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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발' 안 먹히는 미국… 이란·후티·이스라엘, 통제되는 곳이 없다

입력
2024.01.20 04:30
수정
2024.01.20 09:01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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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파키스탄 보복 용납 못해" 긴장 고조
후티는 '미국 유조선' 공격하며 건재 과시
"이스라엘 휴전 설득 못 하면 중동 평화 요원"

파키스탄 무슬림 단체 소속 활동가들이 17일 이슬라마바드에서 하루 전 이란의 공습을 비난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슬라마바드=AFP 연합뉴스

파키스탄 무슬림 단체 소속 활동가들이 17일 이슬라마바드에서 하루 전 이란의 공습을 비난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슬라마바드=AFP 연합뉴스

이란이 18일(현지시간) 접경국 파키스탄의 보복 공습에 “용납 못 한다”고 격앙된 반응을 내놨다. 미국의 자제 요청에도 긴장 수위를 한껏 높인 것이다. 보복과 보복이 이어질 경우 가자지구 전쟁이 서남아시아로 확산할 수도 있다. 설상가상 친(親)이란 예멘 후티 반군과 이스라엘도 미국의 중동 안정 구상과 정반대 행보를 가속화하면서 미국의 말발이 먹히지 않는 모양새다.

혼란 자극 이란… 건재 과시 후티

인도 해군이 지난 17일 예멘 후티 반군 공격으로 파손된 미국 화물선 '젠코 피카르디' 사진을 18일 공개했다. AP 연합뉴스

인도 해군이 지난 17일 예멘 후티 반군 공격으로 파손된 미국 화물선 '젠코 피카르디' 사진을 18일 공개했다. AP 연합뉴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란 외무부는 이날 성명을 내고 "(파키스탄의 보복 공습을) 용납할 수 없다”며 “이란은 국민과 영토 수호를 '레드라인'으로 본다”고 비난했다. 이날 파키스탄은 16일 자국 영토를 타격한 이란 영토에 보복 공습을 단행했고, 어린이 포함 9명이 희생됐다.

이란 측 발언은 국제사회를 즉각 긴장시켰다. 파키스탄을 비난하며 대치 상황을 이끌어가겠다는 취지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잠재적 핵 보유국' 이란과 ‘비공식 핵 보유국’ 파키스탄 간 충돌이 격해지다 보면 재래식 전쟁과는 차원이 다른 전쟁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또 이슬람 시아파 맹주 이란이 수니파 국가 파키스탄을 선제공격하면서 중동 전체의 시아파 대 수니파 대결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미국, 중국, 유럽연합(EU), 유엔 등 국제사회가 일제히 양측에 자제를 촉구하자, 이란과 파키스탄은 일단 역내 긴장 완화에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파키스탄 외무부는 이튿날인 19일 성명을 통해 "양국 외무장관이 전화로 긴장 완화에 합의했다"며 "두 나라는 테러 대응을 비롯한 상호 관심사에 대해 긴밀하게 조율해야 한다는 점에 뜻을 같이했다"고 전했다.

뼈아픈 건 미국이다. 이란이 수십 년간 평화 관계를 유지하던 파키스탄에 돌연 공습을 가한 건 언제든 미국의 중동 평화 구상을 뒤엎을 수 있다는 경고로 해석된다. WSJ는 "이 공격으로 이란은 '누구든지 타격할 수 있다'는 걸 과시했다"고 짚었다. 이날 이란 성명은 백악관이 “상황 악화를 분명히 원치 않는다”고 말한 뒤 나오기도 했다.

미국은 홍해 안정 유지에도 실패하고 있다. 미군 중부사령부는 이날 후티가 홍해를 지나는 미국 유조선 '쳄 레인저호'에 대함 미사일 2발을 발사했다고 밝혔다. 미사일은 빗나갔지만 미국 CNN방송은 "미국의 작전이 후티를 저지하는 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미군은 이날 예멘 후티 근거지에 다섯 번째 공습을 가하는 등 압박하고 있지만 후티의 공격이 멈추지 않는 등 별다른 성과를 보이지 못한 것이다.

이날 조 바이든 대통령마저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그는 '후티 공습 효과'를 묻는 기자들 질문에 "효과라는 것이 후티의 공격을 중단시킨다는 의미인가"라고 되묻고는 "아니다"라고 답했다. 이어 "공격이 이어질 것인가"라고 자문한 뒤 "그렇다"고 덧붙였다.

후티는 기세등등하다. 후티 수장인 압둘 말리크 알후티는 이날 화상 연설에서 “미국과 직접 대결하고 있는 것은 큰 영광이자 축복”이라며 "위협도, 미사일도, 압박도, 아무것도 우리의 입장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스라엘 휴전 설득 못 하면 중동 안정 요원"

팔레스타인 가자지구가 18일 이스라엘방위군(IDF) 공습을 받아 연기로 자욱하다. AFP 연합뉴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가 18일 이스라엘방위군(IDF) 공습을 받아 연기로 자욱하다. AFP 연합뉴스

결국 이스라엘이 휴전에 나서도록 설득하지 않는 한 미국의 중동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게 중론이다. 벨기에 싱크탱크 국제위기그룹의 브라이언 피누케인 수석 분석가는 WSJ에 “미국은 방화범과 소방수 역할을 동시에 하고 있다”며 “이스라엘에 대한 무조건적 지지와 확전 억제 노력엔 본질적인 모순이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미국의 전후 팔레스타인 국가 재건 계획' 반대 기자회견을 하는 등 이스라엘도 통제 밖이긴 매한가지다.

중동 내 미국의 위상이 한계에 달하고 있다는 신호는 곳곳에서 포착된다. 이날 무함마드 시아 알수다니 이라크 총리는 WSJ 인터뷰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연합군에 대한 정당한 이유가 없어졌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 이슬람국가(IS) 토벌을 위해 용인했던 미군의 이라크 주둔을 철회하겠다고 공론화한 것이다.

WSJ는 “중동 안정을 지향하는 바이든 행정부의 목표가 가혹한 현실에 부딪히고 있다”고 짚었다.


김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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