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영국, ‘홍해 위협’ 친이란 후티 폭격… 끝내 중동 말려드는 미국

입력
2024.01.12 13:54
수정
2024.01.12 18:3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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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일 발사대 등 예멘 내 10여 곳 공습
바이든 “외교 안 통해 군사 개입 불가피”
확전 걱정에 석 달 망설여… 이란이 관건

영국 공군(RAF) 타이푼 전투기가 12일 친이란 예멘 반군 후티의 근거지를 공격하기 위해 키프로스 아크로티리 공군기지에서 이륙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은 지난해 11월 이후 후티의 홍해 상선 공격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이날 예멘 내 반군 거점에 폭격을 가했다. 아크로티리(키프로스)=로이터 연합뉴스

영국 공군(RAF) 타이푼 전투기가 12일 친이란 예멘 반군 후티의 근거지를 공격하기 위해 키프로스 아크로티리 공군기지에서 이륙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은 지난해 11월 이후 후티의 홍해 상선 공격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이날 예멘 내 반군 거점에 폭격을 가했다. 아크로티리(키프로스)=로이터 연합뉴스

미국과 영국이 홍해에서 선박들을 위협해 온 ‘친(親)이란’ 예멘 반군 후티의 근거지에 폭격을 가했다. 후티는 물론 이란도 "명백한 예멘 주권 침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가자 전쟁에 이어 레바논 시리아 예멘 등 중동 전역으로 전선이 확대되는 양상이다.

미국 당국자 “후티 공격력 약화 예상”

미국 뉴욕타임스(NYT), 영국 BBC방송 등은 12일(현지시간) 양국 관료들의 발언과 발표를 인용, 역내 미군 기지 및 항공모함 아이젠하워호에서 출격한 전투기와 해군 잠수함에서 발사된 순항미사일 토마호크 등이 예멘 내 후티 장악 지역 10여 곳을 때렸으며 영국도 가세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F-18/A 호넷 전투기, 영국 유로파이터 타이푼 전투기 등이 동원됐고, 정밀 유도탄도 100발 이상 사용됐다고 BBC는 설명했다. 외신에는 12일 새벽 예멘 후티 장악 지역에서 폭탄이 터져 화염이 번지는 영상도 올라왔다.

표적은 예멘 수도 사나를 비롯해 16개 지역 60곳 이상이었다. 레이더, 미사일·무인기(드론) 발사대, 방공 미사일, 무기 저장소 등이 공습 대상에 포함됐다. 미국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이날 전화 브리핑에서 “부수 피해(민간인 희생)를 막기 위해 노력했다”며 “이번 조치로 후티의 공격 역량이 약화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후티 군사 조직 대변인 야히야 사리는 연설을 통해 총 73차례의 공습을 받아 대원 5명이 사망하고 6명이 다쳤다고 발표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밤늦게 성명을 내고 “오늘 나의 지시로 미군이 영국과 더불어 호주 바레인 캐나다 네덜란드의 지원을 받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수로 중 하나에서 후티 반군이 항행 자유를 위협할 목적으로 쓰는 예멘 내 여러 표적을 성공적으로 타격했다”고 밝혔다. 이어 곧바로 한국 미국 독일 영국 등 10개 나라가 공동 성명을 통해 “항행 자유와 국제 무역, 불법적이고 부당한 공격으로부터의 선원 생명 보호를 위한 공동 의지를 보여 줬다”고 발표했다.

후티는 분노했다. 후티 대변인은 엑스(X·옛 트위터)에 미국과 영국의 공격은 정당화될 수 없다며 "홍해에서 이스라엘과 연계된 선박을 계속 표적으로 삼을 것"이라고 올렸다. 나세르 카나니 이란 외무부 대변인도 12일 성명에서 "오늘 아침 미국과 영국이 예멘 여러 도시에서 저지른 군사 공격을 강력하게 규탄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공습은 후티의 홍해 상선 공격에 대한 응징 차원이다. 후티는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 기습에 대한 보복 성격인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에 맞서 하마스를 돕겠다고 발표한 뒤 작년 11월 19일 이후 홍해를 지나는 50여 개국 상선을 27차례 공격해 피해를 입혔다. 홍해가 위험해지자 상선들은 아프리카 우회로를 이용했고 이에 세계 각국이 감당해야 할 물류 비용이 커졌다.


‘저항의 축’ 직접 공격, 이란 참전 명분

지난해 7월 11일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열린 북대서양이사회(NAC) 회의 참석 중 대화하는 조 바이든(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리시 수낵 영국 총리. 미국과 영국은 12일 친이란 예멘 반군 후티의 거점에 공습을 가했다. 빌뉴스=AP 연합뉴스

지난해 7월 11일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열린 북대서양이사회(NAC) 회의 참석 중 대화하는 조 바이든(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리시 수낵 영국 총리. 미국과 영국은 12일 친이란 예멘 반군 후티의 거점에 공습을 가했다. 빌뉴스=AP 연합뉴스

문제는 확전 가능성이다. NYT는 “지난 석 달간 친이란 무장 단체의 수많은 공격에도 바이든 행정부가 군사 대응을 주저해 온 것은 어떻게든 미국이 더 큰 전쟁으로 끌려 들어가는 일을 막기 위해서였다”며 “예멘 공격이 미군 함정과 후티 간 보복전으로 수위가 높아지고 이란을 분쟁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는 미국 관리들의 말을 전했다.

실제 조짐도 있다. 후티 고위 관계자 압둘라 벤 아메르는 폭격 뒤 카타르 알자지라방송에 “미국과 영국이 군사 활동을 확대한다면 두 나라의 역내 기지에 공습을 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후티가 하마스,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 시리아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와 함께 이란이 이끄는 ‘저항의 축’에 포함돼 있는 만큼 이번 직접 공격은 이란에 개입 명분이 되기에 충분하다.

지난달 미국 주도의 다국적 함대가 구성되자 홍해에 자국 군함을 파견해 맞대응했던 이란은 11일 주요 원유 수출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에서 미국 유조선 ‘세인트 니콜라스호’를 나포해 긴장 수위를 높였다. 최근 격렬해진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 교전도 악재다.

미국·영국은 일단 행동에 나선 이상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필요할 경우 자국민과 국제 교역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후속 조치를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리시 수낵 영국 총리도 후티의 추가 공격 저지를 위해 영국 해군이 홍해를 계속 순찰할 것이라고 각각 밝혔다.

다만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공습을 '방어 조치'라고 표현했다. 미국도 이번 공습이 중동 전면전으로 확대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

주유엔 러시아대표부는 미국 등의 예멘 공습과 관련, 12일 안보리 긴급 회의 개최를 요청했다고 텔레그램을 통해 밝혔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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