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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약한 쇼팽 유혹한 팜파탈'로만 알려진 조르주 상드의 진면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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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프랑스는 식민지에서 급격하게 유입된 부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는 나라였어요. 가치관이 무너지고 사회적 혼돈이 일어난 거죠. 상드의 자서전을 읽다 보면 선진국으로 올라섰다지만 혼란스러운 지금의 우리나라가 떠올라요. 그래서 번역을 결심했지요."
조르주 상드(1804~1876)의 자서전 '내 생애 이야기'(전 7권)를 번역해 낸 불문학자 박혜숙(65)씨는 이렇게 말했다. 흔히 상드는 다작의 소설가, 혹은 피아니스트 쇼팽(1810~1849)과 오래 동거한 연상의 애인 정도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상드는 대혁명, 나폴레옹 시대 등 정치적 격변이 거듭됐던 19세기 프랑스 지성계와 예술계의 핵심 인물이었다. 동시에 그 시절에 남편과 이혼하고, 숱한 남자와 사귀고, 여자가 홀로 살롱에 갈 수 없다는 관습에 맞서 드레스 값도 아낄 겸 아예 남장을 하고 살롱에 드나든 파격적 인물이기도 했다. '내 생애 이야기'는 상드의 속내를 스스로 낱낱이 밝힌 기록이다.
하지만 이 자서전 소개는 쉽지 않다. 양이 방대해서다. 박씨는 "7권씩이나 되니 이웃 일본에는 완역본이 없고, 정작 본국인 프랑스에서도 발췌본 정도만 간간이 나온다"고 전했다. 1980년대부터 상드를 흠모하고, 상드로 석·박사를 받은 박씨는 연세대학교에서 강의하던 2019년 번역을 시작했다.
원칙은 단 하나. 적게도, 많이도 아닌 하루 3, 4쪽씩만 번역하기였다. 워낙 대작이라 페이스를 일정하게 유지하지 못하면 스스로 무너질 것 같아서였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들인 끝에 지난 연말 완역본을 세상에 내놨다.
상드는 흔히 병약했던 쇼팽을 유혹한 '팜파탈'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책에선 전혀 반대의 모습이 나타난다. 한 가족이 되는 게 망설여진다 한 사람은 상드였다. 폴란드 이민자였던 쇼팽은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지극히 예민한 인물이었다. 그런 쇼팽을 음악적 천재성 때문에 어머니의 마음으로 돌봐 준 사람이 상드였다. 결국 파국으로 끝났지만.
그럼에도 상드의 결론은 결국 '사랑'이었다. "상드는 '레미제라블'로 유명한 빅토르 위고와 특히 친분이 깊었어요. 여러 정치적 사회적 갈등에 대해 위고처럼 기독교적인 형제애, 인류애적 연대를 역설했습니다. 지금 시대에 돌아볼 얘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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