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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매로 1상자 17만원 '금'사과… "팔 수 있는 사과가 없다" 농가 시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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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과 값이 금값이라며 돈방석에 앉지 않았냐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남의 속도 모르는 소리예요. 아무리 비싸면 뭐 합니까, 팔 사과가 없는데. 백 명에 한 명 정도 돈 번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보다 올해도 작년 냉해 여파로 농사를 망칠까 두렵습니다.”
경북 문경에서 20여 년간 사과농사를 지어온 이모(58)씨는 최근 한국일보와 전화통화에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사과농사를 망치지 않을까 걱정하며 한숨지었다.
지난해 추석부터 사과 값이 역대급으로 치솟은 가운데 경북 청송 영주 안동 문경, 전북 진안, 경남 거창 등 사과 주산지에서는 올해도 작황이 부진하지 않을까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과는 6, 7월쯤 새순에서 꽃눈이 형성돼 2년차에 피어 열매가 맺히는데, 지난해 웃자란 나무가 많기 때문이다.
경북도 등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사과 냉해피해 면적은 1만8,807㏊로 전체 재배면적(3만3,789㏊)의 56%에 이른다. 특히 재배면적 2만46㏊로 전국 최대(59.3%) 주산지인 경북은 69%인 1만3,850㏊가 냉해 피해를 봤다. 사과 주산지는 일교차가 큰 산지가 많지만 지난해는 유독 극심했다. 경북 북부지역 3월 평균기온은 청송 7.7도, 영주 8.7도, 안동 9.7도로 평년보다 2.5~3.7도나 높다가 개화기인 4월 말 갑자기 영하로 떨어져 냉해 피해가 컸다. 여기에다 7월 말 극한호우 등 수해 5,530㏊, 태풍 카눈 1,200㏊ 등이 이어졌다. 또한 긴 장마로 탄저명 등 병충해까지 겹쳤다. 지난해 국내 사과농사에 '퍼펙트 스톰'이 몰아친 셈이다.
지난해의 냉해는 올해 농사에도 직격탄이 된다. 그 이유는 이렇다. 냉해로 사과 꽃봉오리나 막 핀 꽃이 얼어붙어 착과량(열매수량)이 예년보다 크게 줄었다. 영양분이 예년과 같다면 양분을 보낼 열매가 적어 가지가 무성하게 된다.
청송농업기술원 서경수 과수기술팀장은 “이듬해 열매가 달릴 꽃눈이 형성될 시기에 양분을 보낼 열매가 적다 보니 가지로 보낼 수밖에 없고 웃자라기 쉽다”며 “식물에게 결실은 종족보존을 위한 것인데, 열매가 적어져 영양이 넘쳐나니 종족보존을 위해 꽃눈을 미리 열심히 만들 이유가 적다”고 설명했다. 2세를 남기기보다는 당장 몸집 키우기에 전념한다는 의미다. 고구마에 비료를 너무 많이 주면 고구마는 없이 줄기만 무성하고, 집이나 사무실 난초가 꽃이 피지 않을 때 ‘골병’을 얻으면 핀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대나무가 꽃을 피우는 것도 영양분이 고갈돼 유전자를 남기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서 팀장은 “냉해 등으로 착과량이 적더라도 비료주기 조절 등으로 이듬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지만, 전체 재배면적의 20% 내외는 어떤 식이든 영향을 받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사과 값도 여전히 고공행진이다. 농산품 시세 바로미터인 서울농수산식품공사 가격정보에 따르면 최근 사과 값은 지난해의 2~3배다. 지난달 26일 부사 최상품 10㎏ 1상자 도매가는 최고 17만 원으로, 평균가도 15만4,651원에 달했다. 이는 2022년 12월 같은 날 5만218원의 3배가 넘는다.
상황은 이렇지만 농민들은 웃지 못한다. 팔 사과가 없기 때문이다. 통계청 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해 사과 생산량은 39만4,428톤으로, 전년(56만6,041톤)보다 30.3% 줄었다. 2020년에도 작황부진으로 생산량이 42만2,115톤으로 크게 준 적이 있지만, 그해 12월 시세는 최고 9만 원으로 요즘 시세 절반에도 못 미친다.
청송에서 ‘사과박사’로 통하는 윤인섭(38) ‘윤박사 애플팜’ 대표도 사과 값 폭등이 가져올 파장을 경계했다. 그는 “예년에는 저장할 수 있는 ‘정품’ 비율이 60% 이상인데, 올해는 20%도 안 되는 농장이 많다”며 “전체 생산량은 30% 정도 줄었는지 몰라도 팔 수 있는 사과는 70~80% 감소한 셈”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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