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중환자실’에서 치료받을 어린이 많은데… 전국 11곳 불과”

입력
2024.01.21 19:50
수정
2024.01.22 18:40
20면
구독

[전문의에게서 듣는다] 조중범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조중범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소아중환자실에서 치료받는 환자 가운데 적지 않은 환자가 '급성호흡곤란증후군'에 노출돼 목숨을 위협받기에 경험 많은 의료진으로부터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삼성서울병원 제공

조중범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소아중환자실에서 치료받는 환자 가운데 적지 않은 환자가 '급성호흡곤란증후군'에 노출돼 목숨을 위협받기에 경험 많은 의료진으로부터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삼성서울병원 제공

환자 상태가 위중하면 ‘중환자실(intensive care unit·ICU)’에서 치료를 받게 된다. 그런데 생후 1개월~18세인 환자는 ‘소아중환자실(pediatric ICU·PICU)’에서, 생후 1개월 미만이라면 ‘신생아중환자실(neonatal ICU·NICU)’에서 치료한다.

소아중환자실에서 치료받는 환자는 50% 정도가 인공호흡기 치료를 받는데 이 중 20%가 ‘급성호흡곤란증후군(acute respiratory distress syndrome·ARDS)’으로 목숨을 위협받는다.

급성호흡곤란증후군은 허파 전반에 염증이 생겨 호흡곤란·빈맥(頻脈)·청색증(靑色症) 등의 증상을 일으키는 질환이다. 이에 노출되면 숨차는 것뿐만 아니라 저산소증과 장기 손상으로 목숨을 위협받는다. 기저 질환이 없을 때도 이 질환에 노출될 수 있다.

급성호흡곤란증후군 교과서를 집필할 정도로 이 분야 권위자인 조중범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를 만났다. 조 교수는 “급성호흡곤란증후군이 심각한 상태라면 어린이·청소년 환자의 30~40% 정도가 목숨을 잃는다”며 “좋은 예후(치료 경과)를 나타내려면 소아중환자실에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한 해 어린이 8,000명 정도가 소아중환자실에서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현재 전국 45개 상급종합병원 가운데 소아중환자실을 갖춘 곳은 11곳에 불과하다.


-급성호흡곤란증후군은 왜 발생하나.

“폐로 흡입된 산소는 포도송이 모양의 공기주머니(폐포·허파 꽈리)에서 이산화탄소와 교환된다. 다양한 원인으로 둥근 폐포막이 흐물흐물해져 폐가 물에 빠진 것처럼 염증성 물로 가득 차게 된다(폐부종). 그러면 고농도 산소를 공급해도 혈액으로 전달되지 못해 폐 전반을 비롯해 온몸에 염증이 발생한다(급성호흡곤란증후군).

급성호흡곤란증후군이 생기는 가장 큰 원인은 폐렴(35%)이고, 위장관 흡인(15%), 패혈증(13%), 물에 빠짐·교통사고 같은 외상 등으로도 발생한다. 폐에 기저 질환이 있을 때도 생기지만 별다른 질환이 없을 때도 갑자기 발생해 목숨을 위협할 수 있다.

세균이 몸속에 침입하거나 조직이 손상되면 염증이 국소적으로 생기지만 이는 몸 회복을 위한 정상적인 반응이다. 일반 폐렴은 대부분 세균이 침범한 부위에만 염증이 발생하기에 다른 폐 부위로 호흡이 가능하다.

하지만 폐가 심각하게 손상됐거나 염증 부위가 광범위하게 커져 급성호흡곤란증후군이 발생하면 폐 기능을 거의 할 수 없게 된다. 이 과정에서 생기는 폐부종은 심장이나 콩팥 기능 이상으로 생기는 부종과 달리 이뇨제 등으로 수분을 제거해도 호전되지 않는 특징이 있다.”


-급성호흡곤란증후군은 어떤 증상이 나타나나.

“처음엔 호흡이 가쁜 정도이지만 증상이 점점 심해져 호흡하기 어렵게 된다. 급성호흡곤란증후군은 크게 △삼출기(exudative phage·혈관이나 림프관 등과 같은 맥관(脈管)의 내용물이 맥관 밖으로 스며 나오는 단계) △증식기(proliferative phase) △섬유화기(fibrotic phases) 등 3단계로 나뉜다.

삼출기에는 염증성 삼출물이 폐에 축적돼 저산소증이 심각해지고, 흉부 X선 검사를 시행하면 폐 전반에 염증이 발생한 침윤(浸潤) 상태다. 이 단계에서 적절히 치료하면 2주 이내 상당히 회복한다. 하지만 환자의 40% 정도는 폐가 딱딱해져 폐 기능을 잃게 되는 섬유화기로 접어든다. 섬유화기가 되면 인공호흡기를 사용해야만 숨을 쉴 수 있고, 혈전증으로 미세 혈관이 막히거나, 폐동맥고혈압·우심실부전 등으로 여러 기관에서 장기부전이 발생해 목숨을 위협한다. 급성호흡곤란증후군으로 어린이가 사망하는 비율은 경도와 중등도에서는 10~20%, 심각 단계에서는 30~40%에 이른다.”


-치료는 어떻게 이뤄지나.

“발병 원인을 알아내 치료하고 회복을 촉진하는 게 기본적인 치료법이다. 폐렴이나 전신 패혈증이 있다면 감염을 치료한다. 더 이상 폐가 손상되지 않도록 치료하면서 산소 부족으로 다른 장기를 해치지 않도록 산소를 적절히 공급한다.

중환자실 환자는 대부분 기도(氣道)에 관을 넣어 직접 산소를 공급하는 인공호흡기 치료를 받는다. 그런데 급성호흡곤란증후군 진단 기준은 ‘고농도 산소를 흡입해도 동맥에서 측정한 산소 농도가 낮을 때’이므로 이미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에게 질환이 발생했는지를 쉽게 알아낼 수 있다.

급성호흡곤란증후군이라면 물에 젖어 쪼그라든 폐를 펴는 것처럼 ‘호기말 양압(呼氣末 揚壓·positive end expiratory pressure)’을 높게 설정해 공기가 폐포에 통할 수 있도록 유지하는 치료를 해야 한다. 호기말 양압은 환자의 내쉬는 숨의 마지막 단계에 압력을 가해 폐포 수축을 늦춰 산소 교환이 많이 이뤄지도록 하는 치료법이다.

하지만 인공호흡기 치료는 ‘양날의 칼’과 같다. 인공호흡기 치료가 환자의 폐를 펴주고 산소 포화도를 높이는 반면 추진 압력(driving pressure)이 너무 강하면 폐포가 너무 팽창해 폐가 손상될 수 있다. 특히 어린이 환자는 성장 단계이기에 폐 손상을 줄일 수 있도록 적절한 인공호흡기 치료가 중요하다. 이를 위해 경험이 많이 쌓인 숙련된 의료진이 필요하다.

이전에는 산소 포화도가 너무 낮거나 이산화탄소가 너무 많아 2차 뇌 손상 등 장기 손상이 발생할 수 있기에 이를 피하려고 폐 손상을 무릅쓰고 인공호흡기 압력을 높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사망률이 높아지거나 생존해도 폐 섬유화 등 합병증이 생길 위험이 높아졌다.

이에 따라 최근 인공호흡기 압력에 의한 폐 손상이 예상되거나 사망 위험이 높은 중증 급성호흡곤란증후군이라면 ‘체외막 산소 공급 장치(extracorporeal membrane oxygenation·ECMO)’를 사용한다. 그러나 몸 밖으로 혈액을 빼내 산소를 공급한 뒤 다시 몸속으로 넣는 ECMO도 뇌출혈·혈전 등이 생길 수 있어 역시 경험이 많이 쌓인 의료진이 사용해야 한다.

삼성서울병원은 최근 10년간 130례 이상의 어린이 환자에게 ECMO를 적용한 경험을 쌓아 치료법을 고도화하고 있다. 이 중 급성호흡곤란증후군이 악화해 ECMO를 적용한 15례 중 14례(93%)가 회복해 퇴원했다.”


-어린이라서 치료하기에 더 어려움 점은 없나.

“체구가 작고 성장기에 있는 어린이 환자는 어른보다 시술과 검사가 더 힘들어진다. 수액 주사를 하기 위해 바늘 하나 넣는 것도 차이가 난다. 그러나 국내 중증 어린이 환자 진료에 또 다른 어려움이 있다.

국내 어린이 중환자 사망률이 미국·일본보다 2배 높다는 보고가 있다. 이는 소아중환자실이 적은 데다 전담 인력도 부족해서다. 전국 45개 상급종합병원 가운데 소아중환자실을 갖춘 곳은 11곳에 불과하다. 반면 한 해 8,000명 가까이 어린이가 소아중환자실에서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게 조사 결과다.

국내 어린이 환자 진료 인력이 크게 부족해 이로 인한 피해는 어린이 환자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어린이 심폐소생술(CPR) 사망률이 매년 6.6%씩 늘어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급성호흡곤란증후군은 환자 상태가 시시각각 변하므로 소아중환자실에서 24시간 집중 치료가 필요하다. 치료를 위해 의료 인력·치료 장비·경험 축적 등 다양한 사항이 잘 갖춰져야 한다. 나이가 어리다고 치료받지 못하거나, 어른들 틈에서 나이를 고려하지 않은 치료를 받는 것은 슬프고 반성해야 할 일이다. 소아중환자실을 지켜주는 동료들에게 감사함과 책임감이 더 크게 느껴진다.

아이를 더 낳게 만드는 것보다 태어난 아이를 건강히 자라도록 하는 건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지금 당장 정부 차원에서 시스템을 보완하지 않으면 만시지탄이 될 것이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