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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현 검사의 어깨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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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지난해 말, 서지현 전 검사가 소셜미디어에 “저는 여기까지였지만 이후에 올 여성들은, 다음 세대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리라 믿습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자신을 성추행한 안태근 전 검사장과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최종 패소가 확정된 데 대한 소감이었다. 피해는 인정됐으나, 소멸시효 완성 등이 패소 이유였다.
□ 고 이예람 공군 중사 사건에서 알 수 있듯, 피해자를 최종적으로 죽이는 건 성범죄 자체보다 조직의 가해자 비호와 피해자 탄압이다. 사과 한마디 받지 못하고 좌천성 인사를 당했던 서 전 검사가 겪어온 세월도 다르지 않다. 상관을 상대로 형사·민사 소송 제기는 꿈도 꿀 수 없었고, 시간은 가해자 편이었다. 그가 성추행을 당한 시점은 2010년, 언론 폭로는 2018년이었다. 그의 폭로는 한국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의 도화선이 됐지만, 안 전 검사장의 성추행 혐의는 공소시효가 지나 기소되지 못했고 민사소송에서도 책임을 면했다.
□ 서 전 검사는 파견 형식으로 법무부 디지털성범죄대응TF 팀장 등을 맡아 여러 제도 개선도 이끌었다. 피해자들이 한 번 신청으로 법무부 지원제도를 모두 받을 수 있게 하고, 군 성범죄 피해자도 법무부 조력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 등이다. 하지만 정권이 바뀐 후 업무 마무리도 없이 원청 복귀를 지시받았고 결국 사직했다. 그는 “헤아릴 수 없이 찢겨지고 무너졌다”면서도 “그저 최선을 다한 거라고 도닥여본다”고 했다.
□ 한 연구 결과(김청아 캐나다 요크대 연구원)에 따르면, 서 전 검사의 ‘미투’ 폭로(2018년 1월 29일) 이후 성폭력 피해자들의 우울감이 큰 폭으로 낮아졌다. 피해자를 탓하는 문화가 줄고 가해자가 합당한 처벌과 비난을 받아야 한다는 인식도 커졌다. 뉴턴이 인용했던 서양의 격언, “내가 더 멀리 보았다면 이는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었기 때문이다”라는 말은 ‘지식’뿐 아니라, ‘용기’에도 적용된다. 그의 ‘미투’는 6년 만에 법적 책임을 묻지 못하고 마무리됐지만, ‘서지현의 어깨 위에 올라’ 싸울 수 있는 힘을 얻게 된 이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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