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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부인과 '디지털 신독'

입력
2024.01.22 16: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디지털기술이 발달하면서 가뜩이나 어려운 '신독'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게티이미지

디지털기술이 발달하면서 가뜩이나 어려운 '신독'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게티이미지

신독(愼獨)이란 말이 있다. '군자는 혼자 있을 때도 더욱 삼가고 경계한다'는 뜻이다. 중국 고전 중용(中庸)은 “군자는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 삼가고(戒愼乎 其所不睹), 들리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 두려워한다(恐懼乎 其所不聞)”고 쓰고 있다.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경지에 오른 상태가 ‘신독’이다. 유학에서 말하는 개인 수양의 최고 단계인 셈이다.

□신독은 참으로 실천하기 어려운 강령이다. 조선 중기 성리학의 거두인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 선생도 신독을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하는데, 그 말을 거꾸로 새긴다면 위대한 성현들도 신독을 어긴 적이 꽤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다산 정약용도 ‘높은 기준으로 빈틈없이 선함을 지켜나가려고 했지만, 완벽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이기에 매사에 선함을 지키기는 어렵다’는 걸 여러 차례 인정했다.

□21세기 후손들은 선조들보다 ‘신독’을 지키는 게 더욱 어렵다. 품성이 예전보다 불민한 것도 있지만, 도처에 신독을 감시하는 장치가 설치되어 있는 것도 큰 문제다. 스마트폰이나 폐쇄회로(CC)TV, 유전공학 기술이 발달하면서 ‘만인에 의한 실시간 감시’가 이뤄지는 세상이 되었다. 웬만큼 조심하지 않으면 신독은커녕 평범한 사람의 삶은 일탈의 연속이라는 걸 증명할 뿐이다. 기억조차 못하는 곳에서 저지른 교통법규 위반 티켓이 수시로 날아들고, 드물기는 해도 유전자 검사를 통해 예상치 못한 친자관계가 확인되는 경우도 있다.

□명품백 논란과 관련, 대통령 부인의 사과가 여당 내부에서도 쟁점이 되고 있다. 대한민국은 대통령 부인에게 신독을 요구할 정도로 엄격한 도덕률의 사회는 아니다. 몰래카메라를 찍은 이들의 불순한 의도도 명백하다. 그러나 논란의 본질이 ‘기획 공작’뿐이라는 주장은 수긍하기 어렵다. 국민 정서와 동떨어졌을 뿐만 아니라, 디지털시대 일반 시민에게 요구되는 신독의 의미를 외면하는 인식이다. 많은 국민들은 몰카를 비난하면서도, 대통령 부인의 몰카 속 당당하지 못한 모습에 아쉬워하고 있다. 혼자 있을 때 잠시 당당하지 못했다는 진솔한 메시지는 '디지털 신독'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아는 일반 국민의 호응을 얻어 낼 것이다.

조철환 오피니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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