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유업 '홍씨 일가 경영' 60년 만에 막 내린다

입력
2024.01.04 12:03
수정
2024.01.04 12:04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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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원식 회장, 사모펀드와 소송서 최종 패소
'불가리스가 코로나에 효과' 과장광고서 시작
한앤코에 주식 매각→번복→소송전으로 번져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2021년 5월 서울 강남구 남양유업 본사에서 대국민 사과를 하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2021년 5월 서울 강남구 남양유업 본사에서 대국민 사과를 하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60년 전통의 기업 남양유업의 경영권(지분 52.63%)을 두고 벌인 홍원식 회장과 사모펀드 간 법적 분쟁이 사모펀드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1964년 홍두영 창업주(홍 회장 부친)가 세운 국내 대표 유제품 기업인 남양유업은 결국 홍씨 일가의 손을 떠나 사모펀드 운용사 한앤컴퍼니(한앤코)로 넘어갔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한앤코가 홍 회장과 그 가족들을 상대로 낸 주식 양도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4일 확정했다.

홍 회장과 한앤코의 지분 갈등은 2021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서 시작됐다. 당시 남양유업은 '요구르트 불가리스에 코로나19 억제 효과가 있다'는 발표를 내놓았는데, 이것이 허위과장 광고 논란을 일으키며 식품의약품안전처 조사로 이어지는 등 큰 파문으로 번졌다. 그러자 그해 5월 홍 회장은 허위 발표에 책임 지고 사임하겠다며 사과를 했고, 자신과 일가가 보유한 남양유업 지분 52.63%를 주당 82만 원에 넘기는 계약을 한앤코와 체결했다.

그러나 홍 회장 측은 4개월 뒤 돌연 계약 해제를 통보했다. 한앤코가 홍 회장 일가에게 임원진급 예우를 보장하기로 한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주식매매계약서 작성 당시 김앤장 법률사무소가 홍 회장과 한앤코 양쪽 모두에게 법률자문을 한 점(쌍방자문)을 문제 삼아 "민법과 변호사법에 따라 계약 자체가 무효"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결국 이 분쟁은 소송으로 갔고, 하급심은 한앤코 손을 들어줬다. 계약서상 가족들의 처우를 확약한 규정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쌍방자문을 맡은 변호사들 또한 홍 회장 일가의 지시를 받아 계약서를 수정∙전달하는 단순 보조 업무만 했을 뿐, 의사결정 권한을 가진 적극적인 '법률 대리 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쌍방 수임을 금지하는 민법과 변호사법에 위배되지 않다고 본 것이다.

이번에 대법원도 같은 결론을 내렸다. 다만 홍 회장 측에 선임된 변호사들이 '심부름꾼'에 불과했다는 원심의 논리는 잘못됐다고 짚었다. 대리인인지 여부는 역할 수행에 필요한 전문적 지식과 지급 보수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 판단해야 하고, 계약에 대한 자문 역시 변호사의 쌍방 수임이 제한되는 '법률 사건'이 맞다고 본 것이다.

그럼에도 대법원이 계약의 효력을 인정한 건 '예외조항' 때문이었다. 변호사법은 위임인 본인의 동의를 받은 쌍방수임은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김앤장이 한앤코 측에 자문을 해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홍 회장이 당시엔 이를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갔으므로 해당 계약 역시 적법하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민법상 대리(代理)와 사자(使者·명령이나 부탁을 받고 심부름하는 사람) 구별 기준에 관한 법리를 처음으로 밝히고, 하나의 변호사로 취급되는 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들이 각자 양쪽으로부터 법률 사건을 수임한 경우에도 쌍방대리에 해당한다는 점을 최초로 판시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최다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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