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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지 말자, 부동산 대책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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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썰렁하다. 정부가 주택 공급을 확대하겠다며 1·10 부동산 대책을 야심 차게 발표했는데도 시장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준공 30년 이상 아파트는 안전진단 없이도 재건축 사업을 할 수 있고, 신축 빌라나 오피스텔·지방 미분양을 사면 세금 혜택을 많이 주겠다고 하는데도 매수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고 있다. 집값은 오히려 더 떨어졌다. 왜일까.
첫째, 내용 자체가 시원찮다. 주택 공급을 늘려야 하는 건 맞는 방향이다. 지난해 인허가 및 착공 물량이 반토막 난 만큼 2, 3년 후 공급 절벽에 따른 집값 폭등을 막기 위해선 선제적 조치가 필요하다. 그런데 진단과 처방이 엉뚱하다. 지금 주택 공급이 막힌 건 공사비 급증과 이에 따른 분담금 갈등 때문이다. 안전진단은 재건축 사업의 첫 관문이긴 하나 핵심이 아니다. 이미 안전진단을 통과해 진행되던 현장도 공사비 갈등에 멈춰 서는 곳이 늘고 있다. 물가와 건축비가 올라 사업성이 떨어진 게 가장 큰 문제인데 안전진단을 폐지한 건 다리가 부러져 일어서지도 못하는데 마음껏 뛰라고 속도 제한을 푸는 격이다. 당초 수혜가 점쳐졌던 서울 노도강(노원 도봉 강북구)의 구축 아파트 시세가 그대로인 것도 이런 이유다.
둘째, 수요자가 원하는 게 아니었다. 1·10 대책은 내년 말까지 전용 60㎡ 이하 신축 다가구나 다세대·연립, 도시형 생활주택, 주거용 오피스텔을 구매할 경우 취득·양도·종부세 산정 시 주택 수에서 빼주는 게 골자다. 빌라 등 비아파트 수요를 진작시켜 공급을 늘리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빌라는 개별 특성이 너무 커 적정 가격 산정이 쉽지 않고 환금성도 떨어진다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다. 깡통전세와 전세사기 피해도 이어지고 있다. 이런 문제들이 먼저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세금 혜택을 줄 테니 빌라·오피스텔을 사라고 부추기는 건 자칫 피해만 더 키울 수도 있다. 지난해 50년 만기 대출과 특례보금자리로 2030 젊은 층을 끌어들여 아파트값을 떠받친 정부가 이번엔 비아파트와 미분양을 팔지 못해 자금난에 처한 시행사 구하기에 나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솔직히 국토교통부가 자신의 가족에게도 빌라 매수를 권할까 싶다. 지금은 아파트도 안 팔리는데 대체재 성격이 큰 빌라를 살 이가 얼마나 있을지도 의문이다. 수요자들은 비아파트보다는 ‘감당할 수 있는 가격대의 새 아파트’를 더 원한다. 이를 신속하고 충분하게 공급할 방법을 찾는 게 정석이다.
셋째, 그동안 정부 발표만 믿었다가 발등이 찍힌 경험이 많기 때문이다. 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인데 정부가 덜컥 발표부터 했다가 혼란만 야기한 분양가상한제 주택의 실거주 의무 폐지가 대표적이다. 발표된 건 지난해 초지만 주택법 개정이 미뤄지며 여전히 시행되지 않고 있다. 둔촌주공 조합원 등은 낭패에 빠졌다. 이번에 나온 안전진단 폐지도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불확실성이 크다. 앞서 1주택자가 인구 소멸 지역에서 한 채를 더 샀을 경우(세컨드홈) 세금 혜택을 주는 것도 아직 구체적 내용은 확정된 게 없다. 법 개정이 필요한 대책과 그렇지 않은 사안을 구분해, 오해가 없도록 해야 한다.
정부가 굵직한 부동산 정책을 내놨는데도 이제 사람들은 이를 믿지 않고 판단을 미룬다. 그만큼 경기가 안 좋다는 방증이기도 하지만 그동안의 학습 효과가 더 커 보인다. 피노키오와 양치기 소년이 돼 버린 정부의 발표를 신뢰하지 않는 셈이다.
그래도 예전엔 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면 시장이 들썩이며 정책 효과가 있었다. 정부에 맞서는 건 현명하지 못하다는 공감대도 형성됐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것 같지 않다. 정책 신뢰의 추락은 정부가 자초한 일이다. 확정되지도 않은 정부 부동산 발표에는 더 이상 속지 말아야겠다. 총선 앞 선심성 정책이 남발되고 있어 더욱 그렇다. 호구는 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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