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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의 습격자, 전염병 숙주? 너구리는 억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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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 인간과 동물의 접점이 늘어나면서 이로 인한 갈등과 피해가 생기고 있습니다. 갈등의 배경 및 인간과 동물 모두의 피해를 줄일 수 있는 해결책을 논의하고자 합니다.
지난달 27일 서울 관악구 서울시 야생동물보호센터. 보호시설 내 작은 그물침대 위에서 쉬고 있는 또랑또랑한 눈빛의 너구리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몸에 털이 다 빠진 상태였다. 훤히 드러난 피부에는 각질이 덮여 있었다. 외부기생충인 개선충(옴진드기)에 감염돼 나타나는 전형적 증상이다. 한장희 서울시 야생동물보호센터 수의사가 너구리의 반응을 보기 위해 다가가 코를 수차례 건드렸지만 움직임이 없었다. 사람에게 크게 거부감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다른 여섯 마리는 한 이동장 안에서 서로의 몸을 기댄 채 웅크리고 있었다. 각각 구조돼 서로 모르는 상태로 구조센터에서 만났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이는 무리 생활을 하는 습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인데, 전염병 확산의 원인이기도 하다. 한 수의사는 "여섯 마리는 개선충에 감염됐고, 한 마리는 개에게 물린 것으로 추정되는 교상 부위가 감염돼 승저증(구더기증)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이어 "개선충에 감염된 너구리는 제때 치료받지 못하거나 상태가 심하면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된다"며 "발견하면 외면하지 말고 야생동물센터에 연락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너구리 일곱 마리가 구조된 장소는 대부분 아파트 단지 내와 지하철역 인근이다. 전염병에 걸린 상태에서 겨울철 날이 춥고 먹을 것도 부족해져 아파트 단지로 내려왔다가 사람들 눈에 띄어 구조된 것이다. 케어테이커들이 주는 동네 고양이의 밥을 먹으러 내려오는 경우도 많다. 치료에서 회복 중인 너구리들은 추위가 풀리고 털이 자라나는 대로 구조된 장소 인근에 방생될 예정이다.
이제 도심에서 너구리를 발견하는 게 드문 일은 아니게 됐다. 온라인에는 서울 도봉구 우이천, 강남구 탄천 등의 산책로뿐 아니라 경기 과천시 대공원, 인천 연수구 송도 지역 공원, 울산 태화강국가정원 등에서 너구리 목격담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수년 전부터는 너구리가 서울 우이천과 송파구 장지공원에서 산책 중인 반려견이나 사람을 무는 사고가 발생해 '골칫거리'로 전락하기도 했다. 또 공수병(광견병)의 주요 매개체로 지목돼 한때 '너구리 출몰 주의보'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최근 5년간 서울시 야생동물구조센터와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에 들어오는 너구리 수는 2022년을 제외하고는 증가 추세다. 그렇다면 너구리 수는 정말 늘어나고 있는 것일까. 국립생물자원관에 따르면 너구리의 서식밀도는 2002년 1㎢당 4.9마리에서 조금씩 감소해 최근 5년간은 3마리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우동걸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 선임연구원은 "구조 건수가 늘고 있는 것은 실제 도심으로 오는 개체가 늘었을 수도 있고, 전보다 사람들의 관심이 늘면서 구조를 요청하는 건수가 늘었을 수도 있다"고 해석했다.
너구리가 도심에 나타나는 건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김봉균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재활관리사는 "보통은 산지나 농경지, 강가와 같은 자연환경을 선호하지만 다양한 먹이자원을 이용할 수 있어 환경변화에 비교적 안정적으로 적응하는 게 너구리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국립생물자원관은 2022년 야생동물 실태조사 보고서에서 너구리에 대해 "기회주의적인 잡식성 중형동물"이라며 "도심에서는 자원 이용이 제한되고, 고립된 환경 특성으로 자연보다 더 넓은 행동권을 가질 수 있어 사람과의 접촉 가능성도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너구리가 반려견이나 사람에게 위협을 가하는 사례가 있지만 이는 매우 드문 경우다. 오히려 극한 상황에 처하면 죽은 척하는 습성이 있다. 다만 3, 4월쯤에 새끼를 낳고 9월에 독립시키므로 여름철에는 예민해질 수는 있다. 우 선임연구원은 "과거 물림사고 등의 사례를 보면 반려견이 먼저 자극하거나 케어테이커들이 고양이 밥을 먹지 못하게 하는 과정에서 마찰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너구리가 사람에게 끼칠 수 있는 피해 중 가장 위협적인 것은 공수병이다. 2002년 경기 연천군에서 농부가 야생 너구리와 접촉한 개에게 물려 공수병으로 사망한 일이 있었다. 하지만 미끼백신 살포 등으로 2005년 이후로 사람에게 발병한 사례는 없고, 2014년부터는 동물에서도 발생하지 않고 있다.
전염병과 더불어 너구리를 위협하는 것은 로드킬(찻길사고)이다. 충남야생동물센터에 들어온 너구리의 구조 원인을 보면 개선충에 의한 감염이 58%로 가장 많았지만 차량과의 충돌(12%)이 뒤를 이었다. 국립생태원에 따르면 2019~2022년 도로에서 사고를 당한 너구리는 8,790마리로 고양이, 고라니에 이어 세 번째로 많았다.
우 선임연구원은 "너구리의 서식지인 하천, 저지대 부근에 도로가 밀집돼 있어 로드킬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며 "너구리는 수로박스나 수로파이프 등 구조물을 잘 활용하므로 이 같은 구조물을 이용해 도로를 건널 수 있게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어 "너구리가 사람이나 동물을 먼저 공격하는 것은 일반적이지 않다"며 "일부 사례로 너구리를 악마화하거나 편견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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