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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망명' 행진 스웨덴, '이중 과세' 뿔난 영국... 한국 상속세 해법은?

입력
2024.01.29 14:00
수정
2024.01.29 14:15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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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룰 수 없는 숙제, 상속세 개편]
<상> 먼저 나선 선진국
스웨덴, 폐지 후 자본이득세 도입
영국, 단계적 폐지 방안 추진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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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세 부담을 마주한 기업이 고심 끝에 선택하는 것은 주로 ‘국경 탈출(기업 이민)’이었다. 높은 세율을 피하기 위한 ‘세금 망명’으로, ‘리치 노마드(Rich nomad·부유한 유목민)’라는 단어까지 등장했다. 이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스웨덴·포르투갈·슬로바키아(2004년), 체코(2014년) 등은 기업의 세금 망명을 막기 위해 2000년대 들어 상속세를 폐지했다. 상속세의 원조라 불리는 영국도 최근 폐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스웨덴: 기업 떠나자 상속세 폐지

그래픽=박구원 기자

그래픽=박구원 기자

소득의 절반 가까이를 세금으로 거둬 가는 복지국가 스웨덴은 1983년 상속세 최고세율이 70%에 달했다. 1984년 유명 제약회사 아스트라AB의 최대 주주였던 창업주의 부인 샐리 키스트너가 사망하자, 자녀들은 주식을 팔았다. 상속세가 상속 재산을 웃돌았기 때문이다. 주가 폭락 도미노가 시작됐고, 결국 아스트라 가문은 상속세를 마련하지 못해 영국의 제네카(Zeneca)에 인수돼 현재의 아스트라제네카가 됐다.

스웨덴의 유명 가구회사인 이케아(IKEA)는 본사를 네덜란드 델프트로 옮겼고, 창업주는 스위스로 이민을 갔다. 우유팩으로 유명한 테트라팩(Tetra Pak)과, 부동산개발업체 룬더버그(Lundberg)그룹도 스웨덴을 떠났다.

경제 전반에 후폭풍도 거셌다. 기업투자가 줄었고, 실업률이 증가했다. 세수가 줄어 경제가 어려워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2002년 집권한 사회민주당 좌파 정부가 상속세 체계 전반을 돌아보고 내린 결론은 '상속세 폐지'였다. 상속세 세수는 전체 세액 중 0.3~2%에 불과한데, 스웨덴으로 복귀한 기업이나 창업한 기업이 내는 법인세와 그곳의 근로자가 내는 소득세 등의 세수가 훨씬 많다는 것이다. 대신 한국의 양도소득세 개념인 ‘자본이득세’를 도입했다. 상속 재산을 물려받을 때가 아닌, 추후 처분할 때 생기는 차익에 세금을 한꺼번에 매기는 것이다.

영국: '이중 과세' 거센 비판에 고민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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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상속세를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소득이 발생하면 과세가 이뤄지고 있는데 또 상속세를 매기는 것은 ‘이중 과세’라는 비판이 커지고 있어서다. 영국의 상속세율은 한국의 최고세율(50%)보다 낮은 40%로, 32만5,000파운드(약 5억4,000만 원)를 넘어선 재산에 단일 세율을 적용한다. 살고 있는 집을 상속하면 면세 기준이 50만 파운드(약 8억5,000만 원)까지 올라간다.

하지만 최근 집값 등 자산 가치가 높아지면서 상속세를 내는 국민 비중이 4%로 높아져 불만이 거세졌다. 상속세가 고소득층에만 적용되는 문제가 아닌, 중산층도 내야 하는 세금이 됐다는 것이다.

기업 이탈을 우려해 상속세를 폐지한 스웨덴과 고물가로 인한 이중 과세 문제로 상속세 논의에 불이 붙은 영국의 사례는 한국에 시사하는 점이 많다. 12조 원의 상속세를 내기 위해 대출을 받는 삼성 일가, 상속세를 내지 못해 주식으로 물납해 기획재정부가 2대 주주가 된 넥슨 등 한국도 기업 이탈 문제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부동산 가격 등 재산 가치가 올라가 상속세 납부 비율이 약 6%를 넘기게 된 상황은 영국과 비슷하다.

다만 양국의 실상을 더 정확히 파악해 고민할 필요는 있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연구원 관계자는 "스웨덴은 상속세 폐지 대신 자본이득세 도입, 사회 환원이 활발한 기업 문화 등을, 영국은 소득세율이 높은 편인 데다 국민보험기여금(세율 11%) 부담도 커 이중 과세 논란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며 "한국의 상속 체계 전반을 정확히 따져 보고 어떤 게 조세형평성과 재정 확보에 도움이 될지 사회적 논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룰 수 없는 숙제, 상속세 개편] 글 싣는 순서

<상> 미리 나선 선진국

<중> 뒤처진 한국

<하> 개편 어떻게






조소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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