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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의 뒤늦은 각성

입력
2024.01.01 17:4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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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노태악(맨 왼쪽)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 지난해 11월 3일 경기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열린 제22대 국회의원선거의 완벽한 관리를 위한 시·도 위원장 회의에서 시·도 위원장들과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뉴시스

노태악(맨 왼쪽)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 지난해 11월 3일 경기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열린 제22대 국회의원선거의 완벽한 관리를 위한 시·도 위원장 회의에서 시·도 위원장들과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뉴시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오는 4월 제22대 총선 때 투표지를 사람이 한 장씩 손으로 확인하는 수(手)검표 절차를 도입한다. 1차로 전자개표기에서 개표한 후 사무원이 육안으로 다시 확인한 뒤 심사계수기로 재확인하는 것이다. 자동화된 지금의 투·개표시스템에 수개표 시대로 회귀하는 건 선관위 스스로 반성할 일이다. 사전투표함 보관 장소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를 통해 촬영한 영상도 24시간 국민에게 공개하기로 했다. 지난주 발표한 ‘총선 신뢰성 개선방안’의 내용들이다.

□ 그동안 심사계수기에서 투표용지가 한 장씩 떨어지는 속도가 빨라 제대로 분류됐는지 정확한 참관이 어렵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수검표가 추가됨으로써 선거사무원 인력충원이 필요해졌다. 유권자에게 전해질 선거결과 발표도 늦어질 수 있다. 사전 투표용지에 투표관리인 직인을 기존 인쇄방식이 아닌 직접 날인하는 아이디어까지 검토됐지만 업무량을 고려해 접었다고 한다. 모든 건 선관위의 존재 이유인 공정성을 국민이 믿지 못하는 게 원인이다.

□ 2022년 3월 대선 사전투표 당시 벌어진 ‘소쿠리 투표’가 국민 뇌리 속에 각인된 게 결정적이다. 코로나19 환자·격리 유권자들이 기표한 투표용지를 소쿠리와 라면 박스, 비닐 쇼핑백 등에 모아서 옮기는 장면이 목격된 것이다. 후진국에서나 있을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우리도 권위주의 정권 시절 기가 막힌 풍경이 예사롭게 벌어졌다. 개표작업 중 정전이 발생하질 않나, 죽은 사람이 유권자 명부에 살아 있고, 투표를 두 번 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가 거듭나야 할 절박한 지경이다. 2020년 21대 총선 때 일부 보수단체가 투·개표 조작 의혹을 제기한 뒤 음모론은 때만 되면 등장한다. 선관위가 자초한 일이다. 노태악 선관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선거는 민주주의 꽃”이라며 “정정당당히 경쟁하고, 결과에 승복하는 모습”을 강조했다. 직원들 자녀 특혜 채용 문제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점을 의식한 듯 “지난 한 해 뼈아픈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고도 했다. 선관위에 대한 ‘심판론’이 불거지지 않도록 4월 투·개표 과업에 기관의 명운을 걸기 바란다.

박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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