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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앞에 제사상 차릴래" 고려거란전쟁 양규 죽자 '검색어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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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규(지승현·43) 장군 전사할 때 TV 앞에 간이 제사상을 차려 놓을 거다." KBS 사극 '고려거란전쟁' 속 고려 서북면 도순검사 양규에 푹 빠진 시청자가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이다. 드라마 속 인물이 죽는다고 제사상까지 차리겠다니. 양규에 과몰입한 시청자들이 많다 보니 7일 방송에서 양규가 애전 벌판에서 거란군과 싸우다 장렬히 전사하는 모습이 전파를 탄 뒤 온라인 곳곳은 초상집으로 변했다. SNS엔 "양규와의 이별이 너무 슬퍼서 눈물 뽑고 있다"는 시청자들의 곡소리가 터졌고, "이순신 장군 앞에만 붙었던 '성웅'이란 칭호는 양규에게도 충분히 붙일 수 있지 않을까"란 추모글도 굴비 엮이듯 올라왔다.
포로로 끌려간 백성을 구하기 위해 '사지'를 찾아간 양규가 거란 본군이 쏜 화살에 맞아 전사한 장면은 이날 방송 최고 순간 시청률(11.0%·닐슨코리아 집계)을 기록했다. 드라마에서 양규가 전사한 날, 그의 이름은 구글 트렌드 검색어 1위로 깜짝 등장했다. 역사가 '스포일러'라 양규의 죽음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인터넷에서 그의 드라마 속 안부를 찾아본 시청자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뜻이다. 그야말로 신드롬급 인기다.
PD가 편집하며 네 번 운 사연
'양규 열풍'의 불쏘시개 역할은 지승현이 했다. 학군단 출신인 그는 '고려거란전쟁'에서 강인함과 부드러움을 오가며 서희와 강감찬 뒤에 가려졌던 고려의 명장 양규의 매력을 부각했다. 7일 방송에서 지승현은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상황에서도 형형한 눈빛으로 적장을 향해 끝까지 활을 쏘아 올린다. 고슴도치처럼 온몸에 적의 화살을 맞은 그는 서서 죽는다. 절체절명의 순간, 지승현은 과장되지 않은 몸짓과 말투로 배역의 비극을 키웠다.
열연의 여운은 깊었다. "큰 소리 내지 않고 절제된 연기로 정통 사극에 나온 여느 우락부락한 무관과 다른 결을 보여주면서"(정석희 드라마평론가) "표정을 많이 쓰지 않는 차분한 연기로 문신이자 무관인 양규의 서사를 입체적으로 살렸다"(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평가를 받았다. 1990년대 이덕화('한명회'), 유동근('용의 눈물') 이후 한동안 맥이 끊겼던 새로운 사극 스타의 등장이다. '고려거란전쟁'에서 전쟁 장면을 주로 연출한 김한솔 PD는 "(강감찬 역을 맡은) 최수종을 보러 왔다가 지승현을 얻어갔다"며 "홍화진에서 싸우는 지승현의 모습을 보며 편집하다 네 번 울었다"고 말했다. 제작진에 따르면, 양규의 마지막 전투 촬영은 영하 10도를 밑도는 강추위에서 지난 연말 사흘 동안 이뤄졌다. 마지막 전투 촬영일은 마침 지승현의 생일(12월 9일)이었다. 양규가 죽던 날, 지승현이 배우로 다시 태어난 셈이다.
"원작 작가도 잘 몰랐다"는 양규의 재조명
양규는 흥화진(평안북도 의주군)의 성에서 거란군 40만 대군에 7일 동안 맞서 적을 물리쳤다. 거란군이 남진하자 흥화진을 나와 1,700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거란군 6,000명이 점령한 곽주성까지 탈환했다. 화포도 없던 시절 성을 함락하기 위해선 그 성에 주둔한 병력의 10배 이상이 필요하다는 병법을 고려했을 때 기적 같은 승전보였다. 적군의 보급로 등을 위협한 그의 지략에 거란군은 고려의 수도 개경까지 함락하고도 철군을 결정한다. '귀주대첩'(1019) 전 2차 고려거란전쟁(1010년)에서 이름을 떨친 장수였지만 양규에 대한 역사적 조명은 그간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 지승현은 "배역 제안을 받았을 때 양규를 몰라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지승현뿐 아니라 적잖은 시청자들이 양규의 이름조차 낯설어했던 배경이다. 이 사료적 공백을 사극 동명 원작 소설을 쓴 길승수 작가가 상상력으로 채웠다. 길 작가는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처음엔 나도 양규를 잘 몰랐다"며 "2009년부터 이 소설을 준비하며 자료를 찾고 그 과정에서 양규의 전술과 '왜 그가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됐을까'를 고민하며 사료에서 행간을 찾다가 '전략적으로 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었구나'를 깨닫게 돼 양규를 조명하고 책에서 그 분량을 늘리게 됐다"고 말했다.
'고려의 이순신'에 청년이 호응하는 이유
드라마에서 양규는 강조(이원종)가 정변을 일으켜 목종을 몰아낸 뒤 함께 뜻을 펼치자며 내민 손을 잡지 않는다. 무관으로 나라를 지키는 소임에만 충실하겠다는 게 그의 소신이었다. 이렇게 소설과 드라마를 통해 양규의 뚝심이 재조명되자 20, 30대 시청자들은 SNS 명패를 '양규'로 바꿔 달기 시작했다. '고려의 이순신'이란 찬사도 따랐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학과 교수는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 초불확성시대에 공권력의 공백을 절감하며 커진 생존의 위기에서 쉬 흔들리지 않고 책임을 다하는 지도자에 대한 열망이 어느 때보다 뜨겁다"며 "청년세대의 그 바람이 양규에 대한 환호로 드러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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