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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생활에, 독박육아에 찌든 자매의 도파민 부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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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화면으로 보는 만화가 일상인 세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가락 사이로 책장을 끼워가며 읽는 만화책만의 매력을 잃을 수 없지요. 웹툰 '술꾼도시처녀들', 오리지널 출판만화 '거짓말들'의 만화가 미깡이 한국일보를 통해 감동과 위로를 전하는 만화책을 소개합니다.
새해 첫날 서점에 갔다. 서가 사이를 거닐며 책등을 훑어보는 시간은 늘 설레고 가슴 벅차다. 아직 읽지 않은, 읽고 싶은, 읽어야 할 재미있고 훌륭한 책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을 새삼 체감할 수 있어서다. 올해는 어떤 좋은 책을 만나게 될까. 독서 애호가에게 서점과 도서관의 커다란 책장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도파민 부스터다.
그다음 흥미진진한 건 남의 집 책장이다. 처음 초대받아 들어간 집, 나도 모르게 책장 앞에 한참을 서 있게 된다. 책장 주인의 책 취향은 어떤지, 나랑 어느 정도나 겹치고 다를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다. 우리 집에 온 손님이 내 책장을 구석구석 탐색하면 긴장이 되고 발가벗은 기분이 드는 건 내 책들이 너무나도 나 자신이기 때문인데, 그걸 알면서도 남의 책장 탐색을 멈추지 못하겠다. 하지만 뭐, 그도 우리 집에 오면 똑같이 굴 테니 피차일반이겠지.
우주·미주 자매가 함께 채운 ‘자매의 책장’에도 두 사람의 지난 날이 빼곡하게 꽂혀 있다. 자매에게 책은 힘든 현실을 잊게 해주는 피난처였다. 어렸을 때 아버지를 피해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던 게 시작이었고, 그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3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일도 많고 말도 많은 공무원 생활에 찌든 우주는 힘들 때마다 서점에 가서 책을 펼치고, 독박육아와 가사에 지친 미주도 어떻게든 짬을 내어 책을 읽는다.
자매의 책장은 너무나도 우주고 또 미주여서, 어떨 때 무슨 책을 꺼내야 할지를 아주 잘 안다. 늙고 아픈 엄마를 가만히 보다 ‘올리브 키터리지’(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장편소설)를 꺼내는 언니. 공무원 시험에 떨어진 언니에게 “별거 아니지만 도움이 되길” 바라며 선물한 ‘대성당’(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소설집)은 날이 쌀쌀해지면 생각나는 책이다. 동생이 “뭔가 안 풀릴 때”마다 ‘먼 북소리’(무라카미 하루키의 산문집)를 읽는 걸 기억하는 언니는 동생의 요즘 안부가 궁금하다. 처음엔 피난처였던 책은 책장이 차는 동안 즐거움이자 위안이자 선물이면서 가족을 이해하는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사계절이 지나는 사이 드라마틱한 사건이라곤 없다. 앞으로도 비슷할 것이다. 엄마의 병세는 나빠질 테고 우주와 미주의 하루하루는 대체로 고단할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이해할 수 없던 아버지는 끝내 빈칸으로 남을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자매는 계속해서 서로에게 책을 빌려주고, 권하고, 읽고, 책갈피에 선물을 끼워 보내고, 가끔 만나 달콤한 디저트를 나눠 먹으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 줄 거니까. 작품이 끝날 때쯤 ‘작은 우주’가 쓰러진 트리를 일으켜서 불을 밝히는 장면, 그 아래 누운 책이 앨리스 먼로의 단편소설집 ‘디어 라이프’인 게 참 좋았다.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우리들 삶에 불을 밝혀주는 것 같아서.
다시, 올해는 어떤 책을 만나게 될까? 우리 이 자매들처럼 좋은 책 서로 권하고 선물하고 함께 읽으며 마음을 나누기로 해요. 2024년의 첫 책으로는 류승희 작가의 잔잔하고 따뜻한 만화 ‘자매의 책장’,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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