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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風에 굴하지 않은 대만 유권자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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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3월 대만 첫 직선제 총통 선거 투표일 2주 전 중국이 대만해협에 미사일을 발사했다. 남부 가오슝, 북부 지룽 등 대만의 대표 항구에서 약 50㎞밖에 떨어지지 않은 바다에 미사일이 떨어졌다. 한국의 부산·인천항 항로가 위협을 받은 셈이다. 1년 전부터 이어진 압박의 절정판이었다.
차기 총통 재집권이 유력했던 리덩후이가 중국에는 눈엣가시였다. 대만과 중국은 각기 독립국가라는 ‘양국론’을 주창했기 때문이다. 미국 역시 리덩후이의 미국 모교 방문 비자를 발급해 주면서 중국을 자극했다. 이에 반발한 중국이 1995년부터 군사 압박을 계속한 결과 미사일 시위까지 온 것이다.
미국은 중국의 도발에 맞서 인디펜던스·니미츠 항공모함 2척을 대만해협에 파견했다. ‘3차 대만해협 위기’가 고조됐다. 냉전 해체 후 미중 양국이 처음으로 충돌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위기였다. 그러나 대만 총통 선거는 리덩후이의 54% 득표, 승리로 마무리됐다. 중국도 꼬리를 내렸다.
그 뒤로도 30년 가까이 중국의 대만 위협은 이어졌다. 2024년 대만 총통 선거를 앞두고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은 함정과 군용기를 수시로 보내 대만해협을 위협했다. 대만 침공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압권은 2022년 낸시 펠로시 당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때부터 이어진 대만 포위 미사일 발사 시험 압박이었다. ‘친미·반중’ 성향인 라이칭더 민주진보당 후보가 당선되지 않도록 군사 위협을 가하는 중국판 북풍, ‘중풍(中風)’을 끊임없이 구사한 셈이다.
중국이 경제 성장에 힘입어 주요 2개국(G2) 중 하나로 부상하고 군사력을 증강한 21세기, 대만 위협은 확대일로였다. 하지만 중국의 개입 시도는 지난 선거들에 이어 또 실패했다.
만성적인 안보 위기 속에서 대만 유권자의 선택은 단호하고 현명했다. ‘친중’ 이미지가 강한 국민당 대신 민진당 후보에게 40%의 표를 몰아줬다. 12년 이상의 민진당 장기 집권을 가능하게 했다. “대만을 가만히 놔둬라.” 중국에 보내는 1,900만 대만 유권자의 확실한 민주주의 메시지였다.
동시에 정권의 부패 스캔들, 고물가와 저임금 같은 경제 정책 실패 등은 냉정하게 평가했다. 그 결과 여당 민진당은 한국의 국회의원 격인 입법위원 선거에선 총 113석 중 51석을 얻어 2위에 그쳤다. 4년 전 선거 때(61석)보다 의석이 줄었고 과반 확보에도 실패했다.
안보 불안을 가라앉히는 대신 부풀려 위기 강도를 키우고 ‘적대적 공생 관계’로 권력을 추구하는 행위는 국가와 국민에 도움이 안 된다. 이런 세계사적 흐름을 읽지 못하고 대만 국민의 마음을 사는 대신 전투기와 미사일로 압박하는 중국식 ‘전랑 외교’는 한계에 달했다.
4월 총선을 앞두고 한반도 역시 부쩍 ‘전쟁’ 이야기가 늘었다. “대한민국은 불변의 주적”이라며 ‘전쟁 불사론’을 외치는 북한 지도자는 남쪽을 흔들고 체제 내부를 다잡기 위해 위기를 고조시키는 측면이 있다. 11월 미국 대선 이후를 기다리며 도널드 트럼프와의 담판을 염두에 둔 장기 포석이기도 하다. 이런 해묵은 공세에는 한국 유권자의 현명한 판단과 응징 투표로 대응하면 된다. “북한은 반민족적이고 반역사적인 집단”, “북한이 도발해 온다면 우리는 몇 배로 응징할 것” 등등 하나 마나 한 내부용 강경 발언을 괜히 되풀이하며 위기를 키울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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