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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구제받을 수 없습니다 : ‘ELS 사태’가 던지는 3가지 질문

입력
2024.01.10 16:00
수정
2024.02.13 18:06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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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번이 되풀이되는 투자상품 손실 배상 논란
근본 문제 해결 않고 가면 2, 3년 뒤 또 반복
'양'으로 은행 면피하는 '영혼 없는 서명' 제도
투자자 책임 원칙 허물면 다시 세우기 힘들어
2019년처럼 오락가락 투박한 규제는 부작용만

작년 12월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열린 홍콩H지수 ELS 피해자 집회에서 참가자가 '불완전 판매'라고 쓴 머리띠를 두르고 있다. 연합뉴스

작년 12월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열린 홍콩H지수 ELS 피해자 집회에서 참가자가 '불완전 판매'라고 쓴 머리띠를 두르고 있다. 연합뉴스


카운트다운은 끝났다.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주가연계증권(ELS) 상품의 3년 만기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작년 11월 기준 금융권의 H지수 ELS 총판매잔액은 19조3,000억 원. 이 중 올해 상반기에 만기가 도래하는 규모(10조2,000억 원)가 절반이 넘는다. 손실 폭탄이 여기저기서 터질 거라는 얘기다. 전체 손실이 3조 원, 많게는 5조 원에 육박할 거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애석하지만, 혹시나 기대했던 반전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 상품 가입자는 약속했던 수익률을 받거나, 아니면 지수 하락폭만큼 손실을 떠안느냐 둘 중 하나다. 약속 수익률을 받으려면 H지수가 가입시점의 65% 이상은 돼야 한다. 9일 H지수 종가는 5,449다. H지수 ELS 가입이 집중됐던 2021년 상반기 지수는 1만2,000을 넘나들었다. 반토막도 더 났다. 지난 5일부터 만기가 도래하기 시작한 상품들은 속속 50% 안팎의 손실이 확정되고 있다. 손실폭을 줄이는 걸 기대할 순 있겠지만, 약정 수익률을 받길 기대하는 건 난망이다.

이제 모든 관심은 주판매사인 은행들의 손실 배상에 쏠려 있다. 총판매액의 82%(15조9,000억 원)가 은행에서 팔렸다. 총선 앞이다. 금융당국이 팔을 걷어붙였다. 당장 8일부터 주요 판매사 12곳에 대해 현장검사를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은행 직원들이 회유했다는 불완전 판매 사례가 쏟아진다. 65세 이상 고령 가입자가 30%를 넘는다는 통계도 있다. 따져봐야 할 것이 많긴 하겠지만, 상당히 큰 폭의 보상이 이뤄질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은행에서 판매한 투자상품은 이익이 날 때는 별 말 없다가 손실이 발생하면 늘 논란이 됐다. 2019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가 있었고, 라임과 옵티머스 등 사모펀드 문제도 있었다. 언제까지 유사한 논란이 되풀이돼야 하는가. 어렵다고 그냥 덮고 간다면 2년 뒤, 3년 뒤 같은 문제는 되풀이될 것이다. 이번에는 꼭 풀고 가야 할 ELS 사태가 던지는 3가지 질문을 짚어봤다.


홍콩H지수 추이

홍콩H지수 추이


몸 풀기 : ELS 이해하기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은행 직원들이 상품 구조를 이해하고 팔았는지 의문”이라고 했지만, 그렇다고 대단히 어려운 구조는 아니다. ELS는 기초자산으로 하는 지수나 종목의 움직임에 따라 수익과 손실이 결정된다.

통상 3년 만기에 2, 3개 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상품이 대부분이다. 미국(S&P500)과 유럽(유로스톡스50) 주가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A상품을 예로 들어보자. 만기가 3년인데 수익률은 연 6.2%, 상환 조건은 ‘90-85-80-75-70-65’로 설정돼 있다. 약정 수익률로 조기 상환할 기회를 가입 후 매 6개월마다 총 6번을 준다는 의미다. 첫 6개월에 두 지수가 모두 가입시점 대비 90%를 넘으면 조기 상환된다. 지수 하나라도 90%를 밑돈다면 다시 6개월 뒤에 기회를 준다. 이번엔 85%가 상환 조건이다. 만약 만기가 되는 3년째까지 마지막 조건(65%)을 충족 못했다면 해당 지수 하락분만큼이 손실이다. 예를 들어 S&P500이 가입시점보다 30% 하락했고, 유로스톡스50이 40% 하락했다면 둘중 상환기준을 밑도는 40%가 손실로 확정된다고 보면 된다.

가장 많은 ELS 상품을 판 KB국민은행이 주로 팔았다는 '녹인(knock-in)형' 상품은 원금 손실 가능성이 조금 더 크다. '노녹인(no knock-in)형'은 6번의 판단시점을 제외하고는 중간에 아무리 지수가 많이 떨어져도 상관없지만, 녹인형은 만기까지 단 한 번이라도 지수가 50% 밑으로 떨어지면 만기 상환 조건이 65%가 아니라 70%로 높아지는 구조다.

사실 개별 종목이 아니라 글로벌 지수가 3년 동안 지속적으로 하락해 가입시점 대비 반토막 가까이 떨어지는 경우가 흔하지는 않다. ELS는 은행에서 예∙적금 다음 가는 베스트셀러 상품이다. 2002년 상품 인가가 난 이후 근 20년 가까이 인기를 끌어왔다. 그만큼 손실 확률이 높지는 않다는 얘기일 것이다.

문제는 손실이 나면 큰 손실로 이어지는 구조에 있다. 상방은 막혀 있지만 하방은 뻥 뚫려있다. 지금 문제가 되는 2021년 상반기 판매 H지수 ELS는 당시 초저금리 상황에서 약정 수익률이 연 2, 3%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론적으로 최대 손실은 100%다. 예금 금리보다 1, 2%포인트 높은 수익률을 얻으려고 원금을 통째로 날릴 수 있는 위험한 도박을 하도록 설계된 상품이다. 금융사들이 ELS 상품을 초고위험(1등급) 상품으로 관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상∙하방이 모두 뚫려있고 언제든 사고팔 수 있는 주식보다 훨씬 불공정한 상품일 수 있다. 이제 본격적인 질문으로 들어가 보자.


홍콩H지수 ELS 만기 도래 규모

홍콩H지수 ELS 만기 도래 규모


질문1. 영혼 없는 서명, '적합성 원칙' 충족하나

만기가 돌아온 정기예금이 있어 재예치를 위해 은행 창구를 찾았다. ‘요즘 금리 괜찮은 상품이 뭐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직원은 ELS를 권유했다. 정기예금보다 수익률이 2%포인트나 높다니 솔깃했다. 손실이 날 수는 있지만 전혀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 일은 거의 없다고.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사례다. 불완전 판매를 주장하는 이들은 대부분 이런 식으로 상품에 가입했다고 말한다. 예금하러 갔는데 ELS를 주더라는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이들도 모두 상품을 충분히 이해했다고 서명을 하고 녹취까지 했다. 금융당국 인사는 “이런 형식적인 요건을 구비하지 않은 고객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DLF와 사모펀드 대란 이후 만들어진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이 발효된 것은 2021년 3월 말이지만 은행들은 2020년 말부터 대부분의 내용을 이행했다고 한다.

실제 은행 창구에서 투자상품에 가입해본 고객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저것 시키는 대로 답하고, 쓰라는 대로 쓴다. 그래야 상품 가입이 가능하다고 한다. 영혼 없는 설명과 영혼 없는 답변에 1시간은 족히 걸린다. 금융사 면피용 제도라는 비판이 나오는 게 무리가 아니다.

금융상품 판매에는 '적합성의 원칙'이라는 게 있다. 투자자의 특성에 적합하게 투자를 권유하도록 하는 원칙이다. 불완전 판매 여부를 가르는 가장 기본적인 기준이기도 하다. 장근혁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양'으로 때우는 현재 방식을 확 뜯어고치지 않으면 같은 논란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단 10분 만에 상품을 팔더라도 실질적으로 투자자 특성에 적합하게 판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자산이 얼마인지, 자산 포트폴리오는 어떻게 되는지, 정기적 소득이 있는지, 향후 소득 예상액이 어떻게 되는지, 어떤 투자 경험이 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보고 적합한 상품을 추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자산 10억 원 고객이 1,000만 원을 투자할 때와 자산 5,000만 원 고객이 1,000만 원 투자할 때 똑같은 상품을 권유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니냐”고 했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부회장의 생각도 비슷하다. 그는 “현 제도는 문제가 생겼을 때 판매자의 책임을 덜어주는 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투자자의 성향을 어떻게 하면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지, 금융소비자 중심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난해 12월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홍콩H지수 ELS 가입자들이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홍콩H지수 ELS 가입자들이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질문2. 과잉 배상, 득인가 독인가

지난 2020년 금융당국이 라임자산운용의 펀드 환매중단 사태와 관련해 판매사에 투자원금 전액 반환을 결정했다.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가 100% 반환 결정을 내렸고, 판매사들이 모두 수용했다. 금융투자상품 분쟁 사상 전례 없는 일이었다.

'처음부터 알았다면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을 만큼 중요한 사항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경우 계약 자체를 취소할 수 있다’는 민법 조항(제109조)을 준용했지만 논란은 많았다. 상품운용에 따른 이익과 손실은 모두 투자자에 귀속된다는 ‘자기책임의 원칙’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상품 설계를 같이 한 금융사(신한금융투자)와 단순 판매사(우리∙하나은행)에 똑같이 100% 책임을 물린 것도 편의적 행정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번에는 라임펀드처럼 극단적 방식은 아니더라도, 역시 과잉 배상 논란이 적지 않았던 DLF 등의 전례를 참조할 것이다. 설명 의무 이행 여부, 고령자 여부, 다른 파생상품 투자 경험 여부 등을 유형화해 배상 비율을 정하는 식이다. DLF 사태 당시 이런 방식으로 유형별로 40~80% 배상 결정이 내려졌다.

하지만 ELS는 상품 자체에 사기성이 있었던 앞선 사모펀드들과는 다르다.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공모 상품이고, 십수 년간 대체로 큰 탈 없이 약정 수익률을 내오던 상품이다. 손실 확정이 눈앞에 다가오자 불완전 판매 민원이 쏟아지고 있지만 그야말로 ‘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한 금융사 WM본부장은 “고령자라고, 첫 가입자라고 일률적으로 불완전 판매로 몰아가는 게 과연 공정하냐”고 반문했다.

무엇보다 ‘프리 라이더’ 양산을 경계해야 한다. 여러 차례 ELS 조기상환을 통해 약정 수익률을 챙겨놓고 이제 와서 “나는 예금자인 줄 알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계좌 기준으로 과거 ELS 투자 경험이 있는 가입자가 10명 중 9명 이상(91.4%)이다. 한 증권사 임원은 “고령층 고객의 경우 일부러 자식을 동반하지 않고 내방하는 경우가 있다”며 “혹시라도 가입 상품에 손실이 발생하면 조금이라도 더 배상을 받기 위해서라고 한다”고 전했다. 이런 고객들에게는 “애석하지만, 당신은 구제 대상이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선을 긋는 게 마땅하다.

한번 허물어진 투자자 자기책임 원칙은 다시 세우기 쉽지 않다. 구제 형평성도 따져봐야 한다. 당장 미국과 유럽의 오피스 빌딩 가격 하락으로 다음 손실 폭탄은 해외부동산펀드가 될 거라는 우려가 크다. “구제 기준이 뭐냐”는 불만에 당국이 명확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판매사의 적합성 원칙과 투자자의 자기책임 원칙을 얼마나 균형 있게 처리하느냐가 중요하다”고 했다.


금융권 홍콩H지수 ELS 판매 잔액

금융권 홍콩H지수 ELS 판매 잔액


질문3. 은행 파생상품 판매, 금지해야 하나

금융당국은 2019년 11월 원금 손실 가능성이 20%를 넘는 고위험 투자상품을 은행에서 판매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의 DLF 후속 대책을 내놓았다. 은행이 ‘고난도 금융상품’을 사모펀드 형식으로 파는 행위를 제한하고, 신탁도 제한 대상에 포함시켰다. “신탁은 고객과 은행 간 1대 1 계약인 만큼 사모로 볼 수밖에 없다”는 논리였다.

은행들의 저항은 거셌다. ELS를 신탁에 넣어 판매하는 40조 원 규모 주가연계신탁(ELT)까지 금지하면 금융시장 발전을 저해한다며 전방위로 읍소했다. 불과 한 달 뒤 당국은 고객이익 보호를 강화하겠다는 은행들의 약속을 믿고 ELS의 신탁 판매를 허용했다. 조건은 있었다. 판매량을 당시 은행별 잔액 한도 내로 제한했다. “앞으로는 2019년 11월 말 신탁 잔액 계정을 초과하는 고위험 파생상품을 팔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또 개별 종목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ELS는 판매를 금지했고, 지수 또한 H지수를 포함한 5개로 제한했다.

KB국민은행이 이번 ELS 사태의 ‘주범’이 된 것도 오락가락한 당시 정부 대책의 영향이 적지 않다. 국민은행의 H지수 ELS 판매액은 8조 원으로 전체 은행권 판매액(15조9,000억 원)의 절반이 넘는다. 당시 DLF 사태를 비껴간 국민은행이 다른 은행보다 ELS를 많이 팔았다는 이유로 압도적으로 높은 한도를 받은 것이다. 국민은행이 내부 규정까지 바꿔가며 유독 공격적으로 ELS를 판매한 데는 금융당국이 판을 깔아준 셈이다. 이뿐이 아니다. 금융당국은 “H지수는 등락이 극심했고 원금 손실이 발생한 전례가 있다”(이복현 원장)고 은행을 다그치지만, 이런 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허용한 건 금융당국이다.

이제 은행의 파생상품 판매를 두고 다시 고민이 필요하다. 증권사에 비해 은행 고객들이 훨씬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는 건 분명하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도 교수 시절 언론 인터뷰에서 “은행 판매상품을 제한하는 것이 고위험 금융상품의 불완전판매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 방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틀어막는 건 너무 손쉬우면서도 투박한 해법일 것이다. 금융시스템 발전을 해칠 뿐 아니라, ‘금융 소외자’를 양산할 수 있다. 강경훈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판매 채널이 적은 증권사 등에만 판매를 허용한다면 누군가에는 고수익 기회를 박탈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며 “사고가 발생했다고 싹까지 밟는 방식은 올바른 해법일 수 없다”고 했다.

은행 스스로의 결정에 맡길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자신의 내부통제 역량에 맞게 판매 여부와 한도, 대상 등을 결정하도록 하면 될 일이다. A은행은 초고위험 상품까지 판매하고, B은행은 70세 이상 고령자에게 판매하려면 추가 조건을 충족해야 하고, C은행은 손실 위험이 30%를 넘는 상품은 판매를 하지 않는 식이다. 강 교수는 “감독당국의 역할은 각 은행들의 내부통제 역량이 판매 가이드라인을 충족하는지를 지속적으로 감시하는 것”이라고 했다. 지금까지도 판매 상한으로 유지되고 있는 ‘2019년 11월 말 신탁 잔액’ 같은 우스꽝스러운 규제를 더 이상 만들 생각은 접어야 할 것이다.

이영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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