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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돌아가시기 전날에도 동생은 ATM에서 돈을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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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 분쟁, 더는 남 얘기가 아닙니다. 사망자는 늘어나고, 가족 형태도 복잡해졌습니다. 부모님 사망 후 부동산에 욕심 내는 형제도 눈에 띕니다. 저성장 추세까지 고착화되면서 상속은 '이 시대 마지막 로또'가 됐습니다. 이래도 가족과 안 다툴 자신 있습니까. 죽은 자도 산 자도 걱정이 없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한국일보가 취재했습니다.
"100만 원. 100만 원. 100만 원. 100만 원. 100만 원. 100만 원."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날(2022년 6월 15일)까지도, 아버지 계좌의 돈은 현금자동입출금기(ATM)를 통해 쉬지 않고 빠져나갔다. 병상에서 몸을 가누지 못하는 노인이 제 발로 은행을 찾아갔을 리도 없을 텐데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사라진 돈의 행방을 쫓던 큰아들 박수호(가명·55)씨는 '종착지'를 확인하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막내 동생 박수길(가명·50)씨 부부가 은행 ATM을 돌며 아버지 계좌에서 돈을 인출하는 모습이 폐쇄회로(CC)TV에 찍혀 있었기 때문이다. 확인된 거래기록을 보니, 7일 동안 총 41차례에 걸쳐 6,491만 원이 인출됐다.
수호씨가 보기에 납득할 수 없는 일은 또 있었다. 그해 3월 아버지는 치매 진단을 받았다. "은행 업무 등 돈과 관련된 일을 처리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전날 벌어진 일을 전달하는 게 불가능하다"(5월 OOOO병원에서 진행한 치매 검사)는 결과까지 나왔지만, 보호자 역할을 했던 동생 부부는 아버지를 퇴원시켰다. 곧장 아버지를 모시고 두 사람이 찾아간 곳은 은행이었다. 아버지 명의의 정기예금을 해지하고 2억1,000만 원가량을 빼내 출금이 가능한 일반 계좌로 옮겨놨다. 그날 퇴원 이후 아버지 상태는 악화돼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수길씨 부부는 왜 아버지를 병원에서 데리고 나왔을까. 왜 아버지 임종 전날까지도 ATM 앞을 떠나지 못했던 걸까. 수호씨의 의심이 가리키는 곳은 단 하나, 바로 돈이었다. 예금 해지 등의 금융 업무는 본인이 직접 은행을 방문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버지가 사망하면 계좌가 동결돼 현금 인출도 막힌다.
"그러니까 동생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아버지 돈을 최대한 많이 빼돌리려고 했던 거예요. 아버지가 사경을 헤매는 동안 ATM에서 하루도 빼놓지 않고 돈을 챙기고 있었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됩니까."
수호씨는 모든 일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 알게 됐다. 수호씨는 동생인 수길씨 부부 등을 횡령, 사기, 사문서위조, 존속학대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고소를 당한 가족들은 '생전에 아버지 뜻에 따라 정당하게 증여를 받았기에 문제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100만 원 단위의 현금 출금 방식이 비정상적으로 보인다는 지적에 대해 수길씨는 "(생활비와 병원비를 충당하려고) 아버지가 시킨 대로 했다. 편하게 받으려고 계좌이체를 해달라고 요구할 순 없었다"고 했다. 차남인 수봉(가명·53)씨도 경찰 조사에서 "상속세를 피하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아버지 예금이 출금 가능한 일반 계좌로 옮겨진 것에 대해 두 아들(차남과 삼남)에게 증여하겠다는 아버지 뜻에 따른 것이라고 봤다. 아버지가 치매가 아니라 기관지 폐렴 등으로 입원했고, 정상적으로 퇴원 절차를 밟았기 때문에 퇴원 과정에서도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장남인 수호씨는 고소 사건이 혐의 없음으로 결정되자 이의신청을 제기해 형제간 다툼은 이어지고 있다. 본보는 삼남인 수길씨에게 추가로 입장을 밝혀줄 것을 요청했지만 "소송이 진행되고 있어 인터뷰를 할 수 없다"고 말을 아꼈다.
'증여냐, 사기냐' 아버지 유산을 둘러싼 삼형제의 주장이 이처럼 엇갈리고 있지만, 분쟁의 당사자이자 해결사인 아버지는 눈을 감았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누구 말이 맞다고 판단할 길도 아득해졌다.
내년이면 대한민국 고령인구 1,000만 명 시대. 늙고 힘없는 부모들의 지갑이 자식들 간 분쟁의 씨앗이 되고 있다. 한평생 모은 돈을 자신의 뜻대로 어떻게 물려줄지 충분히 고민하지 않은 채 죽음을 맞이하다 보니, '더 받은 자식'과 '덜 받은 자식'이 소송전까지 불사하며 갈등이 커지고 있는 것. 이우리 변호사는 "작정하고 부모 재산을 일방적으로 탐내는 자식들이 나타나면 그때부터 부모 형제 사이 진흙탕 싸움이 시작된다"고 말했다.
특히 부모가 치매 등에 걸려 의사능력을 확인하기 어려우면, 잇속에 밝은 자식들에게는 더욱 손쉬운 타깃이 될 수밖에 없다. 결혼 이후에도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온 김도훈(가명·48)씨는 최근 친누나(51)의 '철면피' 행태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누나는 지금껏 엄마(78) 부양에 대해 나 몰라라 했다. 하지만 엄마에게 최근 치매 증상이 나타난 뒤 태도가 180도 변했다. '지금까지 못해드린 게 죄송하다'며, 엄마를 자기 집으로 모시고 갔지만 일주일 만에 엄마를 다시 돌려보냈다. 그사이, 누나는 엄마와 함께 은행과 보험사를 돌며 엄마 명의의 예금과 보험금 3억 원을 자신의 계좌로 돌렸다. 엄마의 전 재산이자 유일한 노후자금이 한순간에 증발해버린 것이다. 김씨는 "누나에게 엄마는 그저 돈에 불과했던 것"이라며 울분을 토했다.
문제는 자식들이 경제적 착취의 가해자인 경우, 범죄의 발견도, 가해자에 대한 처벌도, 피해 회복도 쉽지 않다는 점이다. 부모들은 자신의 의사에 반하는 경제적 착취를 당해도 "내가 자식을 잘못 키운 죄"라며 피해 사실을 드러내기 꺼리는 경우가 많다. 설사 부모나 다른 형제자매가 형사고소를 하더라도 현행 법 체계에선 구제받을 방법이 거의 없다.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등 친족 간 발생한 재산 범죄의 형을 면제한다는 친족상도례(형법 제354조 제328조 제1항) 규정 탓이다.
"오죽하면 엄마가 배 아파 낳은 자식을 고소했겠습니까."
화가로 활동하면서 두 아들을 번듯하게 키워낸 강정아(가명·71)씨는 가슴을 치고 또 쳤다. 그는 2022년 10월 큰아들 이상균(가명·43)씨를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아들의 사기 범죄가 남한테까지 번지는 걸 막기 위한 불가피한 결단이었다.
그해 6월부터 정아씨 휴대폰에는 영문 모를 수천만 원의 대출 연체, 현금서비스, 해외사이트 물품 결제 문자가 날아들었다. 상균씨에게 어찌된 일인지 물을 때마다 돌아오는 설명은 늘 비슷했다. '엄마 생활비랑 그림 그릴 때 필요한 돈이에요.' 정아씨는 그 말을 굳게 믿었다. 홀로 남은 엄마 부양을 책임지겠다고 나선 큰아들이 고마울 뿐이었다. 살고 있던 빌라 명의도 상균씨에게 이전해줬다.
하지만 믿음은 배신으로 돌아왔다. '제가 비트코인을 해서 굉장히 큰돈을 날렸어요. 하지만 어머니 빚을 갚기 위해 최선을 다할게요.' 그해 8월 상균씨는 가족들 앞에서 '폭탄 발언'을 했다. 도박으로 생긴 빚을 돌려막으려고 엄마 명의로 돈을 융통해 사업 자금에 보탰다는 취지였다. 엄마와 남동생 상문(가명·37)씨가 피해를 호소한 금액만 2억2,000여만 원에 달했다.
문제는 금전적 피해자였던 엄마가 이 같은 사정을 까맣게 몰랐다는 거다. 강씨는 "휴대폰 개통 문자는 기존 휴대폰 서비스 변경인 줄 알았고, 스마트폰으로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건 상상도 못 해봤다"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아들이었다. 갚겠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고 기다렸다. 하루이틀이 지나도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태도도 달라졌다고 한다. 엄마에겐 '그림을 팔지 않으면 파지를 주우러 다녀야 한다'고 압력을 넣었다. "피해자인 엄마를 방패막이 삼아 자신의 채무 변제를 종용했다"며 상문씨는 형의 뻔뻔함에 분통을 터뜨렸다. 신용불량자가 된 엄마가 카드사로부터 빚 독촉에 시달렸지만 "상균씨는 단 1원도 갚지 않았다"는 게 가족들 입장이다.
상균씨는 이에 대해 "주식과 가상화폐 투자로 손해를 입었고, 어머니 명의로 대출과 신용카드를 장기간 사용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이는 어머니 부양을 위한 것이었으며, 명의 역시 어머니 동의를 받았고, 대출 상환도 모두 연체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고 밝혔다. 어머니를 실제로 부양했는지 여부에 대해선 은행 계좌내역 및 가족 간 카카오톡 대화에서도 충분히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상균씨는 어머니에게 그림을 달라고 요구한 것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어머니와 동생이 경제적 자립을 못 하고 일방적으로 저에게만 의지하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2018년부터 동생이 어머니에게 매달 생활비를 보조하기로 했고, 이를 지키지 못하면 합당한 그림 가격을 정산받기로 했으나, 제가 보관 중인 그림까지 동생이 모두 가져가면서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고 답했다.
파산 위기에 놓인 엄마가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은 법에 호소하는 길뿐이었다. 경찰은 그러나 사건 처리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집안 내부에서 정리할 가정사로 치부할 뿐이었다. 가족 간 재산 범죄 사건은 어차피 형사처벌이 되지 않기 때문에 사건 접수조차 받아주지 않으려고 했다. 정아씨가 다른 범죄 혐의점이 있다고 겨우 설득한 끝에 각종 증거 자료들을 건넸지만, 결국 '불송치(혐의 없음)'로 돌아왔다. 아들이 '엄마 몰래 대출과 현금서비스를 받았다'고 자백한 녹취록까지 제시했지만 소용없었다.
아들을 고소한 엄마는 법의 무책임함에 또 한번 가슴을 쳤다. "아들이 노모를 속여 빚더미에 앉힌 뒤 산송장으로 만들었는데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니 억장이 무너질 수밖에요."
'법은 집안 일에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며 1953년에 만들어진 뒤 한번도 고쳐지지 않은 친족상도례. 하지만 가족을 상대로 한 파렴치 행태가 잇따르자 2020년 친족상도례 규정에 대해 헌법소원이 제기됐다. 방송인 박수홍의 친형 횡령 사건에서도 친족상도례를 악용해 형사처벌을 면하려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노종언 변호사는 "피해자 입장에선 가족에 대한 배신감에 더해 재산 손실과 처벌 불가에 따른 억울함까지 삼중고를 겪는 셈"이라며 "가족 간 분쟁이라고 해서 형벌권을 무조건 면제하는 게 피해자 보호에 반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국민 눈높이에 맞춘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상속 전문가들은 형 면제로 처벌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는 대신, 친고죄(범죄 피해자가 고소해야 기소할 수 있는 범죄)나 반의사 불벌죄(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는 범죄)를 통해 처벌 가능성을 남겨 두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친족상도례로 어차피 처벌받지 않으니까, 아들은 법의 허점을 이용했다고 봐요. 범죄를 저질러 놓고 단지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면죄부를 주는 게 맞나요? 가족이니까 괜찮다고요? 가족이라서 더 아프다는 생각은 왜 못 하나요?" 아들을 고소해야 했던 정아씨 가족의 비극은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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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다사 시대와 '마지막 로또'
<2>남보다 못한 혈육 저버린 인륜
<3>어느 날 삼촌 빚이 도착했다
<4>망자도 산 자도 품위 있으려면
<5>상속 전문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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