'의 생기가 더 크게 들렸다. 건반을 터치하는 깊이, 음색, 표현의 유연성 등 어느 한 곳이든 감정이나 의의를 담으려고 과잉으로 표현하지 않으려 했다. 스스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에만 집중하고 그것을 열심히 풀어냈다. 그것이 임윤찬의 베토벤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 요소이기도 하다.

'매 무대 다른 해석' 임윤찬의 설득력

25일 예술의전당에서 피아니스트 임윤찬과 서울시향이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를 연주한 뒤 무대 인사를 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25일 예술의전당에서 피아니스트 임윤찬과 서울시향이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를 연주한 뒤 무대 인사를 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임윤찬의 독보적인 존재감은 연주자들 사이의 미세한 차이를 기분 좋게 경험하게 해 준다는 데 있다. 2022년 미국 밴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전에 임윤찬의 이름을 각인시킨 두 명의 작곡가가 있다. 리스트와 베토벤이다. 임윤찬의 밴클라이번 결승전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연주 실황 조회수는 지금도 기록을 경신 중이지만, 이는 늘 인기 있었던 곡이다. 리스트의 '순례의 해' '초절기교 연습곡'은 임윤찬이 아니었다면 작곡가와 작품이 대중에게 지금처럼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임윤찬의 리스트 연주 중 필자가 충격적으로 받아들인 건 '순례의 해' 중 '단테 소나타를 읽고'이다. 그는 리스트 음악에 대한 이해 범위를 넓힌 동시에 리스트 연주로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알렸다.

임윤찬의 베토벤 연주 역시 늘 놀라웠다. 2020년 16세였던 그는 서울 금호아트홀연세에서 베토벤의 환상곡풍 소나타인 13번, 14번 ‘월광’을 연주했다. 시작부터 건반을 짚어내는 깊이가 가볍고 유연하고 화려했다. 베토벤 연주는 무겁고 진지한 어조가 깔려 있어야 할 것 같고, 그런 연주가 익숙하게 들린다. 그와 달리 임윤찬은 어둡지 않은 음색과 빠른 템포에다 모차르트 작품을 연주하는 듯 손가락 끝을 살려 내면서 유연하게 건반을 훑어 나갔다. 과거 수없이 들었던 베토벤 연주와 달랐다. 처음엔 당황스러웠는데 신기하게도 그 낯섦이 불편하지 않았고, 동화되고 감탄하게 되더니 결국 '무서운 연주자' 임윤찬을 기억하게 됐다. 주저함 없이 펼쳐 낸 젊은 연주자의 해석에 압도됐다. 심지어 "베토벤을 이렇게 연주할 수 있다"고 관객들을 설득하는 것처럼 들리기까지 했다.

얍 판 츠베덴 서울시향 음악감독이 25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취임 연주회에서 연주를 마친 뒤 단원들과 무대 인사를 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얍 판 츠베덴 서울시향 음악감독이 25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취임 연주회에서 연주를 마친 뒤 단원들과 무대 인사를 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젊은 연주자와 새로운 지휘자는 도전과 변화와 상상력으로 무장한 채 새로운 음악을 찾아 경계에 서 있는 사람들이다. 무대에 선 츠베덴과 임윤찬이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보편적 해석'이 뭔지 모를 리 없다. 하지만 '다름'을 선택하고 경계를 뚫고 간 자리에는 베토벤, 리스트, 말러와 같은 인물들이 있었다. 변화는 이끄는 사람, 이것을 지켜보는 사람 모두에게 시간과 용기가 필요하다. 결실이 중요할 수도 있겠지만 과정에서의 즐거움이 더 큰 여정이 되기를 바란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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