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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냄비 세척기'까지 만들다…불닭볶음면 대박 낸 삼양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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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퇴근 후 홀로 라면 먹는 우리 아버지, 설거지하는 단 몇 분이라도 쉴 수 있게 해주세요." "대학생 자취생인데요, 라면 자주 끓여 먹는데 설거지하는 게 일이네요."
지난해 11월 삼양라운드스퀘어(옛 삼양식품그룹)가 진행한 이벤트가 누리꾼 사이에 뜨거운 반응을 끌어냈다. 설거지를 미룰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응모받아 증정품을 제공했는데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입소문이 퍼지면서 약 2주 동안 1만3,000건이 넘는 사연이 모였다.
회사가 내건 경품은 시대의 난제인 라면 냄비 설거지를 간편하게 해줄 '삼양라면 초고압 세척기'(초고압 세척기). 삼양라운드스퀘어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굿즈로 이벤트 당첨자들에게 설치기사를 보내 직접 설치해줄 만큼 기획에 공을 들였다. 이 증정품은 회사가 스타강사 김창옥씨와 인기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의 멤버 개그맨 정재형을 앞세워 퀄리티 높은 광고까지 선보이면서 누리꾼에게 판매용이라는 착각마저 불러일으켰다.
일회성 굿즈 홍보에 이렇게까지 힘을 쏟은 건 60년 된 삼양라면의 유전자(DNA)를 좀 더 젊고 참신하게 바꾸기 위해서다. 지난달 27일 서울 성북구 삼양라운드스퀘어 본사에서 만난 최의리 브랜드전략실장은 "이미 누구나 다 아는 삼양라면인데, 새삼 맛 좋다 광고한다고 누가 관심을 갖겠나"라며 "60년이 지난 삼양라면이 오늘날 소비자에게는 어떤 식으로 재해석되는지 꼼꼼히 살폈다"고 말했다.
1982년생 최 실장은 삼성과 CJ, 신세계그룹 등 손꼽히는 대기업에서 일했던 마케팅 전문가다. 최근 삼양라운드스퀘어가 지주사 이름과 기업이미지(CI)를 바꾸고 새출발하는 과정에서 오너 3세인 전병우 전략기획본부장(CSO)과 함께 주도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실장은 간편함의 대명사였던 라면이 어느새 번거로운 음식이 됐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배달이 일상화된 지금은 끓이고 설거지까지 해야 하는 라면이 귀찮아졌거든요. 라면을 다시 간편한 음식으로 바꾸고 싶었습니다." 그는 60년이라는 역사를 지닌 브랜드의 힘을 믿었다. 당장 라면 판매량을 늘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삼양라면만의 브랜드 스토리를 만들어 고객에게 평소 브랜드를 잘 떠올리게 하고 호감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굿즈를 기획한 후 지난해 3월부터 7개월 동안 공장을 수시로 드나들면서 시제품을 점검했다. 식기세척기가 있는 가정집보다는 라면을 즐겨 먹는 1인 가구를 겨냥해 알맞은 크기와 사용 방식을 고민했다. 대학가 원룸에 사는 자취생을 섭외해 직접 시제품을 설치하도록 하고 테스트도 했다. 오래된 원룸은 아파트보다 수압이 낮은 경우가 많아 이런 조건에서도 세척이 잘 될 수 있도록 시제품의 움직임을 여러 차례 수정·보완했다. 싱크대에 구멍을 뚫는 시공이 필요한 증정품이라 세입자가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구멍을 막을 수 있는 마개까지 따로 만들었다.
초고압 세척기는 증정품이라기엔 품질이 높은 굿즈로 입소문을 타면서 이벤트가 끝나고 나서도 판매용으로 출시해달라는 요청이 쏟아지고 있다. 초고압 세척기는 일종의 주문생산 방식이고 원가가 높아 대량생산에 제약이 많지만 여건이 충족되는 대로 추가 생산의 가능성은 열려 있다. 초고압 세척기가 이처럼 큰 호응을 얻은 것을 두고 최 실장은 "단순히 예쁜 굿즈면 인증샷으로 소비되고 말겠으나 초고압 세척기는 라면이 가지는 의미에 포커스를 맞췄기 때문에 SNS에서 더 빠르고 멀리 확산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당장 제품 구매로 연결되지 않더라도 소비자와 소통을 늘려가며 한층 더 가까워지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덧붙였다.
젊어지려는 삼양라운드스퀘어의 노력은 이것 말고도 차고 넘친다. 지난해 10월에는 서울을 시작으로 남양주 캠핑장, 대관령 삼양목장, 부산 밀락더마켓, 경주 보문단지 등 전국을 돌며 매운 국물라면 브랜드 '맵탱'의 푸드트럭 행사를 진행했다. 팝업스토어가 아닌 푸드트럭으로 고객을 직접 찾아가자는 아이디어는 맵탱의 기획과 출시를 이끈 전병우 본부장의 아이디어였다.
최 실장은 "소비자들은 라면이라는 품목을 대할 때 유독 새로운 맛에 도전하려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익숙한 맛만 찾으려는 성향이 강하다"며 "전국 방방곡곡 다양한 소비자를 직접 찾아가면 부담 없이 새로운 맛에 좋은 경험을 심어줄 수 있겠다는 판단"이라고 말했다.
최근 입사자들에게는 새로운 CI를 반영해 응원봉, 후드집업 등 전용 굿즈를 선물했다. 작은 선물이지만 조직의 큰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자부심을 갖게 하기 위한 아이디어라는 설명이다. 아울러 소비자에게 CI 변화를 알리기 위해 팝업스토어를 진행하고 삼양라면과 불닭볶음면을 섞은 '믹스맵치' 라면을 한정판으로 선보였다. 내부적으로는 젊은 피를 수혈하며 조직 쇄신도 꾀했다. 지난해 10월 임시주주총회에서 40대 임원 2명을 사내이사로 선임하면서다.
최 실장은 최근 삼양라운드스퀘어가 새출발한 배경을 두고 "2013년 3,000억 원대였던 연 매출이 10년 만에 1조 원을 바라보는 회사가 됐다"며 "빠른 시간 안에 일어난 큰 변화들을 잘 정리하고 새로운 목표를 정해야 할 시점이었다"고 말했다.
회사는 60년의 명맥을 이어가면서도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혁신을 이뤄보겠다는 각오다. 김정수 부회장은 지난해 9월 열린 비전선포식에서 "과학기술의 진보와 문화예술의 영감을 잘 융합해 창업주의 일념인 식족평천(食足平天)의 실현을 이루겠다"고 밝혔다. 식족평천은 먹는 것이 족하면 천하가 태평하다는 뜻이다.
최 실장은 "식품의 역할을 단순히 음식이 아니라 엔터테인먼트와 푸드케어(음식으로 질병 예방)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확장하려 한다"고 말했다. 불닭볶음면이 세계 곳곳에서 '불닭볶음면 챌린지' 등 새로운 놀이와 문화콘텐츠로 확산한 것처럼 소비자에게 다가가는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 브랜드가 젊어진다는 것이 나이를 뜻하는 게 아니라고 강조했다. "우리에게 젊어진다는 건 새로워지겠다는 의미"라는 최 실장은 "라면은 남녀노소 다 즐기는 계층이 없는 식품이라 누구나 우리 제품을 먹고 싶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브랜드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갖게 하면 젊은 세대를 넘어 60·70대 고객들까지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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