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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민진당 재집권... "삼성전자, TSMC와 격차 따라잡기 더 힘들 것"

입력
2024.01.15 11:00
수정
2024.01.15 11:06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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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반도체 수출 비중 8년 만에 24.8%→38.4% 급증
양안 관계는 중국 태도에 달려...시나리오별로 대비해야

미국과 중국의 대리전으로 평가되는 13일 대만 총통 선거에서 친미 독립 성향 집권 민진당의 라이칭더(앞줄 가운데) 후보가 승리했다. 라이칭더 대만 총통 당선인이 이날 타이베이 민진당사 밖에서 열린 선거 승리 집회에 러닝메이트 샤오메이친(오른쪽)이 참석해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타이베이=AP 뉴시스

미국과 중국의 대리전으로 평가되는 13일 대만 총통 선거에서 친미 독립 성향 집권 민진당의 라이칭더(앞줄 가운데) 후보가 승리했다. 라이칭더 대만 총통 당선인이 이날 타이베이 민진당사 밖에서 열린 선거 승리 집회에 러닝메이트 샤오메이친(오른쪽)이 참석해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타이베이=AP 뉴시스


대만 총통 선거에서 집권 민주진보당(민진당)의 라이칭더 후보가 당선되면서 대만의 경제 정책은 기존 차이잉원 정부의 노선을 이어가게 됐다. 국내 경제 전문가들은 우리 정부와 기업이 양안(중국과 대만) 관계 변화를 주시하며 시나리오별 대응 전략을 짜야 한다고 조언했다.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경제안보팀장은 14일 "대만 선거로 국내 경제 상황이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다"고 진단했다. 그는 "중국이 지난해 말 '양안경제협력기본협정(ECFA)' 일부 품목의 관세 감면을 중단했고 앞으로 대만에 대한 경제 압박을 강화하려고 그 품목을 늘릴 수 있다"면서도 "당장 국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설명했다.

민진당 집권 8년...대만 반도체 산업 급성장

대만 신주에 있는 반도체 생산업체 TSMC 전경. 신주=AP 연합뉴스

대만 신주에 있는 반도체 생산업체 TSMC 전경. 신주=AP 연합뉴스

경제계가 주목하는 건 민진당 집권 8년 동안의 산업 구조 변화다. 대만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민진당 집권 전인 2015년 24.8%에서 2023년 38.4%로 늘었고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세계 1위 기업 TSMC의 민진당 집권 시기(2016~2023년) 연평균 시가총액 성장률(22.04%)은 중국국민당 집권 시기(17.36%)보다 훨씬 높았다.

첨단 산업 패권을 차지하려는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대만 정부도 지원을 늘리고 있다. 지난해 11월 대만 행정원은 반도체 산업에 10년 동안 3,000억 대만달러(약 12조7,000억 원)를 투입하는 내용의 '반도체 칩 주도의 대만 산업 혁신 방안'을 통과시켰다. 대만 반도체 집적회로(IC) 설계의 세계 시장 점유율을 20%대에서 40%대로 끌어올리고 첨단 제조 공정 점유율도 80%까지 높이는 게 목표다. 라이 당선자는 여기에 더해 선거 기간 반도체·인공지능(AI)·군수·보안·통신 등을 '5대 신뢰 산업'으로 정하고 집중적으로 키우겠다고 공약했다.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인 박재근 한양대 교수는 "대만 정부가 반도체 기업에 재정을 투입하겠다는 방향을 밝힌 건 처음"이라며 "(2위)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분야에서 TSMC와 격차를 얼마나 어떻게 따라잡느냐가 과제였는데 민진당 재집권으로 더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이현익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역시 "대만의 첨단 반도체 산업은 정부로부터 전폭적 지원을 받으며 초격차를 유지할 것"이라며 "(대만이 첨단 반도체 생산에서) 압도적 우위를 이어갈 것으로 보여 한국 반도체 산업에 커다란 위협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라이 당선자가 최첨단 칩 공정을 대만에 남긴다는 기존 원칙을 고수하지만 TSMC가 해외에 투자하려는 것도 긍정적이라 해외 시장에서 TSMC와 우리 반도체 업계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이번 선거로 미국이 자신감을 얻고 첨단 반도체 제조 국가들에 요구하는 동맹의 수위를 더 높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안 관계 시나리오별 대응책 마련해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제공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제공


더 문제는 양안 관계가 나빠졌을 때다. 대만 총통 선거 전인 9일 경제연구기관인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 중국의 대만 침공 시 대만 국내 총생산(GDP)의 40%, 우리나라 GDP의 23.3%가 감소할 거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박한진 한국외대 초빙 교수는 "첨단 산업에 대한 중국의 대만 의존도가 높아 중국의 대만 공격 가능성이 크지 않지만 중국이 대만 해협을 봉쇄 또는 준봉쇄 조치로 위협할 경우 치명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대만은 전 세계 반도체 칩의 63%, 첨단 칩의 73%를 공급하는데 양안 리스크가 불거지면 국제 반도체 가격과 공급망에도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기업이 양안 관계 갈등 정도를 미리 가늠해 시나리오별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해영 무역협회 수석연구원은 "라이칭더의 당선으로 동북아 지역에서 지정학적 리스크는 당분간 좋아지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양안 관계가 현 상태 유지 가능성이 더 높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공급망 사전 점검 및 시나리오별 대응 전략 등을 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연원호 팀장 역시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등에 따르면 미국 기업들은 지난해 연말부터 양안 갈등 상황을 제품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며 "우리 기업도 다양한 상황을 염두에 둔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첨단 반도체 분야의 초격차 기술이 대만 안보의 '안전판'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산업계가 "결정적 순간에 동맹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수준의 기술을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현익 부연구위원은 "친미 성향의 민진당이 재집권에 성공하면서 대만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심해질 것으로 보이나 미국과 반도체 기술 협력 강화로 실리콘 실드 지수(반도체가 국가 핵심 이익과 생존을 담보하는지를 평가한 척도)는 강건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한국의 디리스킹(위험제거) 전략으로 반도체 기술 고도화가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이윤주 기자
나주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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