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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어쩌다 ‘엄마의 아바타’가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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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한 권을 읽고 단 한 문장이라도 가슴에 닿으면 '성공'이라고 합니다. 흔하지 않지만 드물지도 않은 그 기분 좋은 성공을 나누려 씁니다. '생각을 여는 글귀'에서는 문학 기자의 마음을 울린 글귀를 격주로 소개합니다.
“할머니, 옛날 책에 보면요 / 엄마가 애한테 / 공부하라고 잔소리할 때요 / 옆에 있던 할머니가 꼭 / 이렇게 말하잖아요 / 아서라, 애들은 그저 열심히 / 뛰어놀면 되는 거다 / 공부, 공부 하지 쫌 마라 / 요때가 아주 통쾌한 거거든요 / 그런데 할머니는 왜 만날 / 공부, 공부 그래요? / 할머니 혹시, / 우리 엄마 아바타예요?”
손주를 향한 조부모의 내리사랑은 때론 자식을 향한 사랑보다 극진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자신을 키울 땐 엄하셨던 부모님이 손주에게는 무한한 사랑을 베풀더라는 사연도 드물지 않게 접할 수 있죠. 이렇듯 ‘손주 바보’로 그려지던 할머니가 달라졌습니다. 이창숙 시인의 동시집 ‘쥐구멍’에 실린 ‘엄마의 아바타’라는 시에서 할머니는 “공부하라”는 엄마의 잔소리를 말리긴커녕 오히려 한술 더 뜨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대체 우리의 할머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보건복지부 산하 육아정책연구소의 2021년 전국 보육실태조사에서 부모 외 아이 양육 지원자 중 조부모의 비중은 48.8%에 달합니다. 특히 아이가 어릴수록 이 비율은 더 높았습니다. 24시간 딱 붙어서 돌보아야 할 영아의 경우 맞벌이하는 부부만으로 감당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식 부부의 믿을 구석인 데다가 양육을 경험해 본 조부모가 구원투수로 나서는 건 자연스러운 귀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할마(할머니+엄마)나 할빠(할아버지+아빠)라는 신조어가 생겼을 정도로 육아에 그치지 않고 손주의 교육에도 적극 참여하는 조부모도 생겨났습니다. 더 이상 가끔 만나 사랑만 베풀던 관대한 조부모가 아니라 훈육을 도맡고 규칙을 가르치는 부모의 대리인이 된 거죠. ‘엄마의 아바타’에서 할머니의 공부 타령에 억울한 손주보다, 황혼 육아로 졸지에 주 양육자가 되어버린 조부모의 애환이 더 와닿는 건 어쩌면 동시를 읽는 우리가 이미 양육자의 시선에 더 가까워져서는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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