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전면에 나선 80년대생 오너 3, 4세들 2024년에 진검승부 벌어진다

입력
2024.01.02 04:30
수정
2024.01.02 08:26
15면
구독

①해양서 맞붙는 김동관 한화 부회장, 정기선 HD현대 부회장
②전통 화학 기업 코오롱 이규호 부회장, 삼양사 김건호 사장
경영 능력 검증 없는 승계에 대한 비판도 커


경영 전면에 나선 80년대생 오너가 3,4세 주요 경력. 그래픽=박구원 기자

경영 전면에 나선 80년대생 오너가 3,4세 주요 경력. 그래픽=박구원 기자


2024년 푸른 용의 해에는 1980년대 태어난 오너가 3, 4세 최고경영자(CEO)들의 움직임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할 것으로 보인다. 2022, 2023년에 걸쳐 CEO 자리에 오르며 그룹의 미래 먹거리를 찾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이들이 각자 어떻게 실현해 나갈지 재계가 주목하고 있다.

이병철, 정주영, 구인회 등 1세대 기업가들이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끌며 주춧돌을 놓고 2, 3세대 들이 기업을 양적으로 키웠다면 30대 후반~40대 초반인 이들은 인공지능(AI) 시대에 알맞게 탈바꿈하며 내실을 다져야 하는 시험대 위에 섰다. 능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채 자리만 지키려 한다면 세습 강화라는 거센 비판을 맞닥뜨려야 한다.



해양에서 맞붙게 된 80년대생 첫째 아들들

김동관(왼쪽) 한화그룹 부회장, 정기선 HD현대그룹 부회장. 각사 제공

김동관(왼쪽) 한화그룹 부회장, 정기선 HD현대그룹 부회장. 각사 제공


가장 활발히 움직이는 건 ①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과 ②정기선 HD현대그룹 부회장이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큰아들 김 부회장은 1983년생으로 한화의 핵심 사업군을 책임지며 그룹의 실질적 후계자 역할을 하고 있다.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인 정 부회장은 1982년생으로 지난해 11월 부회장에 오르며 차세대 주자로 한 걸음 더 다가섰다.

특히 재계 인사 중 절친으로 알려진 두 사람은 올해 바다 관련 사업 부문에서 뜨겁게 경쟁할 것으로 보인다. 김 부회장은 항공엔진과 장갑차 등을 만드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중심으로 방산 사업 구조 개편을 이끌었는데 한화가 지난해 대우조선해양(한화오션)을 인수하면서 조선업에 본격 진출했다. 현대중공업은 오랫동안 조선업계 1위를 지켜왔다.

김 부회장은 방산을 중심으로 경영 능력을 펼쳐 보이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2023년 3분기 연결 기준 실적이 매출 1조9,815억 원, 영업이익 1,043억 원으로 1년 전과 비교해 각각 31%, 65% 증가했다. 한화오션도 인수 후 첫 실적 발표에서 2020년 4분기 이후 12분기 만에 흑자를 찍었다. 대신 그가 오랫동안 공 들인 태양광 관련 사업은 실적이 주춤거려 이를 되살리는 게 그의 과제다.

정 부회장은 HD현대 경영지원실장, HD현대마린솔루션 대표, 한국조선해양 대표 등을 지내며 그룹 사업 전반을 파악했다. 그사이 HD현대의 실적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특히 HD한국조선해양은 3분기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7.5%(5조112억 원) 증가했고 영업이익도 690억 원으로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다만 전통 제조업에서 벗어나 인공지능(AI), 로봇 등 미래 성장 전략을 발굴해야 할 임무가 정 부회장 앞에 놓였다.



전통의 화학기업 맡은 80년대생 CEO, 경영능력 입증 과제

이규호(왼쪽) 코오롱그룹 부회장, 김건호 삼양그룹 사장. 각사 제공

이규호(왼쪽) 코오롱그룹 부회장, 김건호 삼양그룹 사장. 각사 제공


코오롱그룹은 지난해 12월 ③이규호 ㈜코오롱 전략부문 대표이사 부회장을 임명했다. 1984년에 태어난 이 부회장은 이웅열 코오롱 명예회장의 장남이자 코오롱가(家) 4세로 사장으로 승진한 지 1년 만에 부회장에 올랐다. 화학·식품 기업 삼양사를 중심으로 한 삼양그룹도 지난해 12월 김윤 회장의 장남이자 오너 4세인 1983년생 김건호씨를 삼양홀딩스 사장에 앉히며 그룹의 성장 전략과 재무를 책임지게 했다.

그런 두 사람 모두 올해는 대외적으로 경영 능력을 스스로 보여줘야 하는 상황이다. 이 부회장은 차기 경영권 승계 대상으로 꼽히지만 그룹 계열사 지분을 갖고 있지 않다. 이 명예회장은 승계와 관련해 "능력이 있다고 판단돼야 지분 승계가 가능할 것"이라고 해왔다. 이 부회장은 2019년 코오롱인더스트리 패션 부문과 스타트업 자회사(리베토 대표) 등을 맡았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삼양그룹 김 사장도 2021년 말 처음 그룹 계열사 휴비스 사장 자리에 올랐는데 이 회사는 이후 실적이 하락했고 지난해 3분기에도 124억 원의 영업 손실을 봤다.



경영 능력 검증 없는 3, 4세대 승계는 봉건 세습

한화그룹, HD현대그룹, 삼양그룹, 코오롱그룹 각사 로고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각사 제공

한화그룹, HD현대그룹, 삼양그룹, 코오롱그룹 각사 로고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각사 제공


해당 기업들은 30·40대 경영자를 내세우는 것이 미래 사업을 위한 세대교체라고 하지만 능력 검증 없이 오너 일가 3, 4세대까지 기업을 승계하는 것을 '세습 강화'라 비판하는 목소리도 크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2020년 '4세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 회장은 23세 아들과 19세 딸을 두고 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경영 능력을 알아서 물려받는 것도 아닌데 재벌가라고 기업을 세습하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면 좋은 인재가 기업 경영에 도전하지 않으려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기업은 기술·경영 혁신을 통해 사회를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며 "능력을 보여주지도 못한 재벌 3, 4세가 경영권을 쥐고 혹시나 불공정 경영, 노동 착취 등으로 이어진다면 이는 해당 기업도 사회 전체도 갉어먹고 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희경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