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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도, 남아도 일자리는 없다"...해외 중국 유학생 '시련기'

입력
2024.01.15 10:00
수정
2024.01.15 10:49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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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빛바랜 중국인 해외 대학 졸업장
세계 각지 나갔던 중국 유학생 귀국 물결
글로벌 경기 하강에 중국인 기피 현상 탓
최악 청년실업난... 고향도 일자리는 없어

중국의 한 대학생이 졸업식에서 학교 난간에 마치 시신처럼 매달려 있다. 사상 최악의 청년 실업률을 기록 중인 중국 대학생들 사이에선 '사망 졸업 사진' 찍기가 유행 중이다. 극심한 취업난에 취업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절망감을 스스로 풍자하고 있는 듯하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국내 대학 졸업생은 물론 해외 유학을 다녀온 유학파도 모두 이례적인 취업난을 겪고 있다"고 지적한다. 샤오훙수 캡처

중국의 한 대학생이 졸업식에서 학교 난간에 마치 시신처럼 매달려 있다. 사상 최악의 청년 실업률을 기록 중인 중국 대학생들 사이에선 '사망 졸업 사진' 찍기가 유행 중이다. 극심한 취업난에 취업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절망감을 스스로 풍자하고 있는 듯하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국내 대학 졸업생은 물론 해외 유학을 다녀온 유학파도 모두 이례적인 취업난을 겪고 있다"고 지적한다. 샤오훙수 캡처


편집자주

5,000년간 한반도와 교류와 갈등을 거듭해 온 중국. 우리와 비슷한가 싶다가도 여전히 다른 중국. 좋든 싫든 앞으로도 함께 살아가야 할 중국. '칸칸(看看)'은 '본다'라는 뜻의 중국어입니다. 베이징 특파원이 쓰는 '칸칸 차이나'가 중국의 면면을 3주에 한 번씩 보여드립니다.


#1. 중국 톈진시 출신인 자오(26)는 2018년 호주 명문 퀸즐랜드대 유학길에 올랐다. 내로라하는 중국 명문대에 진학할 실력도 됐지만, 호주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경험을 바탕으로 영미권 정보통신(IT) 기업에 취업하는 게 그의 꿈이었다.

2021년 경영학 학위를 따긴 했지만 앞길은 막막했다. 호주 홍콩 싱가포르의 IT기업에 수십 통의 이력서를 보냈지만 번번이 낙방했다. 일단 경력이라도 쌓자는 생각에 취업한 호텔 관리직은 적성에 맞지 않았다. 그는 한국일보에 "중국과 서방권의 관계가 지금처럼 나쁘지 않았던 수년 전만 해도 유학한 국가에서 취업하고 이민까지 한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중국 경제가 계속 성장하자 과거에는 해외에서도 중국인 직원 수요가 많았다고 한다.

최근 들어 상황이 급변했다. 자오는 "호주 사람을 뽑아도 되는데 굳이 중국인을 뽑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게 현지 기업 반응"이라며 "차라리 중국으로 돌아갈까 고민 중"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가 고향으로 간다 해도 상황은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 취업에 성공할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해외 대학 졸업장이 이제는 중국 내 취업을 보증해주지도 않아서다.

#2. 싱가포르 제임스쿡대에서 국제무역학 학사를 딴 뒤 2022년 중국으로 귀국한 천(24). 험난한 현지 취업보다 중국 대형 국영기업에 들어가는 게 안정적 삶을 가져다줄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취업은 만만치 않았다. '사상 최악의 실업난' 탓에 취업 공고조차 보기 어려워진 탓이다. 그는 "얼마 전까지는 해외 졸업장 자체가 취업 관문을 여는 열쇠였지만 지금 같은 실업난이라면 유학 경험도 쓸모가 없다"고 했다. 지난해 작은 부동산 업체에 취업한 그는 "뭐 하러 유학까지 갔나"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고 했다.

미국서 이공계에 비자도 안 줘...연봉도 하락세

2019년 5월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에서 열린 졸업식에서 학사복을 입은 중국인 유학생이 오성홍기를 흔들며 졸업을 자축하고 있다. 신화 캡처

2019년 5월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에서 열린 졸업식에서 학사복을 입은 중국인 유학생이 오성홍기를 흔들며 졸업을 자축하고 있다. 신화 캡처

한때 세계 주요 국가 대학 캠퍼스를 점령하다시피 했던 중국인 유학생들이 대거 '귀국길'에 오르고 있다. 세계 경제 성장 둔화에 해외 취업이 어려워진 데다, 미중 갈등 여파로 서방 주요국에서 중국인 유학생 채용 기피 기류가 짙어진 탓이다.

울며 겨자 먹기로 중국에 돌아왔다 해도 취업이 안 되긴 매한가지다. 사상 최악 청년 실업률 속에서 얼마 안 되는 일자리를 놓고 국내파와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중국 정부는 귀국 유학생들에게 "다시 나가라"는 압박을 가하고 있다. 유학생 입장에선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 셈이다.

중국은 명실상부 해외 유학생 대국이다. 코로나19 확산 직전인 2019년 중국인 해외 유학생 규모는 70만3,500명으로,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유학생은 미국 영국 호주 싱가포르 등 대체로 영어권 국가에 집중됐다. 미국 국제교육원(IIE)은 이 시기 미국 내 단과대학에 등록된 중국인 유학생을 37만 명으로 집계했다. 미국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전체 유학생 3명 중 1명꼴로 중국인이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해외로 나갔던 중국 유학생들은 이제 길을 잃었다. 해외 각국에서 중국인 인재 대우 수준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중국 경제 매체 차이신에 따르면 2020년 해외 근무 중국인의 평균 연봉은 26만8,000위안(약 4,900만 원)이었다. 2년 뒤인 2022년에는 24만4,000위안(약4,500만 원)으로 2만4,000위안(400만 원) 줄었고, 지난해 상반기엔 20만4,000위안(약 3,700만 원)으로 급감했다. 차이신은 "세계 경기 하락 여파가 중국인 해외 취업 시장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외국 학위'가 빛을 잃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인 채용 기피 현상도 짙어지고 있다. 미국고등교육연감(CHE)에 따르면 2022년 미 정부의 중국 유학생 비자 발급 건수는 전년 대비 45% 줄었다. 중국인 대학원생 샤는 한국일보에 "특히 미국 대학에 이공계 전공 신청을 했던 친구들이 최근 비자 발급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미국 정부는 2020년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중국인 유학생과 연구자의 미국 체류 자격을 취소하기도 했다. "미국 기술과 지식을 불법적으로 취득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중국인 유학생의 이공계 전공 길을 사실상 봉쇄한 것이다. 미중 간 첨단기술 경쟁이 격해지자 이공계 중국인 유학생을 잠재적 산업 스파이 취급한 셈이다. 2022년 기준 중국 유학생들의 전공 분야는 과학과 공학이 각각 28.1%와 17.8%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다른 나라들도 중국에 팍팍해졌다. 호주는 2021년부터 '유학생 다변화 지수' 정책을 도입했다. 각 대학에서 공부하는 유학생 출신국을 통계화해 "특정국 유학생 비중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싱가포르는 최근 '외국인 취업 비자 포인트 제도'를 도입해 취업 비자 발급 요건을 강화했고, 영국도 지난해 외국인 취업 비자 신청에 필요한 급여 수준을 인상했다. 미국은 물론 호주 싱가포르 영국 모두 중국인 유학생 비중이 가장 많은 국가인 점을 고려하면 다분히 중국인 유입 견제 조치로 해석된다.


‘귀국’ 중국인 유학생 규모, 해외 근무 중인 중국인 평균 연봉. 그래픽=김대훈 기자

‘귀국’ 중국인 유학생 규모, 해외 근무 중인 중국인 평균 연봉. 그래픽=김대훈 기자


120만 유학생 귀국했지만 '최악 구직난' 부닥쳐

현지 취업이 녹록지 않은 이들은 결국 귀국을 택하고 있다. 중국 교육부에 따르면 2013년 35만 명이었던 귀국 유학생 규모는 2015년 40만 명, 2017년 48만 명으로 늘었다. 2018년 50만 명을 돌파한 뒤 2021년엔 105만 명으로 급증했다. 중국 구직 사이트 51잡닷컴은 "지난해 120만 명의 해외 유학생이 중국으로 돌아왔을 것"으로 추정했다. 귀향을 택하고 있는 중국인 유학생 규모가 10년 만에 약 3배 증가한 것이다.

외국 학위를 앞세워 중국에서 취업하겠다는 귀국 유학생들의 희망은 좌절됐다. 중국 정부가 '제로코로나' 정책(2020~2022년)을 폐기한 뒤 '리오프닝(경제 활동 재개)'에 나섰지만 더딘 경기 회복세가 사상 최악의 구직난을 부른 탓이다.

2022년 12월 16.7%였던 중국의 청년(16~24세) 실업률은 지난해 4월 처음으로 20%를 넘어선 뒤 6월 21.3%로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지난해 7월부터는 당국이 각종 경제 지표 발표 대상에서 청년 실업률을 제외했다. 매달 최악의 수치를 공개하는 데 대한 정치적 부담 때문으로 해석됐다. 구직을 완전히 포기한 이들은 통계에서 제외된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실제 청년 실업률은 정부 발표의 2배 이상인 50%에 이를 것이란 주장도 제기됐다.

더욱이 올해 중국에선 지난해보다 21만 명 증가한 1,179만 명의 신규 대학 졸업자가 취업 시장에 쏟아져 나올 예정이다. 해외 대학 졸업증명서도 경쟁 심한 취업 시장에서 딱히 빛을 발하기는 어려운 상황인 셈이다. 중국 민간 싱크탱크 광둥개혁사회의 펑펑 회장은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중국 내 졸업생들이 겪는 취업난이 필연적으로 해외 유학생들에게도 확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싱가포르에서 유학했던 천은 "요즘 같으면 유학파보다 국내파가 취업에 그나마 유리하다"고 말했다. 중국 내 대학에서 4년간 공부한 학생은 지도교수의 인맥 도움 등을 받아 취업하는 경우가 있는 반면, 해외에서 돌아온 구직자에겐 졸업장 말고는 아무런 배경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중국 "도로 해외로 나가라" 압박...실업률 탓

최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한 취업 박람회에서 한 대학생이 함께 온 어머니와 함께 취업 상담을 받고 있다. 지난해 6월 중국 청년 실업률은 21.3%로 사상 최악을 기록했다. 중국은 이후 청년 실업률은 발표조차 하지 않고 있다. 신화 캡처

최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한 취업 박람회에서 한 대학생이 함께 온 어머니와 함께 취업 상담을 받고 있다. 지난해 6월 중국 청년 실업률은 21.3%로 사상 최악을 기록했다. 중국은 이후 청년 실업률은 발표조차 하지 않고 있다. 신화 캡처

해외 유학생 귀국 물결에 대한 중국 정부 태도는 오락가락이다. 관영 차이나데일리는 2022년 9월 보도에서 유학생들의 귀국 물결에 주목하며 "중국이 가까운 미래 세계 최대 경제대국이 될 것이란 유학생들의 기대감이 그들을 중국으로 불러들였다"고 평가했다. 또한 "아시아계 유학생에 대한 미국 등 서방 국가의 인종차별도 귀국의 이유"라고 분석했다. 유학생 귀국 현상을 미중 경쟁에서 결국 중국이 승리할 것이란 전망의 근거로 사용한 셈이다.

반면 최근 들어선 "다시 나가라" 아우성이다. 미국 블룸버그통신은 "중국 당국이 지난해 초 무렵부터 국내로 돌아온 유학생들에게 '외국으로 다시 돌아가라'고 권고한다"며 "실제로는 권고보다 강제에 가깝다"고 전했다. 당시 외신들은 "미국 등 서방 국가와의 관계 회복을 위한 제스처"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실업률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 내기 위해 유학생들의 국내 복귀를 막아야 한다는 판단도 깔렸을 것으로 분석된다.

베이징= 조영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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