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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망할 수도 있다"…이제는 낡은 담론된 '일본은 한국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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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격주 토요일 연재되는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가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물입니다.
◇ 재해와 사고로 얼룩진 한일 신년 분위기
2024년 정초부터 한일 양국의 우울한 소식에 마음이 어둡다. 1월 1일에는 강진과 지진해일이 일본 열도를 덮쳤다. 진원지인 노토(能登)반도는 최근 몇 년 동안 지진이 잦았던 지역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불안이 현실이 되었다. 지진과 화재로 인한 인명 피해도 안타깝지만, 인근 원전에서 후쿠시마의 악몽이 재현되는 것은 아닌지 마음을 졸였다. 1월 2일에는 야당 대표가 흉기로 피습당했다. 테러의 위협에 노출되는 것이 정치인의 숙명이라고 한다. 하지만, 성숙한 민주화 운동이 뿌리내린 한국에서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하는 폭력사태가 실제로 벌어졌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라는 믿음이 시대 정신으로 기능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도 앞으로 더 좋은 세상이 오리라고 믿는다면 그는 놀라울 정도로 낙천적인 사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급격한 기후 변화는 인류에게 점점 더 적대적인 자연 환경을 만들고 있다. 나날이 심화하는 양극화 속에서 개인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를 훼손하는 명분 없는 전쟁과 폭력 사태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일본의 강진과 한국의 정치인 테러는 분명 서로 무관한 사건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새해 벽두에 한일 양국을 각각 혼란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은 이 불길한 사건들이 앞으로 우리가 볼 암울한 세상을 예고하는 양 내게는 참으로 무겁게 느껴진다. 한국과 일본은 도대체 어떤 미래로 나아가고 있는가?
◇ 일본은 한국의 미래일까?
그러고 보니 예전에는 ‘일본이 바로 한국의 미래’라는 말이 별 의심 없이 받아들여졌다. 요즘에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지는 않을 것 같다. 사실 그렇게 볼 만한 근거도 있다. 한국 사회는 식민지와 전쟁의 폐허 속에서 빠른 속도로 나라를 재건했다. 그 과정에서 신속한 경제 성장을 통해 패전국에서 선진국까지 성공적으로 이미지를 반전시킨 일본을 전범(典範)으로 삼았다. 국가와 대기업이 주도하는 경제 정책, 수출 위주 산업 전략, 수도권 중심의 국토 개발 등 지금의 한국 사회는 한때 일본을 부지런히 ‘벤치마킹’한 결과다.
불과 수십 년 전에는 한국의 대중문화가 일본의 만화나 애니메이션, TV 프로그램 등을 ‘해적질’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얼룩진 식민지 역사에도 불구하고, 일본으로부터 배우자는 분위기가 팽배했던 시절이 있었다. 한국만큼은 아니지만 일본에서도 ‘한국을 보면 일본의 과거가 보인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예를 들어, 2000년대 초반에 '겨울연가' 등 연애 드라마가 초기 한류의 인기를 견인하던 때에 “한국의 드라마는 일본에서는 이미 뒤안길로 사라진 오래된 연애 감성을 소환한다”는 분석이 꽤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졌다. 한국 드라마가 남녀의 순애보를 묘사한 정통 로맨스라는 긍정적인 평가도 들어 있지만, 쿨하고 현대적인 감성을 추구하는 일본의 기준에서는 촌스럽고 진부하다는 뉘앙스도 분명했다.
사실 한국에서 ‘일본이 바로 한국의 미래’라는 담론은, 일본을 전례로 삼아 미래의 사회 문제를 선행 학습할 수 있다는 기대를 담고 있었다. 예를 들어, 2000년대 이후 한국에서 사회적 활동 일체를 거부하는 일명 ‘은둔형 외톨이’가 새로운 사회 문제로 거론된다. 일본에서는 그와 거의 유사한 ‘히키코모리(사회와 담을 쌓고 방에 틀어박혀 지내는 사람)’ 문제가 1980년대에 등장했다. 한일 양국에 동일한 학력·능력 지상주의, 그리고 개인의 근면과 희생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사회 부적응자들을 양산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이렇듯 일본 사회를 전범 삼아 한국 사회가 스스로를 성찰할 수 있는 분야가 적지 않다. 일본 사회가 일찌감치 맞닥뜨린 초고령사회의 과제라든가, 1990년대 말 버블 붕괴와 장기 불황의 쓰라린 경험 등은 한국 사회가 여전히 주의 깊게 참조할 만한 사례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일본이 한국의 미래’라는 말이 구시대적인 프레임이 되어 버렸다. 정보화, 디지털 기술, 대중문화 등 한국이 앞서는 첨단 분야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도 ‘한국은 일본의 과거’라는 담론은 거의 사라졌다. 오히려 ‘일본이 한국에 뒤졌다’고 탄식하는 주장이 제기된다. 연령대가 젊을수록 일본이 한국에 뒤떨어졌다는 관점이 뚜렷하다. K팝 등 대중문화가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사랑받는 영향도 있겠지만, 정보화와 디지털화를 수용하는 사회 전체적인 양상이나 글로벌 변화에 대응하는 속도 등에서 한국이 일본을 추월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불과 수십 년 동안에 벌어진 한일의 상황이 역전한 것이다. 격세지감을 느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반갑지만은 않은 기분도 있다. 성장과 발전만을 높이 사는 과거의 패러다임이 수명을 다한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 선진국 VS 선망국(先亡國) VS 선망국(羨望國)
한국이 소위 후진국(後進國)이던 시절, 선진국(先進國)은 행복과 풍요로움의 동의어였다. 그런데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다르다. 오히려 선진국일수록 미래의 인류를 위협할 많은 사회 문제를 더욱 첨예하게 경험하는 측면이 있다. 오로지 성장을 추구하는 자본주의는 사회의 양극화를 부채질하고 공동체를 파괴시킨다는 점에서, ‘약탈적 자본주의’라는 악명을 얻었다. 정보 민주주의를 실현하리라 믿었던 인터넷은 가짜뉴스와 불량 정보의 유통망으로 전락했다. 정보화가 진전되고 인터넷 사용자가 많은 선진국에서 정치적 스캔들이 현저하게 늘었다. 사회의 고령화나 저출산 등의 문제도 선진국에서 먼저 보고되었다.
모든 선진국이 다 위기에 빠졌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성장과 발전을 맹신하는 낙관론이 통하는 시대는 이미 끝났다. 그러다 보니 최첨단 분야에서 한국이 일본을 앞섰다는 이야기가, 약탈적인 자본과 기술 권력으로 인한 사회 문제를 앞서 경험하리라는 경고처럼 들리기도 한다. 실제로 최근 일본에서는 한국의 저출산 문제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마치 한국이 일본의 버블 붕괴와 장기 불황을 경제 교과서의 문제 사례인 양 공부했던 것과 비슷한 양상이다.
문화인류학자 조한혜정은 ‘세상이 계속 좋아질 것을 믿는 문명은 이미 수명을 다했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한국은 다른 나라보다도 더 빨리 망해가는 ‘선망국(先亡國, 먼저 망하는 나라)’일지 모른다고도 말한다. 실제로 한국은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자살률, 가장 긴 노동시간, 가장 낮은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다. 그의 불편한 주장에 수긍하지 않을 방법이 없다. 오로지 선진국을 목표로 전력질주한 결과가 반드시 성공적이지는 않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는 우리에게 안팎으로 망가진 ‘선망국(先亡國)’의 길만 놓여져 있는 것이 아니라고도 말한다. 돈과 권력만을 좇는 달리기를 멈추고 철저한 자기 성찰을 통해 지구촌의 시민들이 부러워하는 ‘선망국(羨望國·선망하는 나라)’으로 거듭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달려가는 이 길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선진국’인가, 먼저 망하는 ‘선망국’인가, 혹은 모두가 선망하는 ‘선망국’인가? 우리 사회를 성찰하고 돌이키는 2024년이 되기를 바라는 진심에, 새해 벽두부터 험한 글을 쓰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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