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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취업을 준비하는 20대 여성입니다. 고등학교 시절만 하더라도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공부도 열심히 노력한 만큼 성과가 나왔습니다. 별다른 좌절 없는 평탄한 삶이었지만, 대학 입시에서 재수를 하게 됐습니다. 극심한 부담감을 이기지 못해 힘든 날이 이어졌고, 결국 원하지 않는 학교의 원하지 않던 학과에 진학하게 됐습니다. 당시 당장 병원에 입원해도 이상하지 않을 우울증에 걸렸다는 건 몇 년 뒤에 뒤늦게 알았습니다.
입시에서의 좌절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대학 생활도 순탄치 않아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중 우울증이 악화하면서 자살을 시도한 적도 있습니다. 그 길로 공무원 시험 준비는 그만뒀고, 이런저런 자격증을 취득하는 등 다른 길을 찾기로 결심했지만 잘 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30대가 됐습니다. 지금은 '직업상담사'라는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약 2년 전 '도대체 무슨 직업을 가져야 하나' 고민스러웠을 때 직업상담센터에서 상담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나이나 경력, 성별 등에 관계없이 자격증이 있으면 취업이 가능하고, 또 남을 도우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해당 진로를 선택했습니다. 직업상담사가 된다면 '손해사정사' 시험도 준비하려고 계획 중입니다. 대입 재수 생활 이전에는 법조인을 지망하는 등 원래 전문직이 되고 싶었습니다.
집안 환경은 평범하다고 생각합니다. 회사원으로 평생을 사신 아버지는 무뚝뚝한 편이라 어린 시절부터 제게 무관심했습니다. 상처도 많이 받았고 아버지를 미워하던 시기도 있었지만 20대 들어서는 용서하게 됐습니다. 반면 어머니는 저처럼 걱정이 많고 예민한 성격이지만 지극정성으로 키워주셨고, 사랑도 충분히 주셨습니다. 공부뿐 아니라 취미 생활 등 물질적인 부탁을 하더라도 여유가 되는 선에서 흔쾌히 들어주셨습니다. 부모님이든 친구들이든 제 주변인은 저를 믿고 지지해 주는 편입니다.
지금까지의 제 인생이 너무나 한심하다는 생각에 후회가 되고, 괴롭습니다. 재수를 시작한 것도, 우울증에 걸렸던 것뿐 아니라 태어난 것 자체가 후회됩니다. 되돌릴 수도 없기에 되돌아보지 않으려고 하지만, 자꾸 곱씹으면서 매일 남몰래 울고 있습니다.
임영아(가명·31·취업준비생)
영아씨, 사연을 읽으며 당신에게 매일매일이 참 버겁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늘 성실하고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왔건만 무엇 하나 마음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 자신감도 많이 떨어진 것 같습니다. 출발선은 분명 비슷했던 것 같은데, 사회에 자리를 잡아 나가는 주변의 또래와 비교하면 당신이 손에 쥔 결실은 그간 들인 노력에 비해 초라해 보이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대학 입시와 취업 등을 거치면서 비슷한 괴로움과 두려움에 시달리는 당신의 또래가 적지 않다는 사실을 먼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원하는 대학에, 또 회사에 가지 못했다고 해서 인생 전체가 실패한 건 아닙니다. 하지만 영아씨는 이 결과만 놓고 스스로의 인생에 실패라는 평가를 한 듯 여겨집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평가가 오롯이 자신의 기준이었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언뜻 본인이 스스로 세운 기준이었다고 여길 수 있지만, 이는 자라면서 부모님이나 가족, 친구 등 외부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경우가 많습니다. 삶의 기준이나 잣대를 지나치게 높게 형성할 수밖에 없었던 여러 가지 상황들이 있었을 겁니다. 무언가 성과를 내야지만, 관심이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자신도 모르는 두려움이 존재했을지도 모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살면서 좌절은 찾아옵니다. 한 사람이 인식할 수 있는 '첫 좌절'을 겪을 때 아주 힘든 건 이전에 비슷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제아무리 부모님이 사랑을 마음껏 주는 가정에서 자랐다 하더라도 성장 과정에서 소소한 좌절은 겪기 마련입니다. 주변 친구나 친구의 부모님과의 비교 혹은 공부가 아니라 게임이나 취미 등의 영역일 수도 있고요. 이처럼 인생이 자신의 계획대로 이뤄지지 않을 상황을 마주했을 때 찾아오는 좌절을 제대로 다루고, 내면에 귀를 기울여 자신만의 기준을 세워야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못했을 경우 자신이 좌우할 수 없는 실패의 경험에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실패의 경험에 따른 괴로움이 계속되는 것 역시 이 목표가 자기 주도적이지 않고 남에 의한 것이었다는 방증일 수 있습니다.
이런 내면의 힘을 키우려면 물질적인 지원뿐 아니라 당신이 내적으로 힘들고 무언가를 원할 때 곁에서 섬세하게 지지하고 위로해 주는 존재가 필요합니다. 평소 예민하고 걱정이 많은 성격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어린 시절, 무관심했던 아버지와 당신에게 예민한 기질을 물려준 어머니와의 관계에서는 이런 정서적인 만족이 이뤄지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이처럼 마음껏 기댈 수 있는 누군가가 없었기에 당신은 스스로를 파괴하는 상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상상은 말씀하신 대로 자신이 밉고, 또 소중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해서일 수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몸이 아프거나, 건강이 안 좋아진다면 누군가가 보살펴주고 정서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으리라는 내면의 소망이 발현된 결과일 수 있다는 겁니다.
영아씨의 괴로움과 혼란, 불안을 이해하지만 지금은 당장 취업이나 자격증 등 겉으로 보이는 성과에 집중하기보다는 그간 미처 돌아보지 못한 자기 내면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좌절의 경험이 생겼을 때 '괴롭다, '힘들다'는 감정뿐 아니라 자신의 존재감 등 어떤 생각과 감정이 들었는지를 자세하게 인식해 보는 겁니다. 구체적으로 좌절을 어떤 지점에서 느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단순히 좌절했다는 사실에만 집중하면 또 다른 실패가 찾아왔을 때 같은 상황이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입시나 취업 등 경쟁적인 환경이나 우울증 등은 개인의 노력으로 어찌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이런 통제할 수 없는 변수를 그대로 인정해야 합니다. ‘내가 어떻게 했다고 해서 바뀔 결과가 아니었다’라고 인정한 이후에야 새로운 도전도 가능합니다.
진정한 행복은 외부의 조건이 아니라 스스로를 만족스러워하는 데서 옵니다.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자신의 성향과 기질을 고려해 목표를 세웠다면 이를 성취하는 과정에서 소소한 만족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외부로부터 주어진 목표였다면 과정보다는 결과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어쩌면 영아씨는 원하던 대학에, 또 일자리에 합격했더라도 만족을 느끼기보다는 후회했을지도 모릅니다. 좋은 결과를 받았더라도 본인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운이 좋았다"는 식으로 외부로 공을 돌리면서 여전히 불안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에게 관대해지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우울증은 본인에게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높은 기준을 설정하고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과정에서 생기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영아씨 역시 본인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자신을 관대하게 대하기가 쉽지 않은 시대입니다. 늘 어딘가에 쫓기면서 본인의 속도에 맞춰 살아가는 것을 불안하게 여기도록 하는 현실이 이를 쉽지 않게 만듭니다. 하지만 먼저 자신에게 마음을 열지 않고서는 진정한 만족으로 가는 길을 찾기 어려워집니다.
우울증 역시 증상이 생겼을 때 치료를 받는다면 당신이 목표한 바를 이루는 데 마냥 걸림돌로만 존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런 증상을 방치했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우울증을 인식하고 있다면 얼마든지 관리가 가능하고 원하는 삶을 사는 데 지장이 없습니다.
영아씨는 지금 큰 시험 등의 엄청난 성취만이 만족감을 주리라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성취는 사실 근본적인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의 타격이 더 큽니다. 먼저 본인의 취미 영역에서 도전하거나 단기적인 온라인 강좌를 수료하며 소소한 성취감을 채우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작은 일에 만족하고 그곳에 머물라는 의미가 아니라 이런 단계부터 시작해서 목표를 차차 넓히는 단계를 밟아야 합니다.
오늘날 치열한 경쟁 사회를 사는 이 시대의 많은 청년들처럼 영아씨도 인생의 큰 위기를 경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위기는 진정한 나 자신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음을 꼭 강조드리고 싶습니다. 진짜 자기 마음과 가까워지며 하나하나 만족감을 늘려 가며 진정으로 원하는 삶의 모습을 스스로 그려가는 영아씨가 되기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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