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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산 다른 이름'…새해 벽두 산꼭대기서 맞불 집회

입력
2024.01.03 04:3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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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군 '불갑산'·함평군 '모악산' 주장
1일 각각 해맞이 행사·등반대회 맞불
충북서도 충주댐 인공호수 명칭 논란

1일 오전 9시 불갑산(모악산) 연실봉에 오른 전남 영광군 지역민들이 해맞이 행사를 치르고 있다. 독자 제공

1일 오전 9시 불갑산(모악산) 연실봉에 오른 전남 영광군 지역민들이 해맞이 행사를 치르고 있다. 독자 제공

지난 1일 전남 영광군 불갑면. 오전 6시 30분쯤 주민 500명이 불갑산 연실봉 정상에 올라 2024년 불갑산 해맞이 행사를 개최했다. 불갑산 해맞이 행사는 지난 2017년 이후 명맥이 끊겼지만, 수년 만에 다시 재개된 것이다.

같은 날 오전 10시. 이번엔 함평군 주민 500여 명이 모악산 연실봉 정상까지 오르는 '모악산 등반대회'를 열었다. 이들이 각각 '불갑산 해맞이 행사', '모악산 등반대회'를 치른 곳은 같은 장소다. 그러나 최근 산 명칭을 둘러싼 두 지자체 간 갈등이 1월 1일 새해 첫날 산 정상에서 벌어진 '맞불 집회'로까지 이어졌다.

전남 영광군 불갑면과 전남 함평군 해보면 사이에 위치한 산은 같은 산이지만 영광에선 '불갑산', 함평에선 '모악산'이라 부른다.

불갑산

불갑산

함평지역 주민들은 "불갑산의 원래 명칭은 모악산"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5월 불갑사 출입도로에 '불갑산 도립공원'이라는 표지석을 세운 것에 대해 "모악산 지우기"라며 분개하고 있다. 함평군은 그해 6월 전남도에 불갑산 도립공원의 산 이름을 옛 명칭인 '모악산'으로 정정해 달라며 지명위원회 개최를 요청했다.

함평이 지역구인 모정환 도의원은 "1530년 발간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모악산이라는 이름만 나와 있고, 1861년에 만들어진 대동여지도에도 모악산이라고 돼 있다"며 "불갑산이란 명칭은 일제 잔재"라고 주장했다. 이어 "2003년 영광군에 의해 국토지리정보원에 불갑산이라는 명칭이 등재됐고, 이후 2019년 불갑산 도립공원으로 명명했다"며 "통칭 불갑산 최고봉의 위치가 함평군 해보면 금계리에 있는 만큼 모악산으로 변경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영광지역 주민들은 "모악산은 다른 곳"이라고 반박한다. 이들은 지난해 10월 함평 주민들이 연실봉 정상에 '모악산 표지석'을 세운 것에 대해 '기습 설치'라며 분통을 터트린다. 함평지역의 한 사회단체는 헬기를 동원해 1.5톤 중량의 '모악산'이라고 적힌 표지석을 연실봉(516m)까지 운반한 뒤 설치했다.

영광이 지역구인 박원종 의원은 "불갑산이란 명칭은 고려시대 각진국사 비문에 처음 등장했으며 되레 모악산이라는 지명이 조선 중기에야 나타났다"고 반박했다. 이어 "1959년 작성된 대한민국 최초 전국 지명조사철에 불갑산의 경도와 위도 좌표가 현재 불갑산 위치와 일치하고, 모악산의 경도와 위도는 다른 곳"이라며 "'모악산 도립공원'이라는 명칭도 지난 1971년부터 전북 김제에서 쓰고 있어 변경이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영광군과 함평군이 산 이름을 두고 갈등을 빚는 데는 지역 축제 주도권을 둘러싼 신경전이 배경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직선거리로 2㎞ 떨어진 두 지자체는 각각 지역 대표 축제로 '영광 불갑산 상사화 축제', '함평 모악산 꽃무릇 축제'를 홍보해왔다. 그러나 상사화와 꽃무릇은 같은 꽃을 다르게 부르는 명칭이어서 두 지자체가 사실상 같은 주제, 같은 장소로 대표 축제를 육성하고 있는 실정이다. 산 이름이 무엇이냐에 따라 축제의 정통성도 달라지게 된다.

두 지자체 간 갈등 해결을 위해선 전남도가 지명위원회를 개최, 공식 명칭을 확정해야 한다. 다만 어느 쪽 지명을 택하든 극심한 반발이 불가피한 상황이어서 실질적으로 지명위원회를 개최할지 는 미지수다.

충북 역시 충주댐 건립으로 만들어진 인공호수의 경우 인접한 충북 충주시, 제천시, 단양군이 부르는 명칭이 제각각이지만 40여 년째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충주에선 충주호지만 제천에서는 ‘청풍호’로 불린다. 상류에 수중보를 건설한 단양군은 보 주변에 생태탐방로와 수상레포츠공원 등을 조성해 ‘단양호’로 부르고 있다. 3개 지자체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는 상황이다. 2018년 이후 명칭 변경을 위한 각 지자체의 움직임은 잠잠한 상황이지만 갈등은 언제든 다시 불거질 수 있다.



김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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