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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의 뒤늦은 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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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오는 4월 제22대 총선 때 투표지를 사람이 한 장씩 손으로 확인하는 수(手)검표 절차를 도입한다. 1차로 전자개표기에서 개표한 후 사무원이 육안으로 다시 확인한 뒤 심사계수기로 재확인하는 것이다. 자동화된 지금의 투·개표시스템에 수개표 시대로 회귀하는 건 선관위 스스로 반성할 일이다. 사전투표함 보관 장소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를 통해 촬영한 영상도 24시간 국민에게 공개하기로 했다. 지난주 발표한 ‘총선 신뢰성 개선방안’의 내용들이다.
□ 그동안 심사계수기에서 투표용지가 한 장씩 떨어지는 속도가 빨라 제대로 분류됐는지 정확한 참관이 어렵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수검표가 추가됨으로써 선거사무원 인력충원이 필요해졌다. 유권자에게 전해질 선거결과 발표도 늦어질 수 있다. 사전 투표용지에 투표관리인 직인을 기존 인쇄방식이 아닌 직접 날인하는 아이디어까지 검토됐지만 업무량을 고려해 접었다고 한다. 모든 건 선관위의 존재 이유인 공정성을 국민이 믿지 못하는 게 원인이다.
□ 2022년 3월 대선 사전투표 당시 벌어진 ‘소쿠리 투표’가 국민 뇌리 속에 각인된 게 결정적이다. 코로나19 환자·격리 유권자들이 기표한 투표용지를 소쿠리와 라면 박스, 비닐 쇼핑백 등에 모아서 옮기는 장면이 목격된 것이다. 후진국에서나 있을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우리도 권위주의 정권 시절 기가 막힌 풍경이 예사롭게 벌어졌다. 개표작업 중 정전이 발생하질 않나, 죽은 사람이 유권자 명부에 살아 있고, 투표를 두 번 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가 거듭나야 할 절박한 지경이다. 2020년 21대 총선 때 일부 보수단체가 투·개표 조작 의혹을 제기한 뒤 음모론은 때만 되면 등장한다. 선관위가 자초한 일이다. 노태악 선관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선거는 민주주의 꽃”이라며 “정정당당히 경쟁하고, 결과에 승복하는 모습”을 강조했다. 직원들 자녀 특혜 채용 문제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점을 의식한 듯 “지난 한 해 뼈아픈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고도 했다. 선관위에 대한 ‘심판론’이 불거지지 않도록 4월 투·개표 과업에 기관의 명운을 걸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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