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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햄버거에 피클? 김치 먹는 날 곧 올 것" 美 홀린 빨간 맛 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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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클 옆자리를 차지하는 게 목표죠.
대상 아메리카 관계자
지난달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한 월마트 매장에서 종합 식품기업 대상의 미국 법인인 대상 아메리카 관계자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곳 냉장코너의 피클과 사우어크라우트(유럽의 양배추 발효식품) 등 절임류 사이에 'KIMCHI'라고 적힌 유리병에 담긴 제품이 보였다. 미국 내 모든 월마트의 냉장코너 피클 옆에 김치가 놓이게 하는 것이 이 회사의 목표다. 대상은 한국 기업 중 최초로 미국에 김치 생산 공장을 가지고 있다.
미국 현지에서 김치의 존재감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려고 미국 캘리포니아(18일)와 뉴욕(21일)에 있는 식료품점과 대형마트를 둘러봤다. 한국인이 많이 사는 캘리포니아주 어바인 근처 H마트 내부는 한국의 흔한 마트 풍경과 비슷했다. 포기김치부터 갓김치까지 수십 종의 김치 가운데 대상의 종가 김치만 15종 이상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반면 뉴욕 맨해튼의 고급 슈퍼마켓 홀푸드에는 여섯 가지 김치를 판매하고 있었는데 한국식 김치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유기농 식품을 주로 파는 곳으로 유명한 이 매장에서 일단 포기김치는 찾아볼 수 없고 대부분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맛김치 형태였다. '자연 발효(wild fermented)'라는 문구가 쓰인 한 김치 제품은 용기 속 김치의 색이 주황색에 가까웠고 피클 회사에서 만든 또 다른 김치는 김치라고 쓰인 라벨만 없으면 피클이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아예 해조류를 활용한 김치, '시치(Sea-Chi)'도 눈에 띄었다.
미국인이 장 보러 갈 때 가장 많이 찾는다는 월마트에서도 '미국식' 김치들을 만날 수 있었다. 월마트에서 파는 김치 중 매출 1위는 사우어크라우트를 전문으로 만드는 유럽계 회사 클리블랜드키친에서 제조한다. 피클류를 만드는 회사에서 K푸드의 인기에 힘입어 김치 제품까지 출시한 것이다.
또 다른 김치가 바로 대상이 지난해 6월 380억 원에 사들인 미국 식품업체 럭키푸드(Lucky Foods)의 '서울김치'다. 기존 김치와 같은 '매운맛 오리지널', 매운맛이 덜한 '오리지널', 새우젓을 빼고 만든 비건 김치도 매운맛과 기본 등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여기에 무김치까지 다섯 가지 서울김치가 월마트에서 팔린다. 월마트에는 대상의 브랜드인 종가 김치도 볼 수 있는데 미국 중부의 고객들은 종가 김치를, 서부와 동부 사람들은 럭키푸드 김치를 많이 선택한다고 한다.
한편 빨간 양념의 한국식 김치를 만난 곳은 최근 냉동김밥 열풍으로 한국까지 유명세를 탄 식료품점 트레이더조(Trader Joe's)와 창고형 매장 코스트코(COSTCO)였다. LA 중심가에서 방문한 한 트레이더조 매장에서 파는 김치는 300g짜리 맛김치뿐이었다. 이 매장은 품질 좋은 자체 브랜드(PB) 상품만 다루는 곳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종가 김치를 들여놓기 시작했다. 한편 LA 외곽의 한 코스트코에는 1.2kg짜리 종가 김치가 'No.1 KIMCHI BRAND IN KOREA'라는 문구가 쓰인 포장재에 담겨 매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트레이더조와 코스트코 모두 한국에서 김치를 전량 수입한다. 안영우 대상 아메리카 SCM 실장은 "미국에 약 570개의 창고형 코스트코 중 종가 김치가 꾸준히 들어가는 곳이 430개"라고 말했다.
미국 내 김치 수요는 코로나19 유행을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KATI 농식품수출정보·한국무역통계진흥원에 따르면 2020년 한국산 김치의 미국 수출액은 2,310만 달러, 수출 물량은 6,191톤(t)이었다. 김치가 건강식으로 알려지면서 2019년 수출액 1,480만 달러, 물량 3,725t과 비교해 수출액은 56.1%, 수출 물량도 66.2%나 뛰었다. 2023년 9월 기준 대(對)미 김치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40% 이상 증가한 3,060만 달러로, 2022년 연간 수출액 2,910만 달러를 크게 앞섰다.
특히 코스트코에서 팔리는 종가 김치가 수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안 실장은 "지난해 코스트코에서 종가 김치가 거둬들인 매출액은 2022년과 비교해 30%가량 늘어난 2,600~2,700만 달러"라며 "2024년에는 코스트코와 트레이더조를 합해 전년 대비 30% 이상 뛴 4,300만 달러 매출이 목표"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산 김치가 미국에서 팔리는 김치의 전부가 아니다. 같은 날 LA 인근 시티오브인더스트리의 대상 김치 공장을 찾았다. 이곳은 대상이 2022년 미국에 처음으로 지은 김치 생산 공장으로 한 달에 김치 30t, 고추장 15t씩을 만들고 있다. 안 실장은 "2023년 LA 공장이 거둔 매출은 550만 달러(약 72억5,000만 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이날 김치 생산 공장에 들어서자 다진 마늘 냄새가 코로 스며들었다. 공장 한편에서 작업자들이 김치 양념을 정리하고 있었다. 가내 수공업으로 50~60명의 직원들이 김치를 만드는 미국의 지역 김치 업체와 달리 이곳은 한국의 김치 공장처럼 자동화 설비를 갖추고 있어 실제 생산 직원은 열명 남짓이다.
권오종 대상 푸드 USA 공장장은 "한국 김치 공장과 비교하면 규모는 100분의 1 수준이지만 미국 김치 공장 가운데 가장 크다"며 "현재 김치를 한 달에 30t 만들고 있지만 최대 300t까지 생산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종가 브랜드 김치는 월마트에서 판매되는 300g과 B2B(기업간거래) 시장에서 팔리는 1.2kg짜리 두 종류다. 올해에는 생산 라인을 늘려 럭키푸드 김치 일부도 만든다. 배추 등 주요 재료는 미국산을 쓴다. 권 공장장은 "처음 미국에 왔을 때 김치에 사용하는 배추에 대한 기준도 없었다"라며 "한국에서 적용하는 기준을 맞추는 데 처음엔 우왕좌왕했지만 지금은 수준이 많이 올라온 상태"라고 말했다.
안정적으로 미국에서 배추 등 재료 수급이 이뤄지면서 LA 공장은 앞으로 생산량을 늘릴 예정이다. 한국산 김치를 수입해서 팔던 트레이더조에서도 깍두기를 비롯해 더 다양한 김치 품목들을 들일 예정인데 이 김치도 LA 공장에서 만들 예정이다.
현재 대상 아메리카는 코스트코 중심의 한국식 종가 김치와 월마트 중심의 럭키푸드 김치 등 양 날개를 앞세워 미국내 김치 시장을 공락하겠다는 투 트랙 전략을 쓰고 있다.
지난해 6월 대상이 인수한 럭키푸드는 2000년 한국인이 세운 아시안 식품 전문회사다. 김치 브랜드 '서울김치'가 이곳의 대표 제품인데 대상이 미국 시장에 진출하기 훨씬 전부터 미국인에게 김치를 판매해왔다. 이 회사의 강점은 미국인의 입맛에 맞춘 김치로 월마트 등 일반 마트에 입점해 있다는 것이다. 안 실장은 "한국식 김치는 양념과 배추 비율이 3대 7이지만 미국식 김치는 양념이 1, 배추가 9"라며 "럭키푸드의 김치는 시원한 맛의 샐러드 같은 김치로 미국인 입맛에 안성맞춤"이라고 말했다.
모회사인 대상이 대량 생산한 종가 김치는 큰 폭의 할인율을 앞세워 코스트코 같은 창고형 매장을 공략하고 월마트 같은 일반 마트는 럭키푸드 김치로 점유율을 높이되 종가 브랜드를 단 김치를 하나씩 늘려가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오프라인 마트뿐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김치를 비롯한 대상 제품들을 만날 수 있다. 대상 아메리카의 온라인 주력 판매망은 미국 최대 온라인 쇼핑몰인 아마존이다. 청정원의 글로벌 브랜드 오푸드는 다양한 한국 식품을 아마존에서 판매 중인데 최근 가장 큰 인기를 끄는 제품은 떡볶이(tteokbokki)다. 지난해 1분기 대상 청정원의 떡볶이 밀키트 미국 매출이 전년 대비 297%나 뛰면서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더니 지난해 부동의 1위였던 고추장을 제치고 가장 많이 팔리는 상품에 올랐다. 대상 아메리카 관계자는 "이에 달라붙는 떡의 식감을 미국인들이 싫어한다는 것도 옛말"이라며 "현재 아마존에서 다루는 대상의 상품 중 자리를 가장 잘 잡았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올해 김치의 온라인 판매량 늘리기에 힘을 싣고 있다. 냉장 제품인 김치는 아마존이 아닌 대상 아메리카에서 직접 고객에게 보낸다. 대상 아메리카 관계자는 "고객 이름 등으로 미뤄 볼 때 현재 주문량의 90%는 한국인이 아닌 현지인이고 한 번 김치를 사 먹은 사람의 45%가 재구매한다"고 말했다.
대상은 미국 내 김치 B2B 시장 확장에도 공들이고 있다. 미국 레스토랑 체인 '치즈케이크팩토리' '피에프창'에서 대상 고추장을 쓰는데 김치도 B2B 납품 목록에 추가하겠다는 것. 당장 미원으로 유명한 일본 식품 대기업 아지노모토가 움직였다. 미국 코스트코에 볶음밥 제품을 판매하는 아지노모토는 올해 종가 김치로 만든 김치볶음밥도 내놓는다. 코스트코에 종가 김치 말고도 처음으로 종가 김치를 활용한 먹을거리가 고객들을 만나는 셈이다.
대만 레스토랑에서 시작해 냉동 식품도 파는 딘타이펑에서도 출시 예정인 김치 만두에 종가 김치를 넣는다. 안 실장은 "미국에 김치 공장을 가지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며 "김치의 존재감을 높이기 위해 꾸준히 생산량을 늘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치가 이렇듯 미국에서 활발하게 인지도를 키우는 데 민관의 협력이 큰 힘이 됐다. 2020년부터 한국에서 법정 기념일로 11월 22일을 '김치의 날'로 지정했는데 이듬해 캘리포니아주를 시작으로 버지니아, 뉴욕, 워싱턴 DC, 메릴랜드, 미시간, 조지아주에서도 함께 기념하고 있다.
대상은 2019년부터 김치를 활용한 요리 경연대회인 '종가 김치 쿡 오프(JONGGA Cook Off)' 행사를 마련했다. 김치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리고 김치 종주국 위상을 높이기 위해 기획된 '종가 김치 블라스트'의 메인 행사로 미국뿐 아니라 프랑스, 영국에서도 열린다.
지난해 11월에는 처음으로 캘리포니아가 아닌 뉴욕 ICE 요리학교에서 행사를 열어 프랑스, 영국 등에서 예선을 거친 결선 진출자 8명이 경합을 펼쳤다. 그 결과 '도미 김치찌개와 백김치 유자액을 넣은 체리토마토 요리'가 1등을 차지했고 맛김치를 활용한 코피타(그리스식 파이), 김치 누룽지 파에야 및 도미 세비체 등이 2, 3등에 뽑혔다.
대상 아메리카 관계자는 "미국 사람들에게 한국 하면 무엇이 떠오르냐고 했을 때 여전히 불고기, 김치 같은 K푸드가 가장 먼저 나온다"며 "김치의 날도 K푸드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으며 앞으로도 김치와 문화를 접목한 대규모 행사를 꾸준히 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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