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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팩 재활용률 절반 넘게 ‘뚝’... 범인은 ‘멸균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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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루에 약 1㎏에 달하는 쓰레기를 버립니다. 분리배출을 잘해야 한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지만, 쓰레기통에 넣는다고 쓰레기가 영원히 사라지는 건 아니죠.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고 버리는 폐기물은 어떤 경로로 처리되고, 또 어떻게 재활용될까요. 쓰레기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끼니 거르기 쉬운 아침. 저는 때로 밥 대신 간단히 시리얼에 우유를 부어 먹거나 두유 한 팩을 마시는데요. 다 먹고 남은 우유팩, 두유팩을 버리려고 하면 문득 고민이 듭니다. 지금껏 1L(리터) 우유갑은 물에 헹군 뒤 종이류로 분리배출하고, 손바닥만 한 두유팩은 그때그때 기분이 내키는 대로 분리수거함이나 쓰레기통에 넣고는 했어요.
그런데 알고 계셨나요. 우유팩, 두유팩, 주스팩과 같은 '종이팩'은 A4용지, 신문, 잡지 같은 '종이류'와 별도 배출하는 게 친환경적이고, 환경부 지침도 그리 돼있다는 것을요.
종이팩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뉩니다. 하나는 삼각지붕 달린 집 모양의 '일반팩', 다른 하나는 직육면체 빌딩 모양의 '멸균팩'입니다. '살균팩'으로도 불리는 일반팩은 폴리에틸렌(PE)필름-종이-PE, 이렇게 3겹입니다. PE는 식품용으로 사용 가능한 플라스틱으로 수분에 강해요. 액체가 새거나 빛과 산소에 변질되지 않도록 만질만질한 PE필름을 종이 안팎에 덧댄 것이죠. 보통 우유갑으로 쓰입니다.
멸균팩은 PE-종이-PE(접착)-알루미늄(빛·산소 차단)-PE(접착)-PE, 무려 6겹에 달해요. 속을 뜯어보면 은박이 보이는 게 특징이죠. 주스나 두유, 소주, 요즘엔 우유도 담습니다. 단어 그대로 '멸균 처리'한 음료를 담은 것이라 상온에서도 6개월~1년 장기 보관이 가능하죠. 유통기한이 보통 1~2주인 일반팩보다 보존력이 뛰어납니다.
우리에겐 익숙하지만, 재활용업계에 종이팩은 처치곤란 '아픈 손가락'입니다. 환경통계연감을 보면 2021년 기준 종이류 재활용률은 44.6%, 폐합성수지(플라스틱)류는 57.0%인 반면 종이팩은 13.7%(2022년)에 그칩니다. 10년 전인 2013년만 해도 35%는 됐는데 말이죠.
종이팩 재활용률은 왜 떨어졌을까요. 많은 이들이 멸균팩을 '범인'으로 지목합니다. 기존 종이팩 재활용 체계는 터줏대감인 일반팩을 기준으로 짜여 있었는데, 최근 몇 년 새 신흥세력인 멸균팩 비중이 급증했어요. 2014년 전체 종이팩의 4분의 1(25%·1만6,744톤)이었지만, 2022년에는 절반 수준(45%·3만2,128톤)까지 치고 올라왔습니다.
종이류 재활용은 물에 넣어 코팅과 인쇄염료 등을 벗기고, 죽처럼 만드는 '해리'(풀려서 떨어짐) 과정을 거칩니다. 종이를 펄프화해 새로운 종이로 재탄생시키는 것이죠. 일반팩은 학교·군대 우유 급식처럼 대량 수거 경로도 있었던 덕에 두루마리 휴지, 키친타월 등으로 어렵잖게 재활용했습니다. 반면 멸균팩은 알루미늄박 때문에 일반팩과는 다른 해리 공정이 필요하고, 위생용품 재활용이 어려운 데다, 수거 경로도 변변찮은 상황인 것이죠.
'고품질 펄프'를 가진 종이팩이 일회용품처럼 쓰이는 것을 막으려면 몇 가지 과제가 있습니다. △종이류와 종이팩을 따로 배출할 방법을 마련하고 △수거량이 일정치 않고 값어치가 낮아 수거·선별업체가 취급할 유인이 적다는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2022년 출고된 종이팩 7만5,000톤 중 60%가량은 폐지와 섞이고 27%는 종량제 봉투에 버려졌다고 합니다. 분리배출이 잘 안 되는 것은 시민 인식 문제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지자체 등이 설치한 전용 수거함이 거의 없어서예요. 2021년 서울환경연합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001명 중 절반(50.5%)은 종이팩과 종이를 분리배출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고, 집 근처에 종이팩 전용 수거함이 없다는 응답도 62.5%에 달했죠.
한살림·아이쿱·두레 같은 생협이나 일부 주민센터, 제로웨이스트 상점 등에서 종이팩을 수거하지만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은 시민 참여로 한정되는 상황이죠. 이차경 소비자기후행동 사무처장은 "수거량이 일정하지 않으면 기업이 재활용 소재를 사용하려고 해도 효율성이 떨어진다"며 "수거율을 높이기 위한 분리배출함 설치가 급선무"라고 강조했습니다.
'수거 이후' 단계도 중요합니다. 종이팩을 잘 모으더라도 쓸모를 찾지 못하면 결국 쓰레기가 되는 것이니까요. 한국포장재재활용사업공제조합 관계자는 "일부 아파트 단지에서 종이팩을 분리배출했어도, 배출량이 적거나 내용물 부패로 냄새가 나는 등 유가성(값어치 정도)이 떨어지면 수거업체가 폐지에 넣기도 한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수지타산'을 맞추는 일도 중요하다는 것이죠.
이를 위해 종이팩을 보다 상품성 있게 재활용하는 방법을 탐구해봐야 합니다. 숲과나눔재단의 허그림 캠페이너는 "종이팩이 폐지 재활용 절차에 들어가면, 일반팩은 펄프가 질겨 해리 단계에서 탈락돼 소각되고 멸균팩은 골판지로 다운사이클링(품질이 저하되는 재활용)된다"고 지적합니다.
이에 공제조합과 한솔제지, 매일유업·서울우유·빙그레 등 멸균팩 생산 기업 12곳은 지난해 9월 업무협약을 맺고 멸균팩을 '백판지'로 재활용하는 방안을 실험 중입니다. 식품 기업에서 나온 멸균팩을 공제조합 주도로 수거하고, 한솔제지가 박스 포장 원재료인 백판지를 만들면, 12개 기업이 음료세트, 선물세트 등 포장재로 쓰는 것이죠.
결국 종이팩의 생산·소비·분리배출·수거·재활용 등 모든 단계에서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한 방법 모색이 중요한 시점입니다. 소비자가 분리배출만 잘한다고 해서 재활용 상품이 나올 수 있는 게 아니고, 반대로 기업들이 재활용 기술·제품을 개발해내도 종이팩을 충분히, 지속적으로 수거할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다행인 건 여러 환경시민단체는 물론이고 관련업계와 공제조합, 환경부도 '종이팩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명확하다는 거예요. 환경부 관계자는 "종이팩 별도 수거 방식을 포함해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검토 중이며 상반기 내 발표할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관심 있게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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