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어떤 양형 이유> <법정의 얼굴들>의 저자인 박주영 판사가 세상이란 법정의 경위가 되어 숨죽인 채 엎드린 진실과 정의를 향해 외친다. 일동 기립(All rise)!
연말법정에 참석한 국선변호인
형사재판 책임, 크게 늘었지만
턱없이 낮은 보수 현실화해야
2023년 12월 31일 아침, 구속영장이 두 건 들어왔다는 문자가 왔다. 심문시간은 오후 2시. 운이 없게도 휴일 당직이 연말에 걸렸다. 연휴 출근도 기분 좋은 일은 아니지만, 그보다 이런 날 사람을 가둘지를 결정해야 한다는 사실에 기분이 가라앉았다.
그런데 '이런 날'은 대체 어떤 날인가? 지긋지긋한 한 해를 보내고 또다시 뻔한 희망을 떠올려야만 하는 날? 세상의 종말이 1년 더 가까워진 날? 복잡한 머리로 법정에 들어선다. 경찰이 피의자의 수갑을 풀려 하지만, 이날따라 잘 풀리지 않는다. 철커덕철커덕,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새들도 모두 집으로 가 버리는 이런 날, 영장 재판을 위해 여러 사람이 모였다. 그들 중에 나도 포함된다는 사실이 약간의 위안을 준다. 심문이 끝나고 국선변호인과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덕담을 나누고 일어섰다. 2023년 마지막 재판이 이렇게 끝났다.
형사재판에 관여하는 사람 중 검사나 피고인, 피해자와 조금 다른 의미에서 애틋한 이가 있다. 바로 국선변호인이다. 늘 그 역할에 맞는 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기분이 들어서다. 사실 전면적인 국·공선변호제도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지 않다. 1961년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자동판매기의 동전을 턴 혐의로 기소된 클라렌스 얼 기드온(Clarence Earl Gideon)은 자신을 변호해 줄 변호사를 선임해 줄 것을 법원에 요구했으나, 거부당하고 5년 형을 선고받는다. 기드온은 사건을 재심리해 달라는 탄원서를 연방대법원에 제출했다. 교도소에서 풍월로 익힌 법지식이 연방대법원 문턱을 넘을 확률은 제로에 가까웠으나 기적이 일어났다. '자력 없는 피고인에게 반드시 법률 고문을 제공해야 한다'는 기드온 판결을 계기로 세계적으로 국·공선변호제도가 자리를 잡았다.
국선변호제도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일정한 급여를 지급하고 배당된 사건을 처리하게 하는 공공변호인(public defender) 제도와, 국선변호인 선정명부를 만들어 두고 사건마다 변호인을 배당하는 법원선임변호인(court appointed counsel) 제도가 그것이다. 우리는 일반국선변호인(법원 관할구역 내 사무소를 둔 변호사 중 법원이 신청을 받아 명부에 등재)과 국선전담변호사(다른 사건은 수임하지 않고 국선변호사건만 전담, 현재 전국 228명) 위주로 운용되는 변형된 법원선임변호인제도를 취하고 있다. 국선변호인 선정 건수는 2016년 이후 매년 약 12만 건 내외를 유지하고 있는데, 심급별로는 1심 7만8,000건, 항소심 3만1,000건, 상고심 1만 건 정도다. 2021년 제1심 형사 공판사건 피고인 중 약 34%에 국선변호인이 선정되었다고 하니 상당한 비중이다.
우리 국선변호제도는 도입 이래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점도 많다. 수사단계에서 변호인 조력권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 점, 제도의 모든 운영을 법원이 담당함에 따른 변론의 독립성 침해 문제, 보수의 비현실성(일반국선변호인의 기본 보수는 2022년 45만 원, 2023년 50만 원, 2024년 55만 원, 국선전담변호사는 세전 월 600만 원, 1회 재위촉되면 월 700만 원, 2회 재위촉되면 월 800만 원으로 인상되나, 일체 비용은 자부담)이 대표적이다. 그중에서도 보수 문제가 심각하다. 인생의 외줄에서 휘청대는 사람들의 처지와 깊은 고통을 대변하는 일에 대한 보상으로는 부족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법정을 나서는 순간, 어디선가 형사 법정의 음지에서 분투하는 국선변호인을 위한 기드온의 힘찬 나팔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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