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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적분을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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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연구나 과학계 이슈의 의미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일들을 과학의 눈으로 분석하는 칼럼 ‘사이언스 톡’이 3주에 한 번씩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직사각형에서 꼭짓점 하나를 지우고, 여기 연결돼 있던 가로 변의 끝점과 세로 변의 끝점을 연필로 곡선을 그려 자연스럽게 이어보자. 그려놓고 나면 변과 곡선이 부드럽게 이어진 듯 보여도, 실은 대부분 그렇지 않다. 자세히 보면 변에서 곡선으로 이어지는 부분이 살짝 꺾여 있거나, 구부러진 정도가 어색하게 연결된 경우가 많을 것이다.
두 변을 완벽에 가까운 곡선으로 연결하기 위한 확실한 방법이 있다. 바로 미분이다. 미분은 곡선에 접하는 기울기 또는 변화율을 뜻한다. 여러 번 미분하면서 연결 지점의 기울기와 구부러진 정도가 연속적으로 변하도록 그리면 어색하지 않은 매끄러운 곡선이 될 수 있다. 구조물을 설계할 때 이 원리가 활용된다. 도로와 철도, 건물 등 곳곳에 자리 잡은 인위적인 곡선이 부드럽게 연결되지 않는다면 도시의 안전은 보장되기 어렵다.
병원에서 CT(컴퓨터단층촬영)를 찍은 경험을 떠올려 보자. 촬영이 시작되면 기계가 환자 주위를 빙그르르 돈다. 여러 방향에서 사진을 찍는 것이다. 찍힌 사진들에는 기계가 내보낸 광선이 특정 방향에서 환자 몸을 투과하며 장기의 유무나 조직의 상태 등에 따라 다르게 계산된 적분 수치가 기록된다. 적분은 나뉜 부분을 합친 면적 또는 누적된 값을 뜻한다. 이들 수치에 다시 수많은 적분 계산을 적용해 평면 아닌 3차원으로 재구성하면 진료실에서 보는 CT 영상이 된다. 병을 조기에 찾아낼 만큼 의료 영상 기술이 발달한 데는 적분의 기여를 빼놓을 수 없다.
이 외에도 세상에 미적분의 손길이 미친 곳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많다. 우주탐사와 인공지능 같은 첨단기술도 미적분 없이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다. 가령 발사체나 탐사선의 속도와 방향을 제어할 때, 인공지능이 데이터를 학습하면서 오류를 최소화할 때 미분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미적분의 이런 진면목을 접할 기회가 별로 없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미적분은 극대·극소점이나 변곡점 구하기, 입체도형 부피 계산하기 같은 문제 풀이가 대부분이다. 학교보다 학원에서 먼저 미적분을 배우며 시험에 나올 문제들을 수없이 풀다 학생들은 그만, 질려버린다.
미적분의 핵심 개념들이 포함된 심화수학이 빠진 대학수학능력시험 개편안을 둘러싸고 찬반이 팽팽하다. 이공계 교수들로선 신입생들에게 대학 수업은 제쳐놓고 기본적인 수학부터 다시 가르치게 생겼으니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심화수학 학습 부담이 사교육 의존으로 이어질 게 뻔하다며 개편안을 반기는 이들을 이해 못 할 바도 아니다.
한편에선 이번에 미적분이 빠졌으니 다음 수능 개편 땐 도로 들어가지 않겠냐는 얘기도 들린다. 정부가 바뀌고 개편안을 만드는 사람들이 바뀌면 일어날 일이란 추측이 그럴듯하다. 미적분이나 기하를 빼든 넣든 사교육을 잡는 데는 별다른 영향이 없을 거란 학부모들 짐작 역시 수긍이 간다. 킬러, 준킬러 문제를 족집게처럼 알려주는 학원들은 정부가 때린 뒤 학부모들 사이에서 몸값이 더 올라가고 있다니 말이다.
미적분을 빼는 것도 넣는 것도 결국 답은 아닐 터다. 궁극적으로 수학을 가르치고 평가하는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줄 세우기 입시가 계속되는 한 수학은 ‘질릴 때까지 문제 푸는 과목’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미적분 킬러 문제는 틀려도 미적분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지 궁금해하는 학생을 학교가 키워낼 수 있길 바란다. 킬러 문제를 풀든 못 풀든 수학에 대한 관심은 잃지 않게 돕는 선생님이 많아지길 바란다. 오래 걸리더라도, 차근차근, 수학 교육을 바꿔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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