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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음(知音)을 믿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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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그 수가 준 듯하지만, 여전히 새해가 되면 토정비결을 보고 한 해의 운세를 점치는 이가 꽤 있는 것 같다. 토정비결은 책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요, 기인으로 유명한 토정 이지함(1517~1578)이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 역사학계 논의에 따르면, 토정비결이 이지함의 저작일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한다. 이지함은 16세기 사람인데 토정비결이 본격적으로 읽힌 것은 19세기 후반부터이고 그사이 문헌에서 이지함이 토정비결을 지었다는 언급이 전혀 없다는 점이 근거다. 후세 사람이 비결서를 지으면서 민중에게 인기가 있던 이지함의 이름을 빌려왔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개혁적·실천적 학자로서 도가사상에도 정통했던 이지함의 진면목은 그의 저작일 가능성이 희박한 토정비결이 아니라, 그의 후손이 펴낸 유고집 '토정유고'에 실린 3개의 논설, 그중에도 '피지음설(避知音說)'에서 잘 드러난다. 피지음설은 제목부터 눈길을 끈다. 지음을 피하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지음은 중국 고사 백아와 종자기의 이야기(백아가 거문고를 타면 종자기가 듣고 그 음률뿐 아니라 그 마음속까지 알아차렸다)에서 유래한 말로 자신을 잘 알아주는 벗을 뜻한다. 그렇다면 지음은 많은 이들이 열망하는 바이고 지음을 찾고 구하는 것은 인지상정이기도 하다. 그러면 왜 지음을 피하라고 했을까? 피지음설의 내용을 간추리면 이렇다.
'선비가 출세하는 것은 지음이 있기 때문이지만, 말세의 지음은 재앙을 줄 뿐이다. 재물이 재앙이 되는 것은 재물을 많이 지출하기 때문이요, 권세도 재앙이 된 것은 권세를 많이 부려먹었기 때문이요, 지음도 선비의 재앙이 된 것은 지음을 많이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지음을 만나고서 곤욕을 겪지 않은 경우가 드물다. 그래서 어진 선비는 자신의 지음이기를 원하는 사람을 피하는 것이다. 서로 만나서 해롭지 않은 것은 산수(山水)와 전야(田野) 사이에 있는 지음뿐이다.'
한마디로 재물과 권세를 목표나 매개로 한 지음은 재앙의 빌미가 되기 쉽다는 것이다. 재주나 능력을 알아주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와 마음을 알아주는 이가 참 지음이라고나 할까? 역설적인 말이긴 하지만, 인간사 이치가 그런 면이 있다는 건 부인하기 어렵다. 지음으로 자처하는 이가 추천하거나 발탁해서 정·관계의 선망하는 자리에 올랐다가 권력형 비리에 얽혀 하루아침에 수인이 되거나 권력의 부침 과정에 휩쓸려 몰락하고 패가망신하는 예는 이지함이 살던 때나 지금 할 것 없이 너무나 많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여야 간에 기 싸움이 한창이다. 앞으로 공천과정에서 새로운 인재를 영입한다는 명목으로 많은 인사가 지음을 자처하며 사람들을 추천하고 발탁할 것이다. 대의제 민주정치에서 그런 과정을 마다할 수는 없겠다. 다만 말세라고 불러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이 어수선한 시대에, 사생결단식 진영 싸움만 난무하는 험악한 총선 정국을 바라보며, 공천과정에서 누군가를 추천하고 발탁할 사람이든, 그 사람에 의해 추천을 받거나 발탁될 사람이든, 피지음설이 경계하는 바를 한 번이라도 숙고한다면 어지러운 선거판이 조금이나마 '인간화'되지 않을까 하는 부질없는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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