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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년 역사 '다이하쓰'마저… 잃어버린 30년에 일본 제조업 품질 부정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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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서운 한파가 몰아친 지난 24일 일본 오사카부 이케다시의 다이하쓰 본사 주변은 날씨만큼이나 을씨년스러웠다. 아주 가끔 건물을 드나드는 직원들은 취재를 거부했고 주변엔 행인조차 드물었다.
한 달 전 품질 인증 부정 실태가 발표되기 전까지만 해도 활기가 넘쳤던 곳이다. 토요일이면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자동차 회사'가 만들었던 역대 자동차들을 보기 위해 본사 옆 전시장을 찾은 유치원생과 초등학생들로 주변이 북적거렸다. 매일 다이하쓰로 출퇴근하는 직원들은 자부심이 넘쳤다. 하지만 지난달 20일 다이하쓰가 자동차 제조 과정에서 35년에 걸쳐 무려 174건의 부정을 저질렀다는 제3자위원회의 발표가 나온 뒤 공장은 가동을 멈췄다. 자연스럽게 주변 부품 제조 공장들도 문을 닫아야 했다.
다이하쓰는 1907년 설립된 '하쓰도키(발동기)제조'가 전신인 사실상 일본 최초의 자동차 회사다. "과학 기술로 평범한 일본인도 자동차를 사서 풍요로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철학을 바탕으로 주로 경차와 소형차를 제조, 100년 넘게 일본인의 사랑을 받아 왔다. 2022년 4월부터 1년간 일본 안팎에서 80만 대를 팔았고, 주문자상표부착(OEM) 방식을 포함해 글로벌 생산 대수는 142만 대에 달했다.
이런 회사가 장기간에 걸쳐 부정 행위를 저질러 왔다는 사실은 일본인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한때 품질과 안전성 면에서 세계 최고로 불렸던 일본 제조업이 '부정의 온상'으로 전락한 이유는 뭘까.
이케다시에서 만난 다이하쓰의 전 직원 A(66)는 오랫동안 근무했던 회사에서 부정이 만연했던 이유를 "돈 버는 것만 우선시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안전을 경시하고 비용 절감에 과도하게 집착한 것이 문제라는 얘기다.
20대 때부터 다이하쓰에서 약 40년간 일한 후 수년 전 퇴직했다는 그는 "오래전에는 좋은 차를 만들기만 하면 됐는데 회사가 점점 커지고 도요타자동차의 자회사까지 되면서 '돈을 더 많이 벌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해졌다"고 말했다. 다이하쓰는 1988년부터 도요타가 절반의 지분을 가졌고, 2016년엔 도요타의 100% 자회사가 됐다. 그는 "이전까지 5분 동안 만들던 것을 4분 30초로 줄이라는 식의 압박이 점점 심해졌다"고 회고했다.
실제로 제3자위원회는 부정 행위가 계속 발생한 이유로 △신차 개발 기간을 과도하게 단축하고, △비용 절감을 위해 안전 관련 부서의 인력을 10년간 70%나 감축한 것을 꼽았다.
도요타 출신 전 회장 주도로 2011년 가을 출시한 경차 '미라이스'가 개발 기간을 대폭 감축하는 데 성공한 뒤 다이하쓰의 신차 개발 기간은 갈수록 더 줄었다. 인증 시험에 불합격하거나 시험 준비 기간이 길면 목표 기간 안에 개발을 완료할 수 없다. 부정 사례가 속출했다. 이 중에는 에어백이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충돌 실험 때 충격 감지 센서를 사용하지 않고 타이머를 사용해 에어백을 작동시킨 사례마저 있었다.
한때 품질지상주의를 외쳤던 일본 기업이 비용 절감 때문에 안전까지 외면하게 된 배경엔 '잃어버린 30년' 동안 계속된 경제 침체의 영향도 있다. 이 기간 일본 경제는 물가와 임금이 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가격이 오르면 바로 외면했다. 결국 기업들은 투자를 외면하고 비용 절감에만 매달렸다.
그 결과 일본 제조업체에서 부정 행위가 잇따라 드러났다. 도요타의 또 다른 자회사였던 히노자동차도 2022년 엔진 배출가스와 연비를 조작한 사실이 확인돼 관련 엔진을 탑재한 차량 생산이 중단됐다. 같은 해 미쓰비시전기가 변압기 제조 과정에 40년 동안 부정이 있었다고 발표했다.
와세다대 교수를 지낸 경영 컨설턴트 엔도 이사오 시나컨설팅 대표는 "오랫동안 일본 기업이 이익만 중시하고 투자는 억제한 채 그 부담을 모두 현장에 떠넘긴 결과"라고 말했다.
제3자위원회는 문제가 있을 때 현장 직원들이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는 기업 문화도 이번 사태 원인으로 지목했다. 일본 국토교통성도 '기업의 체질'을 문제 삼아 지난 16일 다이하쓰에 시정 명령을 내렸다.
전문가들은 상명하복식 기업 문화 때문에 평소 문제가 있을 때 이를 솔직하게 알리고 회사 전체에 경고할 수 있는 기업 구조를 정착시키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케다 나오토 자동차평론가는 도요타의 '안돈' 시스템을 예로 들었다. 원래 등불을 뜻하는 안돈은 도요타 공장에선 각 공정별 상황에 따라 정상 작동 여부를 램프로 표시한 현황판을 뜻한다. 1966년 도입된 안돈 시스템은 초창기엔 끈으로 작동하는 방식이었다. 제조 현장에서 문제가 있으면 끈을 잡아당겼고, 이 끈이 경고등을 켜 라인 전체에 문제 발생을 알렸다. 자동화 후로 끈은 없어졌지만 지금도 안돈 시스템은 건재하다.
이케다 평론가는 "'도요타 생산 방식'이 전 세계에 확산되면서 안돈 시스템도 널리 알려졌지만 다이하쓰에선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안돈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불을 켜는 사람을 절대 혼내서는 안 되고 오히려 '회사를 구한 영웅'이라고 칭찬해야 한다"며 "다른 회사에선 오히려 '왜 빨리 진행하지 못하게 막고 있느냐'고 혼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미야지마 히데아키 와세다대 교수도 "도요타 아키오 도요타자동차 회장이 시가현 공장에 가서 '여기 계신 분들 중 문제 사례를 고발해 주신 분이 있는데 고맙다'고 말했다고 한다"며 "문제를 제기해 생산라인을 멈추거나 늦추면 큰 비용이 발생하지만 그럼에도 '잘했다'고 칭찬해 주는 쪽으로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문제가 있다고 손을 들었을 때 사내에서 주는 불이익의 크기가 중요하다"며 "승진이나 근무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등 직원 입장에서 큰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면 부정을 저지르고 있다거나 잘못하고 있다는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이런 조직문화가 좀 더 강하게 나타나는 것은 '평생직장 관념이 다른 나라보다 더 강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쉽게 이직이 가능한 유연한 환경이 아니기 때문에 한 직장에 근무하는 직원이 갖는 불이익에 대한 부담이 다른 나라 직원들보다 더 크다는 것이다.
다이하쓰 가동 중단이 계속되며 오사카 지역 경제도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었다. 오사카부 가도마시에 위치한 금형업체 '가나가와텟코'의 가나가와 요지 회장은 "지난해 9, 10월 다이하쓰로부터 의뢰받아 올해 2, 3월에 공급하기로 했던 주문이 부정 사태로 없어져 버렸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다이하쓰 비중이 30% 정도이고 닛산 등 다른 고객사가 있어서 당분간 직원 월급은 줄 수 있지만, 다이하쓰 비중이 대부분이었던 일부 1차 협력사는 자금 문제로 매우 고생하고 있고 사태가 장기화하면 도산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다이하쓰는 직접 거래가 있는 부품회사 423개사를 대상으로 매출 감소분 등에 대한 보상을 검토하고 있지만 아직 구체적 내용이 발표되지는 않았다.
전문가들은 다이하쓰가 경영진 퇴진, 철저한 재발방지책 마련, 협력사 보상 대책 등을 대대적으로 발표해 여론이 납득한 후에야 생산 재개에 들어갈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도요타가 이번 사건 초반부터 계속 깊이 관여하고 대응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이하쓰의 부활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예상도 있었다.
미야지마 교수는 "그동안 다이하쓰에 맡겨 놓았던 생산라인까지 도요타가 관여를 늘릴 것으로 본다"면서 "보상금 규모가 커지면 자금난에 봉착할 우려도 있으나 이 경우에도 은행이 다이하쓰가 아닌 도요타의 지원을 믿고 대출해 준다면 다이하쓰가 '해체적 재출발'을 통해 다시 한번 부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본 경제의 구조적 변화로 인해 앞으로 일본 기업의 부정이 줄어들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엔도 대표는 "일본은 지난해부터 30년 만에 물가와 임금이 상승하고 있고, 기업들도 가격을 올리고 설비 투자를 늘리는 등 이전의 '축소 지향 경영'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이제 경쟁력 있고 품질 좋은 제품을 제값 받고 파는 시대로 바뀔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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