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국민 10명 중 8명이 병원에서 사망하는 현실. 그러나 연명의료기술의 발달은 죽음 앞 인간의 존엄성을 무너뜨린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죽어야 할 것인가.
가정간호 서비스 자문 교수로서 10여 년간 일하면서, 환자의 집을 직접 방문하는 간호사가 전해주는 다양한 환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병원에서 질병을 중심으로 진료해오던 나에게 가족을 포함해 환자의 삶 전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가정간호팀이 돌보는 환자의 대다수는 진행기 암 환자였지만, 간호사로서 지켜보기에 가장 힘들어했던 질환은 루게릭병이었다. 미국 뉴욕 양키스 야구 선수 '헨리 루이스 게릭'의 이름에서 유래된 루게릭병은 운동신경세포가 점진적으로 파괴돼 사지 근육이 위축되고, 결국 호흡근육이 마비돼 사망에 이르는 치명적인 병이다.
사지 근육을 사용할 수 없어 보행이 어려워지고, 음식을 스스로 혼자 삼킬 수 없게 되면 병상에 누워, 영양 공급관을 통해 위장관으로 음식을 직접 주입해야 한다. 호흡근이 약해지면서 가래를 제대로 뱉을 수 없어 폐렴이 발생하거나, 숨쉬기가 힘들어져 인공호흡기를 달게 된다.
투병 기간이 길어지면 인공호흡기와 함께 집으로 퇴원하게 되는데, 그때부터 하루하루가 전쟁이다. 자세 바꾸기, 가래 빼기, 음식 먹이기, 씻기기 등 할 일이 너무나 많고, 무엇보다 24시간 환자의 상태에 신경을 써야 해서, 간병하는 가족들은 직장을 그만둬야 한다. "잠도 잘 못 자고 화장실도 맘 놓고 못 간다. 기계가 고장 날까 봐 항상 불안하고, 환자 혼자 두고 외출할 수 없어서 집에만 있으니 갑갑하다"고 간병하는 가족들은 가정간호팀이 방문할 때마다 힘든 그들의 심정을 하소연한다.
경제적 여유가 있으면 간병인을 고용하는데, 간병인도 힘들어하기는 마찬가지다. "환자가 말을 하지 못하고 눈으로만 표현하니까 눈을 뗄 수가 없다. 할 일이 끊이지 않고 하루 종일 서 있어야 하니 내 다리가 코끼리 다리같이 붓는다. 완전히 갇혀 지내고 있다"고 호소하며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가장 심한 고통을 겪는 사람은 루게릭병 환자 당사자일 것이다. 전신 상태가 악화하면 의식도 함께 저하되는 다른 질병의 환자와 달리, 전신의 근육 기능이 마비돼 죽음에 이를 때까지 명료한 의식으로 육체의 모든 고통을 겪어야 하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도 매 순간 싸워야 하는 것이 루게릭병 환자의 운명이다. 이런 상황은 방송이나 책을 통해 종종 소개되곤 해왔다.
또 다른 문제는 의사소통이다.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는 손가락으로 글씨 쓰거나 종소리를 통해 의사전달이 가능하나, 근력이 점점 저하되면 이전에 서로 합의해 둔 대로 눈 깜빡임을 이용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환자가 보호자를 부를 방법이 없어진다.
오랜 가정방문으로 서로 마음을 통하게 된 간호사가 루게릭병 환자 본인의 생각을 물어봤다. "인공호흡기를 하고 있는 것 후회 안 해요? 그렇다면 눈을 깜빡해 보세요" 환자는 눈을 깜빡여 보였다. 다른 질문도 던졌다. "혹시 인공호흡기를 단 것 후회해요? 그렇다면 눈을 깜빡해보세요" 환자는 눈을 깜빡이지 않고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했다. 대부분의 환자는 '인공호흡기를 걸고라도 사는 게 다행이다. 하지만 전기가 끊기거나 기계가 고장 날까 봐 항상 걱정된다. 그런 불안 때문에 어떤 때는 잠을 못 이룬다'고 의사를 표현했다.
젊고 건강해 죽음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일수록 '늙고 병들어 힘들면 빨리 죽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말을 쉽게 한다. 그러나 진료 현장에서 만나는 죽음과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삶'은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하고 '죽음'은 그렇게 가볍게 결정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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