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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만에 약속 어긴 태영건설, 채권단 신뢰 얻을 수 있나

입력
2024.01.02 18:0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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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환 약속한 상거래채권 일부 이행 안 해
채권자 수 많고 이해관계 복잡, 75% 동의 난망
태영 자구 노력에 의문...금융당국 "이래선 안 돼"

2일 서울 여의도 태영건설 본사의 모습. 뉴스1

2일 서울 여의도 태영건설 본사의 모습. 뉴스1


태영건설이 기업 재무구조 개선작업(워크아웃) 신청 당시 정부에 제시했던 이행 사항을 하루 만에 지키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면서 회생 의지와 관련한 신뢰에 금이 가고 있다. 태영건설은 400곳이 넘는 채권자의 75%의 동의를 얻어야 상환 유예 등 워크아웃에 돌입할 수 있는 형편이다. 채무자와 채권단 사이 원만한 조율을 통해 태영건설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문제를 연착륙시키려 했던 금융당국의 상황도 난감해졌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태영건설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태영건설의 경영 상황, 자구 계획, 협의회의 안건 등을 듣기 위한 채권자 설명회를 3일 오후 개최한다. 이를 바탕으로 11일 금융채권자 협의회에서 최종적으로 워크아웃 여부가 결정된다.

이해관계 다른 채권자 75% 동의 얻어야 하는 태영

태영건설 워크아웃 절차

태영건설 워크아웃 절차


금융권에서는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개시 여부가 험난할 것으로 내다봤다. 워크아웃을 신청한 기업의 경우 대개 채권자 수가 20~30곳에 그치는 수준이지만, 태영건설은 채권자 수가 400여 곳에 달하고 채권자끼리 이해관계가 매우 복잡하기 때문이다. 기업구조조정촉진법에 따르면 채권자 4분의 3 이상(채권액 기준)이 동의해야 채권단 공동 관리 및 빚 상환 유예 등의 조치가 가능하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태영건설의 PF 대출 건은 사업장이 워낙 다양해 채권자도 많고 이해관계가 서로 다르다"며 "사업성이 나쁘지 않아 이미 분양이 된 사업장도 있는 반면 아직 시작도 못 한 사업장이 있는 만큼 모든 채권자를 하나의 방향으로 중재하는 것 자체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와중에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통해 금융 채무를 동결하는 대신 상거래채권은 상환하겠다는 계획을 이행하지 않으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태영건설은 지난달 29일 만기가 도래한 1,485억 원 규모의 상거래채권 중 외상매출채권 담보대출(외담대) 451억 원을 아직 상환하지 않았다. 원청업체(태영건설)가 구매 대금을 현금 대신 외상매출채권으로 지급하면, 납품업체(채권자)가 이를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을 통해 돈을 받는 구조인데, 일부 은행에서는 납품업체에 태영건설 대신 빚을 갚으라는 소구권(상환청구권)을 행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태영건설 관계자는 "협력사가 이미 할인을 받은 외담대는 우리가 은행에 갚아야 할 금융 채권으로 바뀐다"며 "기촉법에 따라 워크아웃이 통지된 시점부터 금융 채권은 유예되기 때문에 지급을 못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적 문제 없다'지만 책임감 부족하다는 비판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2023년 12월 2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태영건설 워크아웃 신청 관련 대응방안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제공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2023년 12월 2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태영건설 워크아웃 신청 관련 대응방안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제공


금융당국은 태영건설의 조치가 부적절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워크아웃을 신청한다는 것은 협력사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는 것인 만큼, 워크아웃 협약 채권이어서 안 갚아도 된다고 단순히 주장해선 안 된다"며 "기촉법에 기대 '나는 모른다' 할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금융위는 주요 은행들에 소구권 유예를 당부한 상태다.

금융권에서는 태영건설이 채권단을 설득할 진정성 있는 자구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미 '국민 혈세가 투자에 실패한 건설사와 금융사를 지원하는 데 쓰인다'는 비판도 만만찮다. 태영건설이 채권단으로부터 동의 요건을 채우지 못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로 넘어갈 경우 이로 인한 경제·금융계의 파장이 상당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금융당국의 고심도 깊어지는 상황이다.

박세라 신영증권 연구원은 "전반적으로 채권자와 사업장 수가 많아 신규 자금 수혈과 같은 자구 노력 없이는 회생 가능성이 불투명하다"며 "현재 주채권단은 워크아웃 개시를 전제로 대주주의 강도 높은 고통 분담을 요구하고 있는 만큼 채권협의단 협상까지 난항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안하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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